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후보, 경제는 몇점인가?] 노무현·이회창 '경제면접' 턱걸이

재계 서머포럼에서 경제운용 청사진 제시

“대기업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조사와 주5일 근무제 등 ‘뜨거운 감자’에 대해 한나라ㆍ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이 굵은 선의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전국경제인연합회 K상무) “시장경제 발전은 치열한 시장 경쟁을 통해 이뤄진다. 약자를 보호한다면서 시장 경제를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두 사람 모두 앞 다퉈 시장경제주의자 임을 자처하지만 차별성 있는 정책제시에 한계성을 드러냈다.”(모 시중은행 관계자)

“상대방에 칼을 겨누고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기 보다 각종 경제 미사어구로 약점을 숨기려는 수세적인 경제관만을 피력했다.”(제지업계 중견 M사 C사장)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이어서 아직 장밋빛 구호에만 머물 뿐 경제현실에 맞는 미시적인 정책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아 보인다.”(중소 P유통업체 L사장)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서로 자신의 경제 관에 대한 ‘재계와의 면접’에서 상호 차별성과 경쟁력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지만 ‘기대 반(半), 실망 반(半)’이란 절반의 성과만을 거둔 채 하반기 본격화할 대선경쟁 구도에 재계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ㆍ노 후보는 7월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제주 신라호텔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최고경영자 서머 포럼에 참석, 경제철학과 집권 후 경제운용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들 후보는 8ㆍ8보선과 대선을 앞두고 ‘관치경제 타파ㆍ투자 활성화’와 ‘규제혁파ㆍ빈부차 해소’ 등 재계를 향해 서로가 ‘시장경제 우선 주의자’임을 자처하며 경제 관을 피력했다. 그러나 막상 러브 콜을 받은 재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선 “듣던 것 보다 과격한 것 같지는 않다”는 등 다소 희망에 찬 기대감을 보인 반면 다른 일부에선 “2개월 만에 말을 바꾸는 것을 보면 집권 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재계의 표심은 아직 관망세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관치타파ㆍ규제개혁엔 한 목소리

양당 후보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복장부터 서로 차별화하려는데 주력했다. 노(No)타이, 푸른색 점퍼 차림의 이회창 후보는 활동력 넘치고 서민 풍의 이미지를 겨냥했다.

감청색 양복에 전경련이 선물한 승리를 부르는 문양이 새겨진 붉은색 ‘히딩크 넥타이’를 한 노무현 후보는 자신이 ‘친 재계 인사’라는 이미지를 심기위해 부드러운 표정과 차분한 어투로 회의장 뒷편에 앉은 기업인들의 눈빛 하나 하나까지 잡으려는 노력의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은 청중이 국내 경제인이라는 점에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치경제 타파와 기업규제개혁에 대해선 한 목소리를 냈다.

이 후보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 및 국내정치에 매달리는 바람에 국민경제가 뒷전에 밀리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람ㆍ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자유시장경제의 새 집을 짓는 전략을 통해 선진경제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자유시장경제의 인프라인 규제개혁기구 및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원 같은 국가 기관들이 결코 권력의 시녀가 아닌 국민봉사와 국가경제발전을 위한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며 관치경제의 타파를 강조했다. 노 후보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관치형 규제의 폐지와 행정 지도성 기업 준조세 근절, 애매모호한 규정정비 등을 약속했다.

노 후보는 “기업의 크기에 따라 경영을 제한하는 규제들은 재검토해야 한다”며 “출자총액제한 같은 조치는 지금 상황에선 필요한 규제지만 원칙적으로 존치 시기와 조건을 달아 운영하겠다”고 재계의 입장에 섰다.


성장ㆍ분배 문제에 미묘한 시각차

양당 후보들은 성장ㆍ분배의 조화를 강조했지만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이 후보는 아르헨티나처럼 분배 일변도의 ‘포퓰리즘(populism)’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후보는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하는 경제엔 희망이 없다”며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성장잠재력 확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노 후보는 ‘성장과 분배의 균형 및 선 순환’을 강조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분배에 무게를 뒀다.

노 후보는 “빈부차 개선과 저소득층 삶의 질 확보에 좀 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투명한 정치자금 강조

이 후보는 “기업이 정치자금을 내지 않아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기업할 수 있는 편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또 “저희 당 후원회에 경제인 여러분이 정당하게 낸 후원금은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위해 필요하다”며 “앞으로 후원금을 내면서 그 돈으로 정치를 산다고 생각하면 이를 사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우리당은 이런 후원금과 국고보조금만으로 전국 선거를 2차례 치러냈다”며 “과거엔 전국 선거를 수 천억원 들여야 치를 수 있다고 했으나 우리 당은 이런 나쁜 신화를 스스로 깼다”고 덧붙였다.

노 후보도 “연말 대선에서 반드시 법정선거비용을 준수하겠다”며 “법대로 돈을 쓰고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모든 (대선관련) 수입과 지출을 당 재정에 통합하면 당과 후보의 활동이 제약되고, 선관위 회계감사를 받을 수 있어 투명해질 것”이라고 정치자금의 현실화방안을 제시했다.


주5일 근무제 현격한 입장차

주5일 근무제를 둘러싼 노동계와 재계, 정부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두 후보는 현저한 시각차이를 보였다.

이 후보는 최근 중소기업 중앙회 관계자들과 가진 정책간담회에서 “모든 작업장에 대해 주5일 근무제를 법으로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정책은 시기상조”라며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1인 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가 된 후에나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 후보는 “주5일 근무제 시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기업의 규모나 여건에 따라 유예기간을 두거나 또는 순차적으로 실시해도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고 정부입장에 동조, 조만간 정치 쟁점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재계 양당 후보 인맥관리 이미 가동

재계는 두 후보가 제주도에서 피력한 경제관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단 본격적으로 대선경쟁구도가 가시화될 9월 이후 서서히 입장정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물론 재계의 입장을 단일화한다는 것은 재계의 생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8ㆍ8 재보선을 앞두고 일부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본부 내 정보 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재보선 결과와는 관계없이 양당 후보와 연결되는 조직인맥관리는 월드컵 대회 이전인 5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장은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정치건 경제건 변화를 이끄는 주류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는 기업에 있어 결국 자금력일 수 밖에 없다”며 “현실정치에서 재계 스스로가 정치자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정치시장의 한계성을 지적했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2002/08/02 14:03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