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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정운찬 총장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데스크의 눈] 정운찬 총장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총장은 대학의 상징이며 말 그대로 상아탑의 핵심이다. 때문에 대학 총장의 말은 교육열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파장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어 항상 총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의 초점이 된다.

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학들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엘리트들을 상당수 배출해 왔으며 특히 국립 서울대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 사회가 이처럼 학연 등에 얽매이게 된 것이 서울대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그 동안 총장문제로 학내 분규까지 빚어왔던 서울대가 최근 경제학과의 정운찬(56) 교수를 신임 총장으로 선출했다. 정 신임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역대 총장들이 사용해 왔던 공관에 입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 총장은 총장 공관 부지에 집 없는 교수들을 위한 아파트를 건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총장이 꼭 공관에서 거주해야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관 없이 생활하는 것이 총장 자신의 사생활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요불급한 예산도 절감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다.

또 학생들과 교수들과도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정 총장은 이어 기자간담회에서 임기 중 총리직 제의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 평교수 때도 안 갔는데, 총장이 뭐 하러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총장은 1998년 한국은행 총재직을 맡아달라는 김대중 정부의 제의를 고사한 적도 있다.

그는 당시 “상아탑에 남아 건설적 비판을 하는 것도 지식인의 사명이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정 총장의 이 같은 언행은 역대 총장들이나 교수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상아탑을 뛰쳐나가 권력을 추종하는 것이 일종의 미덕인 세상에서 정 총장의 말은 청량제 같은 참신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때는 물론 김대중 정권까지 수많은 대학 총장들과 교수들이 입각해 총리와 장관 등을 역임했지만 별다른 업적은 남기지 못한 채 ‘얼굴마담’의 역할만 했을 뿐이다.

물론 정부에서 장관 등을 맡는 것이 흠이 되지는 않는다. 학문적 지식을 현실정치나 행정에 접목시켜 더욱 좋은 정책을 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상아탑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을 이용만 했을 뿐이다.

건전한 비판을 하는 교수들이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때문에 총장을 관두고도 대학에 남겠다는 정 총장의 말은 교직의 신성함과 지성인의 양심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정 총장의 말 중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지역별로 신입생을 안배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성급한 발언’이라거나 ‘자유경쟁의 훼손’ ‘서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 총장이 이 같은 비판을 예상했음에도 불구, 왜 이 같은 발언을 했을까.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가 2001년도 서울대 신입생 3,7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 이상이 고소득 화이트칼라 계층의 자녀였으며, 대도시 출신자가 4분의 3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소득층 자녀일수록 미대, 음대, 의대, 법대, 경영대에 몰렸다.

한국의 최고 엘리트라는 서울대 학생들의 이 같은 분포는 어떻게 보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한국 사회의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계층과 지역에 따른 기회 불균등의 어두운 단면이다. 부모 잘 만나면 과외도 잘 받아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총장의 발언은 사견임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공청회 등을 거쳐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장애인과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은 하버드 등 미국의 일류대가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정 총장은 빌헬름 레프케의 ‘휴머니즘의 경제학’이란 책을 인용, “나라의 장래가 아무리 암담하더라도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상 희망은 있다”고 밝혔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은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 법을 지키는 법관,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을 말한다. 정 총장은 이어 “우리나라에서 이 세 부류의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특히 대학, 그 중에서도 서울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부끄럽다”고 자성했다.

정 총장은 “두드려 부순다고 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며 개혁은 곧 정상화”라고 말했다. 정 총장의 말처럼 서울대가 우선 정상화된다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상당부분 고쳐질 수 있을 것이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8/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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