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분홍바늘꽃

두메산골 수 놓은 화려한 꽃 군무

한여름의 더위도 다가서지 못하는 높고 깊은 산에서 아주 드물고 드물게 자라는 풀이 있다. 게다가 바라보는 순간 감탄사를 늘어놓을 만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바로 분홍바늘꽃이다.

분홍바늘꽃을 만나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절로 알 수 있다. 꽃이 분홍색이며 씨방이 바늘처럼 아주 길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씨방이 아주 긴 식물들은 모두 바늘꽃과에 포함되는데 이 집안 식물들이 보통은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우리가 잘 아는 달맞이꽃과 분홍바늘꽃이 단연 꽃이 크고 화려하며 그 중에서 분홍바늘꽃은 고고하기까지 하여 단연 돋보인다.

이 종류 식물을 통칭하는 학명 중 속명의 이름은 에필로비움(Epilobium)으로 희랍어로 위쪽을 뜻하는 ‘epo’와 열매의 종류로 익으면 선을 따라 벌어지는 삭과를 뜻하는 ‘lobon’의 합성어이다. 긴 자방 위에 꽃이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분홍바늘꽃을 처음 만난 것은 백두산이었다. 식물도감으로만 보던 이 풀이 주변을 온통 붉게 만들며 정말 아름다운 꽃을 피운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격을 필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엔 남쪽 땅으로 내려와 오대산에서도 보고, 민통선 지역인 향로봉에서도 만났으며 함백산에서도 접했다. 이 즈음엔 자생식물을 주로 키우는 강원도 한 식물원에서 이 식물을 군락으로 키우고 있어 분홍바늘꽃의 화려한 꽃무리를 비교적 쉽게 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만주벌판이 이어지는 중국과 러시아지방에서도 여름이면 만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북방의 꽃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남한의 산에서는 적어도 해발 1,000m 이상은 되어야 하고 볕이 드는 풀밭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곳이다.

다른 말로 두메바늘꽃이라고도 하고 큰바늘꽃이라고도 하는데 정말 이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은 깊고 깊은 두메산골이며 다른 바늘꽃 종류에 비해 식물체 전체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한자로는 유란(柳蘭)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그 붉은 꽃무리가 인상적이기 때문인지 화이어 위드(Fire weed)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식물의 범주에 든다. 하지만 자칫 그 모습에 매료되어 내집으로 옮기고 싶다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

뿌리가 아주 깊어 옮겨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낮은 땅으로 내려오면 잘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까다로운 덕택에 보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더욱 가치가 올라가는 그런 식물이 분홍바늘꽃이다. 꼭 키우고 싶다면 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을 유지하는 장소에 씨를 뿌려 키워야 한다.

키가 크면 허리쯤 크고, 한 여름에 줄기 끝에서 지름 2, 3cm의 진한 분홍색 꽃들이 줄줄이 달린다. 꽃받침과 꽃잎이 각각 4장인데 모양이 똑같지 않은 것도 특징중의 하나이다.

조건만 맞는 곳이라면 꽃밭이나 절개지 사면이나 어디든 무리를 지어 심으면 좋다. 한방에서는 약으로도 쓰이는데 젖이 잘나오게 하고 장이 잘 움직이고 통증을 줄여주며 출혈을 멈추는 효과가 있다.

올 여름 휴가에는 분홍바늘꽃을 열심히 키워서 낸 식물원을 찾아갈까 한다. 아름다운 꽃무리를 보는 것보다 더 큰 휴식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7/19 16:5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