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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에 짓밟히고 오만에 상처받는 한국민

주한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진상규명, 미군측 "책임없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살려내라” “형사재판권 한국으로 이양하라”

7월 27일 오후 서울 종묘 공원.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규탄 5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1,000여명의 시민은 무더위에도 불구, 한 목소리로 꽃다운 나이에 미군 장갑차에 치여 여중생 2명이 숨진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피의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유족과 한국민에게 사과하고 재판관할권을 당장 한국법정으로 이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날 오전 문정현 신부 등 시민단체 대표자 10여명은 서울 덕수궁 앞에서 이날부터 8월7일까지 여중생 범국민 추도기간으로 선포하고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미군의 형사재판권 이양을 촉구하는 장기농성에 들어갔다.

주한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사건 진상규명 뿐 아니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반미감정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사고 경위등 납득할 만한 설명 없어

6월13일 오전10시45분께 경기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에서 신효순(14ㆍ조양중 2), 심미선(14ㆍ조양중 2)양이 훈련중이던 주한미군 2사단 공병대 소속 장갑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현장 인근 마을에 살던 효순양과 미선양은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중이었다. 효순양과 미선양은 화가와 안무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채 피우지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

미군측은 “장갑차 운전석은 오른쪽이 잘 안보여 조수석 탑승자가 운전병을 보조한다”며 “30m 전방에 행인이 있다는 보조자의 경고를 운전자가 알아듣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운전통제병인 페르난도 니노 병장이 두 차례나 정지지시를 내렸으나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이 지시를 못 듣고 계속 장갑차를 운행하던 중 니노 병장의 3번째 고함소리를 듣고 8~16㎞ 속도로 달리던 장갑차를 세웠으나 사고가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운전병은 육성이 아닌 헬멧이 장착된 무전기로 소통을 하도록 되어 있다”며 “맞은 편에서 오던 또 다른 장갑차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진로를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가 난 도로는 편도 1차선 폭이 3.2m로 장갑차의 폭3.65m보다 좁다. 게다가 사고 당시 맞은 편에서 다른 차선을 통해 3.6m 폭의 장갑차 5대가 오고 있었다. 사고 당시 마주보고 달리던 미군 장갑차들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도로를 벗어나다가 도로변을 걷고 있던 효순양 등을 치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군은 지금까지 납득할 만한 사고 경위를 내놓고 있지 않다. 미군은 최근 △무전 교신과 궤도차량 소음 등 외부요소로 장갑차 운용 장병 상호간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하고 △장갑차 운전병의 시야가 제한되고 △사고 도로가 2대의 넓은 차량이 교행하기에 협소한 점 등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로 지적했다.


“책임질 만한 죄 없다” 무책임한 태도

주한미군 2사단 대변인이자 공보실장인 브라이언 메이커 소령이 6월28일 “그 누구도 책임질 만한 죄가 없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밝히는 등 미군측은 사고 직후 일관되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줘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사정이 이렇자 시민 단체들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번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SOFA개정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불평등한 SOFA국민행동 등 반미운동단체 뿐 아니라 참여연대,경실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불교인권위원회, 한국여성단체 연합 등 다양한 분야의 100여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는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는 지금까지 범국민대회를 5차례나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광화문 시민,네티즌 모임’은 미 백악관과 미국내 기관, 세계 주요언론사에 영문 이메일을 보내는 작업 등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있다.

이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채근식(40ㆍ프리랜스 기고가)씨는 “무고한 어린 중학생 2명의 죽음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 같이 진상규명 목소리가 높아지자 책임을 회피하던 주한미군측은 7월5일 운전병 워커 병장 등 2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정식 기소하고 미국 육군이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며 뒤늦게 사과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한국정부로부터 재판권 포기 요청을 받은 지 보름이 지나도록 어떠한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7월 11일 주한 미군측에 여중생 궤도차량 사망사건에 대한 재판권 포기 요청서를 보냈으며, 미군의 공무집행 중 범죄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재판권 행사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OFA 불평등 조항 등 개정해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우리 정부의 재판관할권 포기요청에도 불구, 미군이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드시 SOF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 말 개정된 SOFA는 형사재판권 문제의 경우 구금,인도시기만 일부 조정됐을 뿐 이전의 독소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미군 용의자 구금 인도는 한국이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을 가질 경우에만 주어지고, 수사과정에서 용의자의 영내 활동이 자유로워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다. 또 법원의 확정판결 전에는 미군 용의자를 구금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회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주한미군과 관련된 사건 사고 1,246건 중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한 경우는 69건(5.5)%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김부겸(金富謙)의원은 “미군 범죄의 60~70%는 교통사고나 단순폭행, 절도사건으로서 우리측이 대부분 재판권행사를 포기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나머지 24~34%는 형사사건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는 살인사건도 많이 포함되고 있어 반드시 우리측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SOFA의 불평등한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군은 지난해 7월16일 경기 파주시 캠프 하우즈 후문 인근 건물 증축공사장에서 작업도중 미군부대로 들어가는 고압선에 감전돼 투병 끝에 6월6일 숨진 전동록씨 사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사과와 배상은 전혀 없었으며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최기수 기자 mounta@hk.co.kr

입력시간 2002/08/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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