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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확 달라지고 있다·中] 돈 앞에 체면도 버렸다

고리대금·보험·증권업 등 '돈 되는 사업'에 역량 집중

“향후 3~5년 후에는 과연 어떤 사업을 통해 은행의 수익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특화한 은행으로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까.” (미국 메릴린치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

홍석주 조흥은행 행장은 6월 말 주식예탁증서(DR)발행을 앞두고 기업설명회를 위해 미국 뉴욕과 보스톤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홍 행장은 설명회에서 조흥은행의 최대 현안중 하나인 하이닉스 반도체와 관련한 대손충당금 적립 문제 등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홍 행장은 현지 펀드매니저들이 회의장 밖까지 따라 나오며 묻는 향후 비즈니스 수익 모델에 대한 질문과 높은 관심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업 특화ㆍ다각화 위한 ‘선택’

은행 영업에도 ‘선택과 집중’의 시대가 도래했다.

보통예금 수신 등 돈 안 되는 은행 고유의 사업은 과감히 줄이고 수익창출이 기대되는 신용카드와 고리 대금업 시장은 물론 합병 시너지 효과가 큰 보험ㆍ증권업 등에까지 서비스 역량을 넓히는 등 은행들이 수익성 위주의 과감한 사업 체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가계대출 등 서민중심 대표 은행으로 꼽혀온 국민은행은 8월 중 기업금융 점포를 기존 76개에서 226개로 대폭 늘리고 기업 금융서비스 확대에 집중력을 모으고 있는 반면 기업금융이 중심이 되어온 우리와 조흥은행 등은 오히려 중상층 소비자 고객을 타깃으로 한 영업점 확대와 운용 효율화에 주력하고 있다.

결국 금리경쟁으로만 치닫던 은행간 경쟁은 이젠 사업의 특화와 다각화를 위한 ‘선택’은 기본이며, 역량의 ‘집중’은 필수인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7월13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8월 중 150개의 기업금융점포를 신설, 기업금융전문가를 현장에 배치하는 등 전문적인 기업 금융서비스 제공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금융겸업화의 추세에 맞춰 올 9월부터는 국내 증권사 인수를 위한 본격적인 물색작업에 나설 예정”이라고 ‘새로운 선택’을 강조했다.

최근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업체인 하나로통신에 미래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2,000억원의 신디케이트 자금을 지원한 국민은행은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병원들을 대상으로 건강보험급여 채권을 담보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주선하는 등 돈이 될 만한 투자확대를 모색 중이다.

신한은행도 수익성 있는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규모 건설사업에 장기자금을 주선해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뛰어들었다.

이 은행은 최근 강원도가 추진하는 제1호 민자유치 사업인 미시령 동서 관통도로 건설사업에 1,100억원의 신디케이트 대출을 주선해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은행은 백화점과 할인점 등과 공동으로 캐피탈 회사를 설립, 이용 고객들에게 상품구매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주는 유통 금융업 시장진출을 강구 중에 있다.


‘장사치’ 비난 불구 영역 파괴

은행들의 고 수익 시장에 대한 사업다각화 열풍은 고리대금업 시장 진출 모색으로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신한ㆍ국민ㆍ한미 은행이 대금업 시장 진출을 위한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들 은행의 영업 전략은 급전을 위해 사채를 끌어 써야 하는 신용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중간 계층을 타깃으로 우선 잡고 있다.

일부에선 “은행이 고리대금업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리는 것은 공공성이 생명인 금융기관 본연의 권위를 내 팽기치고 장사치로 전락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마저 일고있다.

그러나 해당 은행들의 생각은 다르다. 고리 대금업을 사금융과 소규모 제2금융권에만 허용, 사회적 폐해가 컸고 외국계 대금업체로부터 금융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이젠 은행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한 금융지주회사는 BNP파리바그룹의 자회사 ‘세텔렘’과 소비자금융 합작회사를 세워 정부가 은행권의 대금업 사업에 대한 방침이 결정되는 8월말~9월초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자본금 300억원 규모의 소액 급전대출 전문 소비자금융 자회사를 올 하반기에 설립할 계획이다. 한미은행도 소비자금융회사 설립 안을 조만간 이사회에 상정할 계획이며 조흥은행도 이를 적극 검토 중이다.

은행의 수익 다각화나 금융 소비자 보호, 국내 시장보호 등 모든 측면에서 ‘윈윈 게임’이라는 것이 은행 ‘영역파괴’의 출사표다.

은행의 ‘영원한 캐시카우’ 신용카드 사업은 올 상반기 최고의 ‘대박 장사’로 손꼽힌다. 시중 은행들은 올 상반기 재벌계 카드사를 훨씬 능가하는 카드수입을 올렸다.

은행의 상반기(1ㆍ4분기 기준) 순이익이 지난해 동기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가운데 전체 순이익(2조3,000억)의 41.7%(9,500억원)가 신용카드 수수료 수입으로부터 이뤄졌다.

은행의 카드사업 순이익은 국내 카드업계 전체 순이익(1조5,000억원)의 63.3%를 차지할 정도다. 국민은행은 올 1ㆍ4분기에만 2,508억원의 카드 수수료 이익을 올려, 카드업계 ‘빅 3’인 국민카드(전문카드사)보다 무려 1,000억원이나 더 벌었다.

조흥은행은 신용카드 수수료이익이 2,398억원에 달해 LG카드와 삼성카드의 실적을 뛰어넘었다. 한미은행도 전년 동기(288억원)보다 164.9%나 증가한 763억원의 신용카드 수수료 이익을 올렸다.

은행 홈페이지에선 즉석에서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즉석식 복권도 판매하고 있다. 한미은행은 슈퍼더블ㆍ월드컵ㆍ플러스플러스ㆍ주택복권 등 7개종의 복권을 판매 중에 있다.

신한은행도 제주도와 지방재정공제회에서 발행한 슈퍼코리아연합복권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다. 총 당첨금은 60억원으로 1등에 당첨되면 30억원을 받는다.


돈 안되면 고객 눈치도 안 본다

은행들은 최근 수익실현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보통예금 등 수시 입출금식 예금의 금리를 내렸다. 돈 되지 않는 곳엔 더 이상 고객의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대외적 신호탄이다.

신한은행은 수시 입출금식 예금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인하, 1,000만∼5,000만원 규모의 저축예금은 1%에서 0.5%로, 5,000만원 이상은 1.5%에서 1%로 내렸다. 외환 조흥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 들도 보통예금 금리를 1%에서 0.5%로 각각 인하했다.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결제용으로 계좌를 유지하는 수시 입출금식 예금의 경우 은행 수익 보다는 관리비용이 더 커 금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수익성을 중심으로 한 은행들의 업무 재편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인터넷 뱅킹 등 자동화 기기 이용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은행 창구 1인당 단순 업무 1건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00원 수준으로 수수료 수입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익성 중심으로 재편되는 은행의 환경변화를 설명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7/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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