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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업씨와 돈, 그리고 권력] 살아있는 권력에 칼 댄 '해결사'

박만 대검수사기획관, 정권 연루 사건마다 악역 맡은 기구한 검사역정

김 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와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기소된 날 밤. 중년의 신사가 대검 청사를 나와 후텁지근한 밤거리를 10여분 걸어가더니 서울 서초동 P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창백한 얼굴색이 영락없는 문사(文士) 타입의 이 신사는 몹시 지친 듯 입구 가까이 자리를 잡더니 주문을 했다. “늘 하던 걸로.” 곧 이어 작은 국산 양주와 맥주3병이 나왔다.

그는 익숙하게 양주잔 가득 양주를 따르더니 이를 맥주잔에 넣고 다시 맥주를 가득 부어 한숨에 들이켰다. 그야말로 잔 가득히 술이 찬 ‘만주(滿酒)’. 뒤늦게 온 주인이 아는 체를 한다. “박 만(51ㆍ사시21회) 기획관님 아니십니까!”


“정말 힘든수사였다”

그 무렵 박 만 대검 수사 기획관은 출입 기자들을 만났다. “정말 힘든 수사였다. 대검 중수부라서 더더욱 힘이 들었다. 수사에 협조해 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기자들은 끄덕끄덕 공감의 빛을 보였다.

그는 4월 수사 시작이후 청와대와 여권의 압력을 딛고 수사팀을 독려하는 한편 거의 매일 기자들과 브리핑룸에서 입씨름을 벌여왔다. 그는 수사 기간 내내 언제든지 사표를 낼 준비까지 했었다. 따라서 기자들의 공감은 살아있는 권력을 단죄했다는 존중의 다른 의미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공감대 이면에는 박 기획관의 기구한 인생역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안팎에서 인정 받는 ‘검찰 소방수’다. 그는 검찰청에 불이 났을 때 늘 일선에서 진화작업을 맡았고 그때마다 불길은 묘하게도 사그러들었다.

첫 ‘화재’는 1992년 일명 ‘초원복국집 사건’이라 불리는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현 한나라당 의원)의 대통령선거법 위반 사건이었다.

김 전 장관은 퇴임후인 그해 12월 부산의 초원복국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YS를 지원하는 대책회의를 갖다 적발됐다. 때가 때인 만큼 정국은 발칵 뒤집혔고 전직 총수의 입건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검찰청사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대검은 이 사건을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이 부장으로 있던 서울지검 공안1부에 배당했고 수석 검사였던 박 기획관이 김 전 장관의 조서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박 기획관은 그 해 3월 14대 총선 공천헌금 사건을 수사하며 김 전 장관을 직속상관으로 모셨었다. YS의 당선 가능성이 유력하던 차에 누구도 맡기 꺼려하던 그 사건은 결국 이듬해 초 김 전 장관의 불구속기소로 마무리됐다.


정권과의 악연으로 지방 전전

정권과의 악연 때문인지 박 기획관은 그 사건 이후로 잘 나가던 공안검사의 길에서 한발 비켜서 지방을 전전하게 된다.

여기에는 경북 선산이라는 그의 출신지역도 어느 정도 감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YS정권 출범 후 첫 검찰인사에서 그는 창원지검 충무지청장으로 내려가더니 창원지검 특수부장과 부산지검 조사부장을 거쳐 정권말기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로 보직됐다.

그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창원지검 근무 때 지역유지 100여명의 토착비리를 일망타진 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지역 유지들이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이 죽어간다”며 검사교체 민원을 청와대에 제기했다고 한다.

그는 또 당시 검찰총장의 최측근임을 과시하며 일선 검사장까지 술자리에 불러내던 Y씨의 은근한 민원을 뿌리치면서 “한번 더 적발될 시에는 구속하겠다”며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경위로 소방수로서 그의 진면목은 5년을 건너뛰어 현 정권 들어 빛을 발한다. 1999년 장안의 귀부인들 사이에 호피무늬 반코트를 유행시킨 ‘옷로비 사건’에서 그는 역시 전직 총수인 김태정 전 법무장관을 구속시키는 악역을 맡았다.

이 사건은 원래 대검 중수부 소관이어서 대검 감찰1과장이던 그가 맡을 계제가 못됐다.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당시 중수1~3과장 모두 김 전 장관이 현직 때 부하검사 등의 인연으로 얽힌 사람들이어서 수사에서 배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만 7년 만에 주특기인 공안부로 복귀한다. 하지만 그가 복귀한 경위도 서울지검 공안부에 ‘대형 화재’가 났기 때문이었다. 2000년 2월 서울지검 공안1부는 한밤중에 ‘DJ 저격수’인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신병확보에 나섰다 실패하면서 부장 등이 바뀌는 파동이 있었다.

결국 박 기획관이 후임 공안1부장에 임명됐고 그는 대과 없이 선거와 대공업무를 수행하다 지난해 6월 신승남 검찰총장 체제가 출범하며 대검 공안기획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계속되는 전직 상관과의 모진 인연

공안기획관으로서 그의 임무도 순탄치 않았다. 같은 해 9월 ‘이용호 게이트’가 한국일보에 특종 보도된 이후 현직 부산고검장인 임휘윤씨의 게이트 연루사실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라는 초유의 기구를 구성해 불 끄기에 나섰고 박 기획관은 다시 차출돼 임 전 고검장을 낙마시키는 역할을 했다. 앞서 설명한대로 임 전 고검장은 1992년 김기춘 전 장관 사건시 박 기획관이 부장으로 모셨던 사람이다.

상관과 그의 모진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91년 특수1부장으로 모셨던 이명재 총장이 취임하며 공안특기의 꽃인 공안기획관에서 특수특기의 꽃인 수사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전례없는 ‘인사’의 대상자가 됐다. 그리고 그는 전임 총장인 신승남씨를 공무상 비밀누설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이런 이력만으로 보면 그는 냉철하고 차가운 공안검사의 이미지와 출세가도를 달리는 엘리트 검사의 이미지가 풍긴다.

그러나 그는 틈만 나면 전국의 명산을 활보하거나 자신이 특허권을 주장하는 ‘만주(滿酒)’를 지인들과 나누는 것 말고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이제는 검찰 간부들 사이에 흔해진 골프에도 별 흥미가 없는 듯 하다.

그와 10분이라도 얘기를 나눠본 사람들은 그가 왜 검찰 소방수를 도맡아왔는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잘못된 일 처리에 대해서는 상관에게도 가차없이 직언을 하지만 부하 직원들과는 스스럼없이 자장면집을 자주 찾는다.

그의 소탈하고 뒷탈 없는 처신을 두고 일부에서는 ‘정치(政治)적’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그는 “검사라면 모름지기 언행이 정치(精緻)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엘리트’ ‘소방수’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도 “사법시험부터 한번도 내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았다”고 웃어넘겼다. 그는 대학 졸업 후 5년 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입력시간 2002/07/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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