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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대선주자들의 명제는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불쌍한 녀석’이라고 말했다. 1998년 1월 21일 모니카 르윈스키 이름이 방송에 나오기 시작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클린턴은 1996년 콜걸과 불미스런 관계로 백악관 정치고문직을 떠난 딕 모리스에게 전화했다.

“언론이 이야기 하는 짓은 하지 않았네. 나는 성적인 문제에 관한한 문을 닫으려 노력했네. 그런데 이 여자애를 만나면 이런 결심을 잃어 버린단 말일세.”

모리스는 1977년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재선에 실패한 후부터 그의 선거 참모를 했다. 스스로 ‘자폐증’환자라고 말하는 모리스는 콜럼비아 대학을 나온 후 뉴욕의 민주당 선거전략가로 일했다. 주지사 때 클린턴은 너무 생각이 튀고 황당무계한 그를 많은 참모 앞에서 뺨을 때리고 쫓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혼자서 중얼거리듯 기발한 발상을 늘어놓는 그는 클린턴에게 아이디어의 샘물이었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클린턴은 하원에서 58석, 상원에서 8석을 잃었다. 공화당의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마치 내각제의 총리인 것처럼 국민에게 10대 강령 제정을 약속했다. 클린턴의 인기는 40%를 밑돌았다.

이때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는 모리스를 백악관으로 부를 것을 권했다. 이날의 전화(98년 1월)에서 모리스는 클린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여론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응답자의 43%는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무슨 관계를 가졌든 상관없이 클린턴이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또 56%는 유죄가 분명해진 뒤에 대통령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리스는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클린턴에게 충고했다. “모든 진실을 밝혀라. 부적절한 관계는 개인적 문제라는 여론이 높다.”

클린턴이 ‘불쌍한 녀석’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모리스를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올 6월 초에 그가 쓴 ‘권력 놀음-어떻게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는 지고 이기는가’에 그 이유가 조금 나와있다.

뉴욕 포스트와 폭스 케이블 뉴스에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정치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역사란 이런 추적의 이야기다”는 전제를 달고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미국 대통령 12명과 윈스턴 처칠 등 미국을 제외한 각국의 정치 지도자 8명의 성공과 실패를 다루고 있다.

모리스의 회고에 의하면 클린턴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의회지배권을 상실하자 그에게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런 상태를 헤쳐 나갔느냐”고 묻는다. 그는 클린턴에게 프랑스와 미테랑 대통령의 자서전을 펼쳐 보였다. “미테랑이 자크 시라크(현 프랑스 대통령)에게 한 것처럼 하시오.”

미테랑은 1981년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에 오른 뒤 640억 달러를 들여 국유화를 단행했다. 해외 수지 적자폭은 81년 한해에 100억 달러 적자에서 200억 달러로 급증했다. 86년 의회선거에서 온건 우파인 전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파와 당시 파리 시장인 시라크의 극우파가 다수당을 차지해 총리를 교체해야만 했다.

미테랑은 예상을 뒤엎고 극우파인 시라크를 총리로 지명했다. 시라크는 “야망있고 공격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는 평을 듣는 샤를르 드 골의 정치적 후계자”였다. 미테랑은 시라크가 65개의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 정책을 폐지하려 해도 간섭하지 않는 등 시장경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미테랑은 외교에만 전념했다. 소련과 스페인, 독일과 연계를 강화하며 유럽안보를 걱정했다. “나는 이제 정당인이 아니다. 나는 심판이다”이라는 것이 미테랑의 신념이었다. 그는 88년 대선에서 시라크를 누르고 재선했다.

모리스는 클린턴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제3의 길이 아니다. 이건 ‘삼등 변화’(triangulation:삼각측량)다. 중도(center)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기본(클린턴의 경우 자유주의 민주당)은 저변에 깔고 한 변에는 공화당 좌파, 다른 한 변에는 민주당 우파의 삼각형을 만드는 것이다. 미테랑은 프랑스를 삼등 변화시켜 재선에 성공했다.”

클린턴은 모리스의 삼등변화를 받아들였다. 일하는 자에게 사회보장 카드를 주게 했고 범죄를 감소시키기 위해 경찰관을 증원하고 교도소를 증설했다. 작은 정부론을 내세웠고 예산 절감 등의 공화당 강령을 받아 들였다. 그래서 96년 재선했다.

모리스는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온정적 보수주의’의 모토를 내걸고 전통 보수주의를 삼등 변화시켜 당선됐다고 주장한다. 공화당 후보인 부시는 교육과 의료보험 개혁, 사회보장의 지속 등 민주당의 강령을 공약했다.

모리스는 삼등변화의 요체는 자신이 속해 있는 기본을 잃지 않고 중도를 향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만을 위해 근본을 잃었을 때 그 변화는 실패한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근거를 들어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일이 잘 안되면 신당을 꿈꾸는 정치인, 특히 대선주자들이 생각해볼 명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7/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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