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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도예가 신상호

 문명 이전의 세계에 대한 동경 혹은 꿈

“1995년 파리에서 본 에티오피아 조각은 줄곧 나를 사로잡아 왔죠. 미와 추를 초월한 원초의 느낌말이죠.”

도예가 신상호(55ㆍ홍익대 미대 대학원장)의 마음은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바나를 달리고 있다.7년 만에 갖는 개인전 ‘아프리카의 꿈’처럼 그의 아프리카는 태초의 고향으로서의 아프리카다.

“예술의 고향과 인간의 고향을 찾아 가 보고 싶었어요.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문명 이전의 세계를 그려 본 작업이랄까요. 원시의 세계는 모든 작가들의 고향 아닌가요.”

62점의 대형 동물 두상이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디서 본 듯하지만 지상에 있는 구체적 동물이 아니다. 말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영양 같기도 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돼지도 될 수 있는 가상의 동물이다.

“아프리카라는 원시의 땅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상상력이 만든 동물에 투영한 거죠.” 각각의 동물 조형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것도 보는 이의 상상력을 제한할까 싶어서다.

“유럽이 맥을 끊어 놓은 아프리카 고유의 철학과 예술 정신을 살려 내고 싶었어요. 상업주의에 변질되기 이전의 아프리카이죠.”


흰빛으로 환원한 한국적 샤머니즘

전시작들은 도자기와 조각 작품들의 기존 관념을 뒤집기에 충분하다. “점토를 다룬 오랜 경험에서 흙을 판(板)처럼 만들어 잘라 형상을 만들어 가는 거죠. 완성시키는 데에 작품에 따라 5~6일에서 한 달씩 걸려요.” 상상 속의 아프리카 동물들이 왜 한결같이 흰 옷을 입고 있을까. “그건 바로 한국적 토속미가 이입됐기 때문이죠.”

한국이 갖는 특유의 샤머니즘적 세계를 흰 빛으로 환원시켰다는 설명이다. 거기에는 아프라카나 우리나 결국 원시성에서는 같지 않느냐는 작가의 질문이 깔려 있다. 도자기라는 양식을 통해 동물적 주술성을 구현한 것은 신상호가 처음이다.

그는 원래 1980년대 청자ㆍ분청ㆍ백자 등 도자기의 귀재라는 평가를 듣던 정통 한국 도예가이다. 주제는 이역만리의 것이지만 작품 전체에는 한국 특유의 영혼 또는 정신이 관류하고 있다.

평단은 그의 도예 인생 37년을 ‘흙의 본질 탐색과 그 가능성에 대한 도전’으로 요약한다. 1995년 동아갤러리에서 가졌던 ‘꿈과 머리’전은 극도로 단순화한 동물 머리 형상을 분청사기로 나타낸 작품들로 가득했다.

그 작품들은 현재의 작품들을 낳은 배아인 셈이다. 특히 그의 청자 투각 항아리는 정부나 기관에서 주최하는 공식적 모임에서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를 털어 놓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고 간 것이 그의 도자기였다. 그 사실은 양국 국가원수 회동을 보도하는 미국 잡지의 사진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알게 됐다.

전 대통령측은 방미 길에 오르기 몇 달 전부터 이천 등 도요지를 돌아다녔으나 구하지 못해 수소문 끝에 방미 사흘 전 신상호란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찰스 영국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때도 전두환 대통령이 선물했던 것은 그의 도자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세계에서 보낸 결혼 축하 선물 중 그의 도자기가 베스트 5에 뽑혔다는 기사가 난 잡지를 청와대가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후 내한한 찰스 황태자는 신상호의 주소를 수소문해서 연락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하얏트 호텔측은 부랴부랴 그의 도자기 한 점을 구입, 신상호와 사장이 직접 전달케 했다.

‘아프리카의 꿈’의 전시 작품들도 정부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 1981년 유엔에서 남북한 관련 투표가 벌어졌을 때였다. 북한은 김일성 뱃지에 모부투 자이레 대통령의 얼굴을 새기는 등 선심 공세를 폈다.

당시 한 표가 아쉬웠던 한국 정부는 친북 국가로 분류된 자이레의 모부투 정권을 회유키로 결정했다. “후진국이었지만 예술가는 한 수 위로 쳐 주던 나라거든요.” 당시 이종업 주 자이레 대사가 자신의 집까지 와서 “대통령측에 작품을 직접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러잖아도 아프리카의 자연을 들러 보고 싶었던 신상호는 높이 60㎝짜리 청자 투각 항아리를 들고 대통령궁을 찾아 갔다.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키로 돼 있었던 문공부 장관이 방북 계획을 철회키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뒤였다.

그 일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정치적 일정과는 별도로 그는 현지에서 수소문해 조각가 리올로를 만났다.

아프리카의 대가라는 평가들 듣던 리올로는 식민 시절 벨기에인들이 지어 놓은 아프리카 뮤지엄으로 이방의 작가를 안내했다.

샤머니즘과 토템 신앙에 근거한 토속적 작품들은 도시의 일상에 찌든 그의 영혼을 자극했다. “구석구석까지 느낌으로 충만해 있었어요. 이 때문에 미의 개념보다는 느낌을 주느냐 여부로 작품 기준이 바뀌게 된 계기였어요.” 비바람과 인간이 바친 온갖 제물에 마모된 고목은 그대로 예술품이었다.


예술가의 첫째 덕복으로 새로움의 추구

“전통과 현대, 어느 것도 버릴 수 없었죠. 한국과 서양의 도자기를 넘나 든 이력 때문이죠.” 그에게 있어 탐색과 방황이 곧 허무는 아니다. 마침 미국의 진보적 도예전문 계간지 ‘어메리컨 세라믹’은 여름호에서 그를 표지 인물로 다뤄 7년만의 전시회를 더 뜻 깊게 했다.

그 잡지에서 아시아 작가를 심도 있게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년 전부터 내게 연락해 온갖 자료는 다 달라고 하더니 이제야 나왔군요.” 그는 새것을 추구하지 않는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라는 명제를 철석 같이 믿고 있는 사람이다.

정통 한국 도자기에서 현재에 도달할 때까지 4년마다 한 번씩 작품전을 가져 온 부지런한 작가다. “4년이 되니까 뭔가 새로운 게 나오더군요. 싫증을 빨리 느끼는 내 성격 때문일까요.”

1985년의 비석 조형물 전시는 그러나 한결같던 도예 작업에 싫증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당시 현대미술관 마당에 상설 전시됐던 까만 비석들은 남모를 사연을 갖고 있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별 말 없던 그가 부인 한윤숙(55ㆍ생활도예가)에게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위정자들을 제사 지내는 비석”이라고 털어 놓은 것이다. 8월이면 보직도 곧 끝내게 될 그는 새로운 시간들에 마음이 들떠 있다.

“한 1년 동안 정신없이 놀아 보고 싶어요.” 아프리카와 남태평양의 원주민 사회를 인류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시각으로 돌아다 보고 싶다는 말이다.

“가장 아프리카적인 중앙 아프리카 밀림과 사바나 지역을 혼자서 다닐 겁니다. 그동안 사귀었던 현지의 아프리카 친구들도 반가워 할 겁니다.” 여행 후는 일단 귀국한 다음 남태평양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의 원주민 사회를 주유하리라는 계획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쯤이면 도예로 거듭난 한국의 폴 고갱을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유리와 쇠 등 지금까지 못 했던 재료로도 지평을 넓혀 보고 싶다며 그는 눈빛 가득 호기심을 발했다.

“남은 인생은 도예가도, 조각가도 아닌 신상호로 살고 싶어요. 이제 곧 육십입니다. 진정한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사용할 겁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2/07/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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