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요계는…] 가슴 설레는 한여름 밤의 록세상

국내외 정상의 로커들 총출동, 록 페스티벌의 진수 만끽할 기회

얄팍한 댄스 음악도, 경박한 랩도 싫다. 불타는 태양을 록의 포효로 날려 버린다. 7월의 끝자락을 두 편의 대형 록 콘서트가 마감한다. 발랄한 젊음의 공격적 록과 삶의 비밀을 알아 버린 노숙한 로커들의 향연 등 대조적인 록의 색채에 팬들의 가슴은 설렌다.


미국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윤도현·크라잉 넛과 한 무대 서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국민 가수로 부상한 윤도현 밴드가 한 무대에 나란히 선다. 1997년 발표했던 첫 앨범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비롯해 언제 들어도 늘 기억에 새로운 ‘오! 필승 코레아’까지 윤도현의 호쾌한 보컬에 실려 나온다.

이들의 무대는 1980년대의 들국화, 1990년대의 부활을 거쳐 한국의 정통 록은 어디까지 와 있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과 자웅을 겨룰 국내 록 밴드는 광적 무대 매너의 4인조 펑크 록 밴드 크라잉 넛이다. 1996년 길거리 펑크쇼에 출연해 머리를 마구 흔드는 헤드 뱅잉 등 광적인 무대 매너로 젊은이의 열광적 반응을 자아내더니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총아로 떠올랐던 그룹이다.

특히 1999년과 2000년 일본 최고 권위의 록 페스티벌인 후지 록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초청돼 그 위상을 한껏 드높이기도 했다.

이번 무대를 앞둔 이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펑크 록의 대선배로 이번에 첫 내한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나란히 꾸미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전세계 록의 평정을 부르짖고 있는 미국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톡 쏘는 붉은 소스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그룹이다.

1991년의 충격적 앨범 ‘Blood Suner Sex Magic’으로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들은 이후 1992년 싱글 ‘Give It Away’로 그래미상을 타 아성을 굳혔다. 이번 내한은 한국의 록 열풍을 축하하고 신보 ‘By The Way’ 발매를 기념한다는 의미도 함께 한다.

이번 첫 내한은 이들의 팬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띤다. 미치광이 베이시스트 플리가 또 어떤 해프닝을 보여줄 지 귀추가 주목되기 때문이다.

열이 오르면 전라로 무대를 뛰어다니는 악동으로 알려진 그는 ‘한국 공연 때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국내 기획사인 SJ 엔터테인먼트에 써 냈다. 그러나 이행 여부는 순전히 공연 당일 당사자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야외 록 페스티벌인 후지 록 페스티벌 측의 기술 제휴로 이뤄진다. 그동안 국내서는 하지 못 했던 록 페스티벌의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주최측은 다짐했다.

추억의 무대 여는 전인권·한영애
그룹 봄여름가을겨울도 의미있는 동참

록이 튀는 젊음의 어법인 것만은 아니다. 중견 로커들의 무대는 록의 보다 성숙한 지평을 보여 준다. ‘통쾌한 콘서트가 그것이다. ‘음악의 지성인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 무대는 중년이 바라본 록 음악의 향연이다.

1980년대 록 팬들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전인권과 한영애가 전면에 나서는 무대다. 여기에 정교한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에 통달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이 동참해 더욱 풍성해진다.

추억의 록 그룹 들국화의 리더이자 보컬로 깊은 인상을 남긴 전인권이 선두에 섰다. 1980년대 한국의 척박한 가요계 풍토에서 이들은 로커가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더욱 알려졌다.

그러나 들국화의 절규는 머잖아 대중 음악 팬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그 수장이 바로 전인권이다. ‘돌고 돌고’, ‘행진’,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것만이 내 세상’ 등 그들의 주옥 같은 노래 전인권의 거칠면서도 조금은 퇴폐적인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포크 블루스 록 테크노 등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능수능란하게 변신해 온 한영애가 여기에 동참한다. 1980년대 포크 록 그룹 해바라기 시절부터 본격 로커로 변신한 시절까지가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루씰’, 등 정통 블루스 넘버, ‘누구없소?’와 ‘코뿔소’ 등 강렬한 록, ‘여울목’ 등 포크에 걸쳐 빼어난 가창을 들려주는 한영애의 음악적 특질이 골고루 발휘될 무대다.

“음악적으로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친한 동료들과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영애는 지금껏 한번도 조인트 콘서트를 한 적이 없는 전인권과의 무대에 무척 기대를 갖는 눈치다.

봄여름가을겨울과는 1902년 김현식 추모 콘서트에서 한 무대에 선 적 있다.

“노래할 때가 제일 기뻐요.” 한영애는 지금도 무대 현장에 꾸준히 선다. 최근의 무대는 7월 9~10일 88체육관에서 원로 가수 박인수의 쾌유를 기원하며 가졌던 콘서트 ‘Just Friend’였다.

임희숙 박상민 이문세 최희준 김준 등 가창력 있는 가수 20여명이 함께 했던 무대에서 그는 ‘루씰’, ‘푸른 칵테일’ 등을 불러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한편 프로그레시브 록과 퓨전 재즈를 넘나드는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역시 그들의 히트곡으로 무대를 달군다. ‘어떤 이의 꿈’,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거리의 악사’ 등 왕년의 히트 곡은 물론 신보 ‘Bravo My Life’ 에 수록된 곡들을 들려준다.

모든 출연진들은 자신의 히트 곡을 메들리로 꾸며 주는 1부와 2가 끝난 뒤 3부에서는 한 곡을 각각의 개성대로 부르는 3부 ‘3인 3색’ 무대를 마련, 조인트 콘서트의 뜻을 더욱 깊게 해준다. 여기서는 ‘조율’ , ‘행진’, ‘어떤 이의 꿈’ 등 히트 곡을 여러 음색으로 즐길 수 있다.

또 대미에서는 대학가 노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사노라면’을 전 출연진과 함께 부르는 순서가 마련돼 있다. “앞으로는 이 같은 조인트 콘서트를 많이 가질 거예요.

노래자랑이 아니라 잊었던 동료애를 확인하는 자리니까요.” 한영애의 말은 이번 공연이 갖는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 무대는 또 한국에서의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의료 혜택도 못 받고 고생하는 동남아 외국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의 뜻도 함께 한다.

장병욱기자

입력시간 2002/07/26 15:11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