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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 잇단 상식 밖 행보로 'CEO시장' 기대에 찬물

"임명직이었다면 '…' 0순위"

이명박 서울시장은 7월 2일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가진 국장급 간부들과의 첫 대면 회의에서 “태풍이 코앞에 닥쳤는데 왜 재해대책 보고가 없느냐”면서 “타성에 젖은 공직사회에도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놓고 시 내부에서는 “이명박식 CEO 시정이 시작됐다”며 바짝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전과 색깔이 전혀 다른 ‘민선 3기 이명박호’에 대한 부푼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이런 긴장 속 기대는 불과 하루 만에 허물어졌다. 이 시장이 상식 밖 행보를 잇달아 보이면서 1,000만 서울시민에게 조소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

이 시장이 수 차례 공개사과를 하고,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와 서청원 대표, 친형인 이상득 의원까지 사과와 공개 질책을 하는 등 진화를 시도했지만 시민들 원성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공색행사의 반바지 차림 아들과 사위

이 시장의 돌출 행보는 사실 출근 첫날부터 시작됐다. 당초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겠다고 기자단에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가 개인사정을 이유로 돌연 승용차를 타고 나왔다.

이 시장은 “손님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시간이 없어 지하철을 못 탔다”며 “앞으로 늘 시민들과 함께 할 텐데 뭐가 어떠냐”고 반문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고개가 조금 갸웃거려지긴 했지만 이때만 해도 시청 내부에서는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이 보다는 오후에 열린 간부회의에서 이 시장이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며 고삐를 바짝 죄는 부분이 더 큰 뉴스거리로 회자됐다. 결정적인 ‘자살골’ 행태는 바로 다음날 벌어졌다.

7월 3일 오후 4시 시청 앞 인도에는 명예 시민증을 받기 위해 시청에 온 거스 히딩크 한국축구국가 대표팀 감독을 보기위해 운집한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민들은 히딩크 감독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대~한 민국’을 연호하기도 했지만 출입이 통제된 행사장에는 들어갈 수 없어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시각 행사장인 시청 태평홀에는 시 관계자 외에 이 시장 아들인 시형(24)씨와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차남인 이 시장 셋째 사위 조현범(32)씨 등 2명의 불청객도 끼어 있었다.

수여식에 이은 기념촬영에서 이 시장은 시형씨를 단상으로 불러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찍게 했다. 또 사위 조씨도 함께 불렀다.

미국 유학중인 시형씨는 붉은 색 영국 프로축구단 유니폼 상의에 반바지 차림에다 샌들을 신고 포즈를 취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시청과 언론사 등에 빗발쳤고 인터넷에는 이 시장을 비난하는 글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태풍 비상에 시장님은 사모님들과…

가족사진 촬영으로 물의를 빚은 바로 다음날에도 ‘헛발질’은 계속됐다. 4일 오후 이 시장은 부인 김윤옥씨가 회장으로 있는 모 대학 여성 고위지도자과정 총동문회 수련회에 참석해 특강을 했다.

태풍 라마순이 북상하면서 서울은 물론 전국이 비상 경계태세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이 시장은 한가롭게 부인 모임에 가 있었다.

5일에는 언론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모 방송사 대담 프로그램에 초청된 이 시장은 “행사가 모두 끝난 다음 밖에서 기다리던 아들과 사위를 불러 잠깐 찍게 했을 뿐 행사 진행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도 역시 거짓으로 드러나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시켰다. 아들과 사위는 처음부터 행사장에 있었고 예정에 없던 가족사진 촬영으로 시간이 지체돼 히딩크 감독의 언론 인터뷰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에 대해 시민들은 일제히 분노했다. 특히 시 인터넷 게시판에는 연일 수천 건씩 이 시장을 질책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시장은 당장 사퇴하라”는 경고성 글들에서부터, “시청 직원 유니폼을 붉은 색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로 통일하라”는 등의 냉소적인 글들도 대거 실렸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 시장은 5일 오후 시 홈페이지에 “사적인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 시장에 그 정무부시장

사과문이 게재된 이후 이번에는 정두언 정무부시장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한나라당 서대문 지구당위원장 출신의 정 부시장은 “이 시장은 내공이 강한 분이므로 이 정도 일에 끄떡없으며 이런 배짱이 나하고 맞는다”고 답하는 등 안이한 상황인식을 드러냈다.

더구나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해 지역구인 서대문구에 예산을 많이 따내겠다는 등의 상식 밖 발언도 늘어놓았다.

당연히 이 시장과 정 부시장을 패키지로 묶어 사퇴를 요구하는 글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집중됐다. 이 와중에 같은 한나라당 소속인 시의회 의장단이 결정적인 일침을 가했다.

서울시의회 백의종 부의장은 “이 시장 사과는 변명으로 일관했으며 의회 내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며 “정 부시장의 경우 조속히 사퇴해 자신의 발언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이 시장 사건’은 정치권으로 확산돼 민주당에서 ‘제왕적 대통령 후보에 제왕적 서울시장’으로 정치쟁점화 하는가 하면 한나라당에서는 ‘시장(市場)에서 모은 표를 시장(市長)이 까먹는다’는 자조섞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으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한나라당 집행부가 나섰다. 이회창 후보는 “송구스럽고 유감스럽다”라고 밝혔으며,서청원 대표도 “이 시장과 정 부시장이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대리사과’를 천명했다.

이어 서 대표와 이 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사무총장은 “다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는 질책성 주문도 계속됐다.


외간과 독선 만든 성공신화

청계천 복원과 시청앞 광장조성 등 취임 전부터 파격적이면서 조금은 무모한 듯한 계획을 마구 쏟아내 시청 안팎에서 ‘다소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명박 시장.

그가 취임하자마자 결정적 실수를 연발한 배경으로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CEO(최고경영자)에 오르면서 시작된 성공신화가 주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입사 5년 만에 이사가 된 뒤 사장으로 대기업을 지휘한 데 이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에는 거물급인 이종찬 노무현씨 등을 꺾고 금배지를 다는 등 온통 불패신화의 연속이다.

더구나 서울시장 선거도 예선에서 절대 불리란 예상을 뒤엎고 공천을 따내는가 하면 본선에서도 뒤져있던 여론조사 결과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유 있게 김민석 후보를 눌렀다.

이렇게 계속된 성공신화가 그를 ‘오만형’과 ‘독선형’으로 몰고 갔고 이로 인한 거침없는 성격이 일련의 사건들을 만들었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실제 이상득 의원도 전화통화에서 ‘겸손’을 주문한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30대 건설회사 사장 재직시에는 현대 그룹의 비호아래, 50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거대 정당의 보호아래 공개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던 이 시장이 60대 들어 자신을 시장으로 뽑아준 시민들에 의해 호된 재평가 절차를 밟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만으로 이 시장의 독선적 행태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2/07/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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