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그냥 내버려 둬라"

불교계 관통도로 저지에 총력, 폭력사태 부른 '환경 VS 개발' 영원한 딜레마

불교계가 북한산 지키기에 총력을 펴고 있다.

특히 불교계는 최근 폭력 사태와 관련, 정부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북한산에 관통 도로를 뚫을 수 없다는 의지를 보다 견고히 하고 있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 외곽 순환도로는 경기 고양시-의정부시-서울 노원구 상계동-경기 남양주시를 잇는 36.3㎞의 8차선 도로로 계획돼 있다. 이 가운데 현재 북한산 국립 공원 통과 구간인 4.6㎞(일명 사태봉 구간) 도로 노선의 양쪽 200m 이내에 미가사 홍법사 안국사 회룡사 등 35개의 사찰이 있어 국내 최대의 사찰 밀집 지역을 이루고 있다.

사태가 격화된 것은 7월 25일 새벽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북한산 국립 공원 내 원각사 입구 철마선원(鐵磨禪院ㆍ정식 명칭 ‘자연 환경 보전과 수행 환경 보호를 위한 대한 불교조계종 공동대책위원회 북한산사무소’)에 100여명의 폭력배가 난입, 폭력을 휘두르면서 비롯됐다.

농성을 이끌어 온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收耕ㆍ58)스님이 폭도로부터 폭행을 당해 다시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불교계의 심기를 더욱 불편케 만들고 있다. 수경 스님은 7월 12일 철마선원에서 백일참선 하안거 수행 도중 실신해 입원해 있다 25일 퇴원해 선원으로 돌아 와 기도 중이었다.

또 ‘한열이를 살려 내라’라는 걸개그림과 새만금 간척 반대 해프닝으로 유명한 설치 미술가 최병수(44)씨는 온몸에 구타를 당하고 입원중이다. 최씨는 1월 철마선원에 들어와 숙식하며 앞마당에 다리와 높이 7m의 망루를 이용한 대형 설치물 ‘No Tunnel’의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불교계 “기도도량 침탈 행위”

대한 불교 조계종 공동대책위원회는 7월 2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태는 일종의 법난”이라며 “종교계ㆍ시민 단체ㆍ국회 등 3자 공동의 진상 규명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계종 총무원 대변인 종훈(綜勳) 스님은 “발파음 등 엄청난 소음과 공사 쓰레기를 몰고 올 공사는 기도 도량에 대한 침탈일 뿐 아니라 휴식 공간의 파괴 행위”라고 말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앞으로 기업과 국가간의 권력 유착을 반드시 규명해 국민에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불교계와 서울환경운동연합,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등 20여개 시민단체들은 2001년 12월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저지 시민ㆍ종교 연대’를 구성하고 반대 운동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북한산 국립공원, 수락산, 불암산을 관통하는 8차선 고속도로 건설 공사는 결국 시민의 허파를 매연으로 뒤덮자는 21세기 최악의 국토 파괴 사업”이라며 서명운동, 집회, 퍼포먼스 등으로 시공사인 ㈜LG건설과 ㈜서울고속도로에 대한 규탄 시위를 이어 왔다.


시공사 “국책사업, 대안 없다”

그러나 시공사측은 “장기간 검토 끝에 시행된 국책 사업으로 북한산 외 지역의 공사가 거의 진행된 상황에서 노선을 바꿀 수 없다“며 “우회 노선을 택할 경우 공사비가 7,000억원이 더 드는데다 북한산에 터널을 뚫을 때보다 녹지도 오히려 1.6배나 더 훼손된다”고 밝혔다.

또 관통 도로가 완성됐을 경우 하루 10만여 대의 차량이 통과하게 돼 여기서 파생될 경제적 이득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계종측은 “터널 공사로 비롯되는 북한산의 지하수 변동에 대한 조사가 생략됐다”며 근원적으로 재검토를 주장했다. 터널 공사로 인한 북한산의 지하수 변동에 대한 조사 등을 세밀히 하지 못 한 만큼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노선에 대해 다시 검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계는 2월 ‘인간 띠잇기’, 3월 ‘생명의 나무 심기’, 5월 ‘자전거 행진’ 등 다양한 환경 관련 행사로 시민들의 호감을 사왔다. 또 7월 18일에는 서울역에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까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등 70여명이 7시간 동안 3보 1배(三步一拜)를 직접 몸으로 실천하기도 했다.

3보 1배 행사는 탐(貪ㆍ탐욕), 진(瞋ㆍ성냄), 치(痴ㆍ어리석음) 등 인간의 3독(毒)을 상징하는 세 걸음을 통해 자성과 함께 한번 절을 함으로써 자연과 생명을 살려 내겠다는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수도권 허파 파괴, 보존 바람직”

수경스님은 “나를 포함한 우주가 한 몸이고 어느 하나 상처를 입지 않도록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며 “북한산 관통 도로 건설은 인근 사찰뿐 아니라 결국 수도권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0년 실상사 주지인 도법스님의 권유로 환경운동과 인연을 맺은 수경 스님은 “진짜 불사는 대불을 세우게 아니라 있는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철마선원 맞은편 산허리에는 ‘국립공원 파괴하는 김대중 정부 각성하라’ 등 환경단체 등에서 내건 20여개의 플래카드가 꽂혀 있다.

‘철마선원’이란 ‘환경 관련 투쟁 때문에 모든 사물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쇠를 단련하듯 마음을 닦으라’는 뜻으로 수경 스님이 지은 이름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불교계의 개발 반대 운동이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면 불교계가 먼저 ‘차 안타기 운동’ 등 생활 속의 환경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내부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정공방 비화, 상당기간 지속될 듯

한편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은 7월 26일 서울고속도로 등이 조계종 회룡사 등을 상대로 낸 건축물 철거 및 토지인도 단행 가처분 신청사건 선고공판에서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중인 철마선원을 철거하고 토지를 시공사측에 인도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7월 16일 서울지법 북부지원으로부터 관통터널 구간의 공사중지 결정을 얻어내 다소 유리한 입장에 있던 조계종의 공동대책위는 즉각 이의신청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의정부 지원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상당기간 법정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병욱 기자

입력시간 2002/08/02 17:29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