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IJ는 개헌론을 정치적 지렛대로 사용하지 말아라

정치권에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가 개헌론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인제 의원 등이 ‘제왕적’ 대통령제 대신 ‘분권적’ 대통령제로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연내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란 대통령이 통일 외교 국방 등 안정적 국정 수행이 요구되는 분야를 맡고, 총리는 내정에 관한 행정권을 책임지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가장 잘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다.

우파인 공화국 연합 출신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자파인 사회당 출신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6월까지 5년간 코아비타시용(좌우동거)체제를 유지하면서 프랑스를 무난히 이끌어왔다.

시라크 대통령을 놓고 조스팽 총리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한 적이 없으며 시라크 대통령도 조스팽 총리의 사회주의 복지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때문에 프랑스식 이원집정제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좋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의원 등은 노태우 김영삼 등 전직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친인척 비리와 부패 스캔들, 국가 리더십의 붕괴가 되풀이되는 근본원인이 현행 헌법에 규정된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킬 수 있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의원은 7월 5일 기자회견에서 “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 장기집권 저지라는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지만, 국가 리더십의 붕괴와 정치부패를 몰고 온 실패한 헌법”이라고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의 충청ㆍ중부권을 중심으로 한 계보 의원들이 이의원의 개헌 주장을 지지하고 있으며 한국 미래연합 박근혜 대표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처럼 일부 세력들이 이 의원의 주장에 동조함에 따라 정치권은 개헌 추진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개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반창-비노(反昌-非盧) 신당’ 창당 등 정계 개편을 위한 새로운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개헌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필요한 지 여부와 이원집정부제가 한국이라는 정치 토양에 맞는지를 분석해보자. 현재의 헌법은 결점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때문에 필요하면 개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헌하지 않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현행 헌법의 틀에서 개선이 가능하다. 국무총리가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면 이 문제는 상당히 해결된다. 총리에게 실질적인 각료제청권(87조 1항)을 주고 대통령에 대한 국정보좌권(86조 2항)을 강화해야 한다.

총리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현재의 헌법을 반드시 고칠 필요는 없다. 또 개헌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이를 미끼로 현재의 이회창-노무현 대결구도를 깨고 정계 개편을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개헌론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다시 말해 정계개편의 수단이 개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개헌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 의원은 “개헌은 국민의 주권적 결단”이라고 밝혔으나 국민 대다수는 아직 개헌의 당위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의원은 민주주의의 기본 룰인 경선의 결과 조차 승복하지 않는 정치 행태를 보여왔다.

프랑스처럼 좌우가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 이원집정부제도 좋지만 한국 정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듯하다.

현재의 정당들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를 특정 지역 출신들이 나눠 먹는다면 3김 이후 청산될 수 있는 지역주의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대통령을 누가하든(이회창 또는 노무현 후보) 이들과는 대결해서 패할 수 밖에 없는 제 3의 세력들이 한데 뭉쳐 총리직을 차지한다는 발상은 너무나 정략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개헌한다면 오히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생각해 볼 만 하다. 상당수의 정치학자들은 현재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없애려면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또 개헌 시기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 내에 하되 차기 대통령은 출마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야 할 것이다. 물론 중요한 점은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 시기와 관련, 이 의원은 연내 조기 실시를 주장하면서 1987년에도 가능했다고 사례까지 들었다.

그러나 당시 개헌은 ‘직선제’를 하자는 국민적 열망으로 이루어졌다. 정계 개편을 목포로 한 개헌은 한국 정치의 모순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결국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언제 할 것인지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이다. 차라리 국민투표를 실시해 개헌 내용과 시기를 정하든지, 아니면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개헌에 대한 소신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개헌 논의를 공론화하되 정략적이 아닌 국민을 위한 진정한 의견수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7/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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