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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성동구 성수동 '뚝섬'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옛날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의 둑섬이었는데, 갑오경장 뒤에 한성부 두모방(豆毛坊:두물내)의 전관계(箭串契:살곶이벌)가 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 일제가 부군(府郡)폐합에 따라 고양군 둑도면에 편입됐다.

1946년 10월 1일 동명변경에 따라 성덕정(聖德亭)과 둑섬에 처음으로 상수도 수원지가 건설되면서 성덕정과 수원지의 머리 글자를 따 오늘의 땅이름인 ‘성수동(聖水洞)’이 됐다.

둑섬은 들판이어서 나라에서 말을 사육ㆍ방목하던 목마장이었다. 또 조정에서 군대의 열무장(閱武場)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나랏님이 가끔 말 기르는 것과 군대의 연무(連武)를 사열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성덕정’이라는 정자이다.(지금은 없어지고 다만 그 자리가 성수동 1가 110번지 쯤으로 추측할 뿐이다.)

오늘날 ‘화양동’이라는 땅이름 유래가 된 화양정(華陽亭)도 세종 14년(1432)에 세워졌다. 말을 보기 위해 이 곳을 찾았던 세종대왕은 정자를 세우고 주서(周書)에 나오는 ‘귀마우 화산지양(歸馬于 華山之陽)’의 뜻을 따서 화양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단종이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갈 때 이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사람들은 단종이 앞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 화양정을 회행정(回行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둑섬의 초원과 한강이 아우러져 경치가 꽤나 좋았던지, 태종도 왕위를 아들 세종에게 물려주고 이곳 발산(鉢山:臺山:42.8m)에 이궁인 낙천정(樂天亭)까지 짓고 머무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조 초기부터 이 곳은 ‘경도십영(京都十詠)’의 하나인 전교심방(箭郊尋坊)의 놀이터로 더 알려져 있다.

둑섬 정수장 정문 왼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성당과 흡사한 근대식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72호로 지정돼 있는 우리나라 첫 수돗물 공급처였던 ‘경성수도 양수공장’이다.

1908년 9월 1일, 이 공장의 송수펌프가 힘차게 돌아가면서 구내에서 처음으로 수돗물이 나왔다. 임금님의 밥을 짓던 수라간에도 수도꼭지가 달리게 되었다. 임금과 함께 4대문안과 문밖 용산 일대 주민 등 16만 5,000여 명이 처음으로 혜택을 보게 됐다.

서울에 유학 온 자식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한강물을 길어다 동네 뒷골목을 누비며 물을 팔던 북청 물지게 꾼들도 수돗물이 나오자 긴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실 첫 수돗물이 나온 것은 1903년 12월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위크가 당시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상수도 시설에 대한 특허를 받으면서부터.

이후 특허권이 1905년 영국인이 세운 조선수도회사에 넘어갔고, 조선수도회사에서 하루 1만 2,500톤의 정수시설을 오늘의 둑섬에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어수정(御水井) 물을 마시던 임금님도 서민의 물, 수돗물을 마시게 되었으니…, 역시 성수(聖水)인가 보다!

이홍환 현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2/07/2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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