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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사태와 한반도] 경협차원의 공동어로수역 정하자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와 해법마련 필요

6월 29일 서해교전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아직 서해교전의 확실한 배경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북 양측에 수십명(남측 20명, 북측 30여명 추정)의 사상자를 낸 것은 큰 상처임에 틀림없다.

이번 서해교전과 관련한 가장 큰 의문점은 월드컵이 개최되는 시점에 북한이 왜 이 같은 일을 일으켰고 어떤 득을 기대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또 북한의 선제공격은 북한최고위층의 의도적 지시인지 아니면 해군군부 독자적으로 행한 우발적 행동인지도 매우 궁금하다. 확실한 것은 북한고위층의 의도적 지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연평도 어부의 증언, 국방부 보고 그리고 오랜 연평도 어업관행 등을 종합해 볼 때 어부의 어획이기주의에서 비롯한 월선(越船)도 이번 사태에 간접적으로 빌미를 제공한 개연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번 서해교전을 통해 또 한번 확인 된 사실은 과거 냉전시대에 무조건 덮어두었던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ed Line)에 대한 국제법적 합의가 없이는 서해 교전의 근본적 해법을 생각해 볼 수 없다는 부분이다.


문제점 안고 출발한 NLL 확정

우선 NLL은 정전협정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 1953년 정전협정 협상시 육지 군사분계선은 합의를 보았지만 서해 해상 경계선은 의견의 차이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정전협정협상에서 북한은 경기도와 황해도의 도계(道界) 연장선을 주장했고, 유엔군 사령부(UNC: United Nations Command)는 서해 5도가 모두 포함된 경계선 획정을 요구하는 등 양측의 의견차이로 정전협정에서 규정하지 못했다.

한편 우세한 해군력을 동원한 리승만 박사의 북진공격을 두려워한 UNC가 남측해군력의 북진한계를 내부적으로 규제할 필요에서 NLL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클라크 UNC총사령관이 1953년 8월 30일 일방적으로 NLL을 내부적 작전규칙의 일환으로 해군에만 전달하고 북측에 정식으로 통고하지 않았다.

둘째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합의되지 않았다. 남북기본합의서상 2장(불가침)의 부속합의서 제10조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서해의 해상 불가침은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과 확정될 때까지는 불가침선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중요하다. 특히 남측은 이 ‘구역’에 NLL이 포함될 것을 주장했고, 북측은 구역(區域) 대신에 지역(地域)으로 주장해 해상경계선을 제외시키려고 했다.

당시 NLL 인정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회담 지체의 큰 원인을 제공했다. 이처럼 북한은 남북기본 합의서에 불가침선으로서의 NLL을 포함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객관적으로 보아 남북한의 군사적 경계선이 되기 위한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이란 “쌍방이 합의하고 동의한 구역”이라야 남북 양측에 경계선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북한이 묵시적으로 20년 이상동안(1973년 8월 1일 이후) NLL을 인정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북한은 한국전쟁중이나 이후 수년동안 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지 못 한 채 그들이 주장하는 12해리 영해를 지킬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57년 초부터 북한경비정이 5개 도서의 연안을 순시하기시작 하였고, 종종 한국어선을 나포해 갔다. 따라서 이것을 근거로 실효성의 원칙(principle of effective control)에 의해 NLL을 북한이 묵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법적 의미가 희박하다.

넷째로 UNC조차도 북한의 NLL 월선을 영해침범이라 하지 않았고, 서해 5개 도서 3해리 밖의 수역에 대해 공해(International Waters)라 했고, 서해 5개도서 3해리 안의 수역을 인근수역(waters contiguous to the island groups)을 침범했다고 했다.

미국 국무부도 NLL통과를 영해침범으로 보지 않고 있다. 1996년 7월 17일 이양호 국방장관도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문답변을 통해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남북합의 없는 묵시적 경계선

종합적으로 NLL은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사이의 경계선이 될 수 있는 쌍방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NLL에 대해 북한은 20년이상 동안 묵시적으로 수용한 것도 아니고 UNC, 미 국무부 그리고 이양호 국방장관도 영해침범으로 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 경비정의 NLL 통과는 국제법상 영해침범이 아니라 월선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서해 5도 주변은 꽃게가 많이 나는 지역이고 특히 꽃게는 북한의 주요한 외화벌이 상품이다. 북한의 어업은 매우 열악하다. 한국측 어업지역은 오염 때문에 꽃게가 거의 없어 어선의 월선은 거의 불가피하다.

그래서 NLL에 대한 명확한 쌍방간에 합의가 없는 한 향후에도 매년 6월이면 한국어선의 월선이라는 오랜 관행은 반복될 것이며, 그때마다 계속 이러한 무력충돌은 발발 될 것이다.

그래서 남북 쌍방은 잠정적으로 평화통일 시점까지 서해5도 주변의 5해리를 섬 연안수역으로 인정하고, 그 나머지 수역에 대해서는 꽃게잡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 경협차원에서 공동어로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 연평도 어민들도 이것을 매우 환영하고 있다. 이것은 6·15공동선언 제4항의 남북경협분야의 실천을 구체화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남한은 이번 서해교전에 대한 진상파악을 포함하여 NLL에 대한 근본적 해결방안 협의를 위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개최를 북측에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해사태이후 남북관계의 전망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당국간 회담이 재개되는 전화위복의 큰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무마과정에서 새로운 해결합의가 생겨난다. 99년 6월 금강산관광시 발생한 민영미씨 사건을 보라.

그 때까지 금강산 관광객 신분보장합의서와 규칙위반에 대한 벌칙이 너무 북한위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사건의 해결협상 과정을 통해 남북이 관광객의 신분보장합의서와 벌칙규정을 매우 합리적으로 합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이용 말아야

일부 보수언론과 이에 무조건 비위를 맞추는 일부 지식인들, 정치권 그리고 일부 보수단체들이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

이들은 이 문제를 당리당략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금강산관광중단 및 대북지원중단을 포함한 적극적인 화해협력정책과 6.15 공동선언의 근본을 파괴하는 쪽으로 몰아 부치고 있다. 또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여 무작정 선제공격을 할 수 있게 해군교전규칙을 수정한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이 북미 특사파견을 예정한 것을 취소한 것도 적절한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6.15 공동선언은 우리가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하면서 분단 40년만에 얻어낸 평화와 신뢰의 싹이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정권의 교체에 관계없이 계승되어야 한다.

우리는 NLL을 포함하여 민족문제를 국민적 합의 위에 충분한 국제법적 논거와 합리성 그리고 역사성과 철학성을 갖고 대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과대학 학장

입력시간 2002/07/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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