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정치권 신뢰회복이 먼저다

문민 정부 출범 이후 개헌은 정가의 ‘뜨거운 감자’였다. 현행 헌법의 제정 취지, 그리고 국내 정치 여건과 선거 일정상 권력 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분명 존재했지만, 누구도 앞에 나서 공개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에 재적의원 ⅔의 찬성, 그리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물리적 요인 외에도 정략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개정 제안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도 개헌 추진을 더욱 어렵게 했다.

개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개정을 주장하는 쪽이 더 많다.(주간한국 1926호 참조) 현행 헌법에도 권력 분립 등 이원집정부제적 요소가 있지만 국내의 오랜 정치 관행에 따라 사실상 무시되고 사장돼 왔다.

따라서 헌법 조문을 고쳐 이런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고, 국론 분열과 국론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재 뜨겁게 일어나고 있는 개헌론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간 정치권이 보여준 ‘양치기 소년식’ 관행 탓이다. 정치권은 그 동안 개헌 문제를 자기들이 이해득실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해 왔다.

그래서 정말 개헌의 필요성이 있고, 공론화의 분위기가 익어가는 시기임에도 누구도 그들(개헌 주창자)의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질 않는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의 사심이 개입돼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헌에 대한 필요성은 벌써 오래 전부터 학계와 정계에서 공감대가 이뤄져 있는 게 사실이다.

본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집권 후 개헌을 공론화해 조기 매듭 짓겠다’는 기사를 특종 보도(주간한국 1925호)한 이후 줄곧 개헌 공론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조를 견지해 왔다. 물론 현재 민주당 일부에서 주장하는 연내 개헌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권력 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차근차근 수렴해 나가는 작업은 또 다른 개헌 소모전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7/12 17:03


송영웅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