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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요계는…] 김수철, 큰 걸음 다시 뗀 '작은 거인'

국악적 촉 탐색 접고 진정한 로커로 회귀

“앨범 ‘난 어디로’ 이후 12년 만에 발표한 진짜 록 앨범이죠. 리메이크 한 ‘나도야 간다’를 빼놓고는 전부 신곡이에요. 제 출발점으로 돌아 간 거랄까요.”

국악적 록의 줄기찬 탐색을 보여 오던 김수철(46)이 초심으로 돌아 왔다. 신보 ‘Pops & Rock’은 국악을 중심으로 펼쳐 온 그 동안 탐색을 접고 사라져 가는 록 정신의 회귀를 부르짖는 회심작이다.

물론 젊은 시절처럼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록은 아니다. 소울, 포크, 발라드는 물론 트로트까지 모두 록의 어법으로 거듭났다. 힙합이나 발라드 일변도로 돌아선 요즘 대중음악 판도에서는 복고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작품이다.


12년만에 록앨범 발표

“가요계를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한 1999년부터 구상했던 앨범이죠.” 좋아하던 술ㆍ담배도 그 무렵 독한 마음 품고 끊었다. 록과 블루스를 넘나들던 왕년의 현란한 기타 애드립은 그대로다.

더욱 깊어진 목소리 바이브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모든 곡을 직접 작곡, 작사ㆍ작곡ㆍ편곡 작업이 고도로 분업화해 가는 가요계 풍토를 거스른다.

바로 그의 출발점인 싱어-송 라이터의 모습이다. 2000년 10월 설립해 대표 이사로 있는 자신의 음악 전문 프로덕션사인 리빙 사운드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모처럼의 록 음반 작업에서 가장 큰 힘이 돼 준 것은 가까운 후배의 협력이었다. 신보에 게스트로 참여해 달라는 그의 부탁에 그들은 흔쾌하게 화답해 온 것이다.

취입 작업 때는 하루의 7할을 녹음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김수철에게 그 고집이 옳았음을 입증해 준 후배들이다. 김수철이 록 밴드의 이상으로 생각해 온 5인조(보컬 기타 건반 드럼 베이스) 밴드를 실현시킨 음악적 동지들이다.

신해철은 공격적인 록 보컬의 곡 ‘이대로가 좋을 뿐야’를 불러 주었다. 또 사물놀이 김덕수의 큰아들 김용훈은 요즘 10대의 진솔한 이야기인 ‘자꾸 이러지마1’에서 래퍼로 나와 걸쭉한 랩을 선사한다. 기타와 사물놀이의 협연 무대를 통해 형제처럼 지내 온 인연이 한층 발전한 것이다.

김수철은 이번 앨범이 요구하는 컬러에 맞춰 변신을 마다 않은 후배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다. 댄스 가수로 알려져 온 박미경은 ‘다시 또’로 절규하는 록 발라드 가수로 변했다. 달콤한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가 굳은 장혜진은 김수철의 부탁에 난생 처음 힙합 싱어로 거듭났다.

‘담다디’의 이상은이 보여준 변신이 놀랍다. 몽환적인 ‘보고 싶은 너’에서는 완전히 흐느적대는 사이키델릭 가수로 변했다. ‘외로운 침묵’, ‘옛사랑’ 등 최근 들어 부쩍 호소력 짙어진 이상은이 김수철을 만나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유쾌한 로커의 신선한 변신

1978년 날렵한 차림에 전자 기타를 둘러 메고는 흥이 오르면 척 베리 스타일의 거위 걸음을 하다 갑자기 그룹 ‘더 후’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젠트 부럽지 않은 점프를 해 대며 스테이지가 좁아라 돌아 다니던 유쾌한 로커 김수철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록 그룹 ‘작은 거인’ 시절의 그는 그렇게 기억된다. 데뷔곡 ‘일곱 색깔 무지개’는 악동의 괴성처럼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반대로 ‘별리’는 한국적 한의 정서가 주조였다.

다양한 색깔의 록을 구사해 온 그는 한동안 대중 음악계를 떠나 있었다. ‘젊은 그대’와 ‘왜 모르시나’로 인기 절정을 누리던 1985년 록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KBS의 TV문학관 ‘노다지’ 테마 음악 작곡을 계기로 국악에 본격적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그 해 중앙대 음대 국악과에 편입했다.

박범훈 교수 밑에서 국악의 세계에 눈뜬 그는 1986년 아시안 게임 주제곡, 1988년 올림픽 전야제 음악, 1993년 대전 엑스포 개막 축하곡 작곡에 이어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까지 일부 담당했다.

월드컵 음악전문위원으로 일하던 2000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메인 테마 작곡가인 반젤리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작업을 했다. 또 틈틈이 영화 음악 작업에도 참여해 ‘칠수와 만수’ ‘태백산맥’ ‘서편제’ 등의 테마 음악을 작곡ㆍ연주, 청룡영화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스크린 속으로 뛰어 들기도 했다. 1984년 영화 ‘고래사냥’의 조역 출연으로 시작된 배우로서의 김수철은 1994년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중요 배역인 천재 꼽추 화가 구본웅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불림소리’, ‘팔만대장경’ 등 묵직한 국악적 록 작품이나 스포츠 이벤트 음악 작곡가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렸던 조 추첨식에서의 테마 음악 역시 그가 쓴 것이다.

32개국의 국가를 중미,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5종류로 나눠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냈던 그 작품은 올 가을께 음반화, 일반에 선보일 계획이다.


오랜 음악적 외도에 종지부

이번 음반은 그의 본령인 록으로 돌아 와 오랜 외도의 종지부를 선언하는 작품이다. 원래 2000년 가을께 발표하려 했으나 월드컵 조직위에서 음악전문위원(FIFA 메인 테마 작곡가)으로 일하다 보니 차일피일 작업을 늦춰 왔던 음반이다.

그는 현재 혼자 산다. 지난해 12월, 11살 연하의 아내가 두 딸(6살, 10살)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다. 보고픈 딸들을 못 본 지 7개월째다. “이혼 소송을 걸어 온 아내 때문에 재판 중이어서 지금은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상태”라고만 할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본인도 무척이나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신보에서 이상은의 읊조림이 그의 못다한 말을 대신한다. ‘수많은 이야기들 기억하고 있니? 예전의 생각처럼 그렇게 살고 있니? 세상이 변해가도 이것만은 간직하자고 너와 나 다짐했지. 아직 기억해.’

아픔을 딛고 돌아 온 ‘로커 김수철’의 신보 발표 소식을 신문ㆍ잡지ㆍ방송ㆍ인터넷 등 갖가지 매체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요즘 인터뷰가 하루에 두세 건은 돼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다.

여전히 악동처럼 “히히히” 웃으며 다음 길을 재촉하는 김수철은 다짐한다. “신인의 자세로 최선을 다 할 겁니다. 기타를 매일 2~3시간은 연습해요. 왕년에 짜 둔 ‘기타 산조’도 더 갈고 닦아야죠.” 해묵은 숙제를 해 치운 그의 마음은 요즘 홀가분하다.

“젊은 시절 심취했던 핑크 플로이드를 새 마음으로 다시 들으니 역시 참 좋군요.” 건강한 웃음에 자신감이 넘쳐 난다.

1998년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홈 페이지(www.kimsoochul.com)에 한 번 들러 줄 것을 당부한다. 성산동의 집, 논현동의 개인 스튜디오, 전문 녹음실인 서울 스튜디오 등 세 곳에서 좀체 벗어나지 않는 일상을 고집한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7/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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