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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빠진 미국경제, 파국오나?

늪에 빠진 미국경제, 파국오나?

신경제 몰락으로 촉발된 증시 폭락, 금융불안 등 총제척 위기에 휩싸여

10년간 장기호황, 신기술에 의한 경제개발, 증시 장기 상승후 폭락, 기업과 금융 사기범 재판, 신경제의 몰락…

이런 테마는 오늘날 미국 경제가 않고 있는 문제를 대변하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주제는 바로 대공황 당시인 1929년과 1930년에 미국 언론들을 장식했던 내용이다.

상황을 돌려 7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철도와 전기라는 신기술이 개발돼 미국 경제는 10년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경제가 새로운 경제의 영역에 들어섰으며, 불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29년 10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던 뉴욕 증시는 폭락하고, 대공황이 시작됐다.

미국 금융계를 쥐고 흔들었던 JP 모건 가문은 주가 조작혐의로 의회의 페코라 청문회에 불려 다니면서 대공황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10년 이상 지속되던 장기 불황은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전쟁 특수로 인해 종식됐다.

현재의 미국 경제는 대공황 전후와 상당한 부분에서 오버랩되고 있다. 인터넷과 통신 기술 등 이른바 하이테크 산업의 발달에 의해 미국 경제는 지난 90년대 10년간 장기호황을 구가했고, 신경제론자들은 미국에 불황 사이클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잭 웰치 등 스타 기업인들은 엄청난 스톡옵션을 챙기며 주가 상승에 온 신경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더 이상 상승 한계에 봉착해 지난해 3월로 공식적인 침체에 들어갔고, 주식시장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업 경영자들은 스톡옵션으로 받은 재산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려고, 내부자거래, 회계장부 조작, 탈세를 감행했다. 그 결과는 신용의 위기였다. 투자자들은 기업을 불신하고, 기업의 유가증권(주식)을 던져버리면서 7월 들어 뉴욕 증시는 연일 폭락장세를 연출했다.


거품꺼진 IT산업

90년대 미국 신경제 이론의 핵심은 ▦신기술에 의한 성장 ▦시장 지향적 경영 시스템 ▦수급조절에 의한 경기사이클 소멸 등으로 요약된다. 90년대 신기술의 대표적 종목인 인터넷과 통신산업의 거품은 이미 2년전에 나스닥 붕괴와 함께 꺼졌으며, 현재까지 미국 경제 회복의 관건인 투자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올들어 나타난 문제는 시장 지향적 시스템의 위기다. 90년대에 미국 기업인들은 주식시장을 쳐다보며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에 초점을 맞추었다. 스타급 경영인들은 거액의 스톡옵션을 부여받고 불필요한 사업과 인력을 과감히 잘라냄으로써 월가 투자자의 인기를 끌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경기가 꺾어지면서 이제 스톡옵션은 경영인들의 노비문서로 전락하고 있다. 월드컴, 엔론, 타이코, 임클론 등의 경영인들은 휴지조각으로 처한 스톡옵션을 보전받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 내부자 거래, 탈세 등 온갖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1,000개의 미국 기업들이 1997년 이후 회계 잘못을 인정하고 수익을 다시 작성하고 있다.

기업들은 시장의 요구에 따라 단기적 수익을 올리기 위해 경기가 완만하게 침체하는데도 직원들을 대량해고하는 바람에 실업률을 급증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시장주의자들은 '완벽한 합리적 가격' 운운하며, 다우존스 지수가 앞으로 몇 년후에 3만6,000 또는 4만, 10만까지 간다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무시했던 주가수익률(PER)의 개념이 다시 중시되면서, 고평가된 뉴욕 주가는 3년째 가라앉고 있다.


심리적 공황…증시 대탈출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6월말부터 뉴욕 증시의 저점이 가까워졌다고 주장했으나, 7월들어 저점은 커녕 바닥을 모르는 폭락장세를 연출했다. 그 이유는 미국 주식투자자의 저변에서 “이젠 주식이 싫다”며 증시를 떠나는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엔론, 월드컴, 머크, 존슨&존슨 등 미국인들이 선호했던 기업들의 사기 행각이 하루가 멀다하고 드러나면서 뉴욕 증시의 젖줄이었던 ‘양떼들(소액투자자)’이 좁은 계곡을 급히 빠져나가고 있다. 먼저 빠져나가면 덜 손해를 보고, 뒤쳐지면 이리에 잡아 먹힌다는 투자군중의 심리적 패닉 현상이 형성된 것이다.

일반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인들의 연쇄적인 사기범죄를 보고 이젠 주식을 사서 저런 사기꾼을 도와줄 수 없다며 처벌에 나서면서 뮤추얼 펀드에서 급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투자회사 트랜스아메리카의 매니저 제프 반 하테는 “일반투자자들이 지난 2년반 동안 손해를 보고서 이젠 증시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며, “최근 증시 하락은 개미군단이 염증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뉴욕 월가에는 주요 뮤추얼 펀드들이 직장인들의 401(k) 등 은퇴연금 상환 요구로 자금 위기에 처해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고, 상당수 펀드들이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 매각에 나서면서 주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AMG 데이터 서비스에 따르면 뉴욕증시가 가장 불안했던 7월 11~17일 사이 1주일 동안 증권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14억 달러로, 올해 6월 한달 동안의 이탈 자금 111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또 지난해 테러 직후 뉴욕 증시가 극도로 불안할 때 1주일에 50억~60억 달러가 빠져나가던 것보다 두 배 이상의 물량으로 이 기관이 지난 92년 이래 통계를 낸 이래 최고의 수위다.


무능 극에 달한 부시행정부

7월 15일 오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앨라배마 주에서 “미국 경제의 기초여건은 튼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목소리가 방송을 탄 후, 다우존스 지수는 440 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다.

이에 앞서 7월 9일 부시 대통령이 뉴욕에 와서 기업 회계 투명성 방안을 선언한후 15일 연설 때까지 다우존스 지수는 무려 1,000 포인트나 폭락했다. 시장이 부시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시장에 먹혀 들지 않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의 과거 전력이 회계 스캔들의 와중에 휩쓸려 있고, 기업 개혁 프로그램이 유연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80년대말 석유회사 하켄 에너지에 근무할 때 스톡옵션을 지급받기 위해 시중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사내 대출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아울러 투자가 감시단체가 체니 부통령이 에너지 회사 핼리버튼의 회장 재직시 회계부정을 눈감아준 의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폴 오닐 재무장관과 하비 피트 증권거래위원장이 시장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존 맥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피트 위원장의 친 기업적인 금융규제 정책이 현재의 기업 범죄를 가중시켰다며 피트 위원장의 사퇴가 개혁의 첫단계라고 주장했다.

폴 오닐 재무장관은 지난달 미국 달러화가 급락하고 있을 때 한달 동안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록 가수 보노와 함께 광대모자를 쓰고 가난 구제에 관한 논쟁을 벌여 비웃음을 샀다. 뉴욕 월가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팀이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던 당시와는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에 정부의 신뢰와 정치 안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미국 최초의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부시 대통령은 대공황의 책임을 뒤집어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대폭락 우려, 장기침체 가능성도

주가 하락에 가속도가 붙을 때 뉴욕 증시에서는 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 또는 1929년 10월의 대폭락을 재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했다. 그러나 지난 24일의 일시적 폭등을 계기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공포는 한풀 꺾였다. 그러나 뉴욕 증시에 덮여있던 거품이 서서히 꺼지면서 미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침체를 거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올들어 뉴욕 증시의 블루칩 지수가 급락하면서 월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현재의 미국 경제가 90년대초 도쿄 증시의 거품 붕괴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돌입한 것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논란을 벌이고 있다.

지금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주가 폭락에 따른 자산거품 붕괴 ▦자본투자 위축 ▦소비 둔화 ▦초저금리 ▦실업률 증가 등이 10년전 일본의 경제 상황과 중첩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보다 ▦은행 시스템이 건실하고 ▦부동산 거품이 덜 심하며 ▦FRB와 연방정부가 신속하게 금융 및 재정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일본의 과거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주장한다.

90년대초 당시 미에노 야스이 일은(日銀) 총재는 오늘날 그린스펀 의장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경제의 기초가 단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8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식 경제의 효율성은 메모리칩 분야의 투자 위축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며, 4만 포인트를 목전에 두었던 니케이 지수는 90년 새해벽두에 붕괴됐다.

90년대에 글로벌 스탠더드임을 자부했던 미국의 신경제는 정보통신(IT) 산업 붕괴로 한계를 드러냈고, 새 천년 도래와 함께 5,300 포인트까지 올라 갔던 나스닥 지수는 지금 4분의1 수준인 1,200 포인트대로 폭락했다.

이제 미국의 블루칩 지수들이 급락하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는 그린스펀 의장이 96년말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용어로 증시 거품을 경고했을 때의 수위(6,400 포인트)에 2,000 포인트 이내의 차이로 좁혀졌다.

광의의 블루칩 지수인 S&P 500 지수도 올들어 수십년만의 최대폭의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년반 동안 계속됐던 “베어마켓(bear marketㆍ약세장)은 앞으로 몇 년은 더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0년간 증시 호황으로 미국인 성년의 절반 이상이 주식을 보유하고, 개인 자산에서 주식 비중이 부동산만큼 높아졌다. 따라서 증시 폭락은 개인의 자산 감소의 효과를 가져와 소비 심리를 둔화시키고, 금융거래 감소로 세수부족을 초래하고 있다.

90년대초 일본은 부동산과 증시 거품이 붕괴되면서 초기엔 금리를 0% 가까이 인하했고, 나중엔 은행부실을 막기 위해 재정 확대 정책을 취했다. 이런 조치들이 무위로 돌아가지 97년엔 엔화 약세로 수출을 살리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달러에 자국 통화를 고정시켰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었다.

미국은 지난해 경기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재정 확대 정책을 채택했다. 금리를 더 내리기 어렵게 되고, 5년만에 재정 적자가 발생하자 올해는 달러 하락을 용인, 일본과 비슷한 패턴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침체는 아시아의 문제로 그쳤지만, 미국의 거품 붕괴가 가져올 불확실성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입력시간 2002/08/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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