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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8순맞은 素石

소석(素石)은 어떤 돌일까. 사전에는 풀이가 없다. 소설(素雪)은 흰 눈, 소복(素服)은 흰 옷으로 해석되어 있지만 소석은 뜻 풀이가 없다.

7월 10일 8순 기념 정론집 ‘오 大韓民國 누가 지키리’를 낸 전 신민당 대표최고의원 이철승 7선 의원의 아호는 소석이다. 그는 흰 돌일까. 그는 원래의 돌일까. 질박한 돌멩이일까. 463쪽, 7순 이후 10년간의 정론이란 글 모음을 읽으며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나같이 깨끗하고 나같이 한길을 걸어온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표현했다. 4ㆍ19 이후에야 작은 돌(小石)이란 아호를 素石으로 바꾸었다.

그를 장시간 두 차례 인터뷰 했던 언론인이자 국회 의원이었던 김진배(김대중 수난사 ‘인동초의 새벽’저자)는 이렇게 평했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풍화의 흔적 없는 바위처럼 우직하게 버티고 있는 한 정치인”이라고.

그는 자평했다. “내고집. 이철승의 고집. 일평생을 올바르게 살아온 나의 인생”, 그는 스스로 1922년 태어나 8갑(甲)의 인생을 살며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의 월드컵을 빨간 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것을 보기까지 ‘고집스런 올바른 생’을 살고 있다.

그가 정론집에서 후렴처럼 넋두리하는 단어는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제일 많이 쓴 말이 ‘대한민국’이요, ‘건국이념’이요, ‘반탁(反託)’ ‘반공(反共)’. 그리고 적대적으로 쓴 말이 김일성, 김정일, 좌익, 주사파, 몇번 씩 반복하는 숫자는 “6ㆍ25로 300만의 동족이 죽고 8만 5,000명 남북자가 생겼으며 미송환 국군포로 5만 8,000명, 남북어부 490명, 아사자 300만명, 북한수용 정치법 20만명”이다.

그가 주장하는 건국 이념은 자주ㆍ독립ㆍ민주ㆍ통일이다. 그에게 DJ의 햇볕정책은 민주통일에 대한 배반이다. 그에게 김일성은 “우리민족의 영원한 원수”요, . 김정일은 북한 정치범살해, 인민을 아사시킨 국제형사재판소 전범이다.

그는 1987년 선거에서 DJ의 황색바람에 7선의 전주라는 정치고향을 잃고 현실정치를 떠나 생각하는 정치인, 비판하는 정치인, 정치 논객이 됐다. 그의 속말 표현으로 정치라는 행장(行裝)을 싼 것이다.

그는 그래서 ‘사꾸라’라는 소리를 들었던 중도통합론에 대해 7순에 이를 정리하는 정론집을 냈다. ‘중도통합론과 나’다. 중도통합론은 “국가의 안보라 자유는 대립적 개념이 아닌 보완적 조화”라면서 “자유에는 정당간의 경쟁을, 안보에는 공조를” 강조했다.

그는 정론 쓰기와는 달리 육두문자에 호남특유의 해학을 갖고 대화한다. ‘사꾸라’문제에 대해 그는 어느 월간지와의 인터뷰(1995년 10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적 특수상황에서 안보와 통일문제는 여야가 초당적으로 타협하고 정치문제는 대립하는 게 내 중도 통합론이야. 미군 철수계획이 나왔을 때 내가 미국 가서 반대했더니 양 김씨(DJ, YS)들이 ‘왜 정부외교를 하느냐’고 비판해. 흑백논리로 나를 사쿠라라고 몰았어. 요즘 김대중씨가 자신을 ‘중도’로 불러 달라고 하고 YS 대통령은 ‘외교문제에서는 초당적으로 협조해주고 국민 화합해야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그는 흐뭇하게 육두문자를 썼다.

“원래가 새벽밥 먹고 이슬 헤치는 사람은 고생스러운 거요. 길 닦아 놓으면 도포입고 활개치는 사람 많아.”

소석은 어떻든 괴석(怪石)이 아닌 것 만큼은 틀림없다. 그가 쏟아 놓는 3김에 대한 정론은 그들을 괴석처럼 보이게 한다. 그는 YS가 1993년 집권 초 한완상씨와 김정남씨를 통일원장관과 교문수석으로 발탁, 군의 정훈교재를 개편하고 민예총에 보조금을 준 것을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반탁, 반공 건국운동을 한 인물들을 배제시킨 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 25명에 4명의 진보지식인을 합류시킨 것을 제주(祭主)가 바뀐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못 참는다. “시골에서 비가 올 때 호박 썰어서 칼국수 주어요. 별미로 주는 것이지. 점잖은 손님 올 때 칼국수 내놓은 법이 없어.”

그는 JP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5ㆍ16 이후 10년 동안 그는 정치정화법에 묶어 있었다. DJ와 JP의 연합은 그에게 도저히 이해 될 수 없는 연합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JP가 DJ가 ‘범죄자인 김정일’을 “효심많은 예의 바른 장군님”이라 평할 때 반공 보수주의 총리가 한마디 없었던 것을 이상스럽다고 느끼고 있다. “JP는 국가보다 당. 당보다 개인의 영광을 위해 달리고 있다. “총리가 1년에 네 번이나 외국간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DJ에 대해 정론은 독설이다. “DJ정권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썩고 병든 정권이다. 청와대는 자고 나면 터지는 각종 게이트 복마전으로 범죄소굴이요 불법 사령탑이 된지 오래다.…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 부도덕한 솜씨를 보고 배울 수 밖에 없는 아들들이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도록 수신제가 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소석에서 素의 뜻에는 원한이나 복수는 없다.그의 말과 글에는 너무 지나친 3김에 대한 원한이 있어 그 스스로의 순수를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7/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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