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 펀치] "내 세컨드 하면 되잖아"


몇 년 전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각자 가정이 있는 유부남과 유부녀의 애틋한 사랑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불륜 신드롬은 좀 조심스럽고 순진한 편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남녀 주인공은 간절히 원하면서도 섹스를 하지않았고( 안한게 아니고 못했다, 죄책감과 도덕적인 책임감 때문에) 둘이 손잡고 도망을 치지도 않았고, 결국 아픈 이별의 과정을 거치며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갔다.

요즘은 어떤가? 채널을 돌릴 때마다 불륜이 등장한다. 마치 불륜의 관계를 빼먹으면 전체 이야기 구조가 흔들리기라도 하는지 그 역할이 크고 작건 간에 어김없이 나온다. 불륜의 강도도 예전과는 비교가 안되게 달라졌다.

드라마에서 불륜의 주인공들은 망설임의 시간을 오래 갖지 않는다. 서로에게 끌리면 바로 키스하고 섹스한다. 그리고 각자의 배우자들에게도 당당하게 고백한다.

물론 이야기 전개상 몹시 괴롭고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그건 순전히 자기애에 빠진 사람의 나른하고 무책임한 개폼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당하는(?) 상대 배우자들 역시 지극히 세련된 자태를 잃지 않는다.

처음에는 놀라고 분노하고 배신감에 허탈해 하지만 예전처럼 상대방을 찾아가 머리채를 휘어잡는 해코지를 하지는 않는다. 그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가벼운 고민의 시간을 보낸 뒤 시원하게 이혼을 해주고 당당한 홀로서기를 준비한다.

불륜에 임하는 인물들의 당당하고 세련된 태도가 너무 빈번하게 방송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불륜의 사랑이 더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처럼 미화되어서 일반인들의 건전한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 같다.

이러다 보니 각각의 배우자 외에 애인 하나 두지 못한 사람은 어디가 좀 모자라거나 인격형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드는 세태이다.

멀쩡히 지나가는 남녀 커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부부일까, 불륜일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한 음식점의 주인 아줌마는 드나드는 손님이 불륜인지 아닌지 담박에 알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둘이 마주보고 앉으면 부부고, 옆에 나란히 앉으면 불륜이야. 백발백중이라니까. 아휴,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남들이 욕하는 줄도 모르고 히히덕 거리는 걸 보면….” 만약 유부남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아니 요즘은 은밀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뻔뻔하게 물어보자.

“야, 너 애인 있냐?”

“…아직…”

이럴 거다. 각자의 배우자 외에 애인이 없다는 현실이 지극히 당연한 게 아니라 현대인의 필수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면목없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직이라니….그럼 언젠가는 반드시 불륜의 애인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마치 현대인의 필수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해 미안하고 민망해 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이 땅의 수백만 중년들이다. 이런 중년들을 위해 현재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중 하나인 ‘청년백서’를 패러디 해볼까.

알다시피 ‘청년백서’는 교련복을 입은 연기자들이 절도있는 자세를 유지해가며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현실세태를 준엄하게 꼬집고 꾸짖어보는 코너이다.

‘시험볼 때 컨닝하는 놈 때려잡기’ ‘원조교제 하는 놈 때려잡기’ ‘아내 때리는 놈 때려잡기’ 등등 정말 한번쯤 손봐주어야 할 인간들이 많긴 많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중년백서! 바람피는 놈 때려잡기’

여자 : 아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중년 : (씨익 웃으며) 우리 마누라가 아니네.

여자 : 마누라도 아닌데 이렇게 삽입해도 되는 거예요?

중년 : (여자의 머리와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당신을 내 세컨드로 임명합니다.

입력시간 2002/07/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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