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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도티기념병원 정형외과 과장 김진호 박사

사랑을 나누는 만화쟁이 슈바이처

" 솔직히 제가 요즘 좀 의기양양합니다.(웃음)"

진료실에서는 의사로, 지면(紙面)에서는 만화가로, 화가로, 그리고 세상에서는 '만화를 그리는 슈바이처'로 불린다.

도티기념병원 정형외과 과장 김진호(68) 박사를 의기양양하게 만든 것은 환자들이다. 정성스레 치료한 환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낫는 것을 보면서 그는 요즘 새삼 치료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만나자마자 다른 얘기도 제쳐둔 채 20여분 내내 그 혼자 이야기를 이어간 내용도 환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마지막 결론은 이러했다. '환자의 병이 나으면 의사는 의기양양하게 돼 있답니다.'


20년째 인연 이어온 사랑의 일터

그가 있는 도티기념병원은 생활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곳이다. 병원과 나란히 자리한 보육원, 소년의 집 어린이 1,000여명을 비롯해 그의 치료가 필요한 가난한 이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김 박사가 이곳과 인연을 맺은 지는 20년째다. 서울대병원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매주 한 차례씩 방문해 진료활동을 펴다가 지난 2000년 정년퇴임을 맞은 뒤 이곳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정년이 없는 사랑의 일터다. 워낙 오래 드나든 걸음이라 그에겐 집처럼 익숙하다.

그가 진료를 맡는 날은 일주일 중 사흘이다. 하루에 약 70-80명의 환자를 돌본다. 축구골대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등 이따금 어린 환자들이 사고로 다쳐 찾아오는 일 외엔 대부분 허리나 어깨 통증, 관절염 등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이들이다.

김 박사는 환자들 사이에 자상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반가운 고향 사람을 대하듯 언제나 살갑게 환자들을 맞는다. 그의 진료는 언제나 환자의 아픈 곳을 일일이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천성적으로 농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농담이 나날이 더 느는 것도 환자들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려는 생각에서다.

점심시간이면 진료실을 나서다 말고 복도에 한 사람이라도 기다리는 환자가 있으면 다시 발길을 돌려 진료를 보느라 식당에 지각하기 일쑤다. '가진 것이 많으면 못 들어오는' 이 병원에서 어떻게든 김 박사를 다시 만나고 싶어 연신 전화로 졸라대는 옛 환자들도 있다.

"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습니다. 제가 웃으면 환자들도 웃고, 환자들이 즐거워하는걸 보면 결국 저도 즐거워집니다. 늘 환자들이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잠깐을 있더라도 병원을 다녀갈 땐 몸이든 마음이든 더 좋아져서 가셔야지요. "

진료도구만큼이나 그에게 가까운 필수장비는 붓과 펜, 종이다. 그는 '의협신보''보건소식지' 등 의학관련 간행물에 장기간 시사만평을 연재한 바 있다. 퇴임직후 잠깐 쉰 것을 빼고는 현재도 '의사신문' 등 3개지에 만화원고를 대느라 바쁘다. 적지않은 고정팬도 있다.

만화는 그의 그림 중 일부다. 주로 집과 산을 담고 있는 포근한 담채화도 따뜻한 수필과 함께 곳곳에서 독자들을 사귀었다. 진료실은 물론 그의 자동차속에도 항상 화구가 갖춰져 있다. 언제든 손만 뻗치면 종이와 붓을 쥘 수 있는 위치다.

생전의 그의 부친도 뭔가 만들고 창작하기를 좋아했었다. 당신 혼자 뚝딱거려 소주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낸 일도 있다. 김 박사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몹시 좋아했다. 한국전쟁 후 집안형편이 나빠졌을 때 다니던 고교를 휴학하고 잠시 미군부대에서 일 한 적이 있다. 무심코 부대내 식당 벽에 분필로 그려넣은 그의 그림을 보고, 식사를 하러 왔던 한 미군장교는 얼마 뒤 팔레트와 색연필 등을 사들고 와 그에게 선물했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의대생이 된 한 선배의 충고로 마음을 돌렸다.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후, 곤혹스럽던 해부학 시간에 비교적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림을 통해서 였다.

" 해부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돼 있는데, 그걸 제가 꽤 잘 그렸어요. 그리는 건 참 좋아하니까. 친구들도 직접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 대신 아예 제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곤 했지요. "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던 중 1978년 서울대병원에 재활의학과가 신설되면서 이를 맡아달라는 모교의 제의를 받았다. 이에 응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그럼 수술을 못하는 거 아니냐”였습니다. 저는 수술이 참 좋았거든요. 예를 들어 정형외과에선 부러진 뼈를 맞추는 수술은 너무나도 흔하고 끊어진 힘줄을 잇는 등 여러 가지 수술이 많은데, 조금전만 해도 나무토막처럼 손을 못 쓰던 환자가 수술뒤 거짓말처럼 다시 옛날처럼 손가락을 움직이는걸 볼 때 그 기분이 어떨지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렇게 보람있고 내가 재미있어 하는 수술을 못하다니, 저는 안 가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집사람이 '당신은 가야된다. 그곳이 진짜 당신 적성에 맞는다'면서 거의 1년 동안 저만 보면 아침 저녁으로 잔소리를 하는 통에 결국 손을 들었습니다. 집사람의 생각이 옳았어요.

사실 그때 저는 좀 있다가 개원을 해야지 했었는데,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환자를 보는 거라면 진력 한번 나 본 일 없고, 평생 꾀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해왔다고 자부하지만, 사람 구하랴 병원 관리하랴, 지금 생각해도 아득합니다. "


참인간의 온기로 가득한 주변

재활의학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한 수녀의 방문을 받으면서 도티기념병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간 이곳의 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번의 정기적인 병원방문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할만큼 힘겹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환자들의 현실이다.

지금도 환자들 중엔 식당일이나 파출부, 떡볶이 장사 등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 계속 치료를 받기만 하면 나을 줄 본인도 알면서도 생계때문에 1주일에 한번 찾아오는 일조차 지키기가 어렵다.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은 넉넉한 이들이다. 아무리 말려도 우유 한 통, 귤 두어 알 등 소박해서 더 마음이 찡한 '촌지'를 김 박사의 책상 위에 놓아두고 도망치듯 진료실을 나가는 환자들이 많다. 치료비를 내지 못하게 하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라도 내고 가겠다며 기어코 돈을 밀어넣고 가는 환자도 있다. 그 모든 이들의 곁에서 묵묵히 헌신적으로 사랑의 손길을 펴는 수녀들까지, 김 박사의 주변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 돌아보면 제 자신이 얻은 것도 많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고, 환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 것도 이 곳이었으니까요. "

천차만별의 환자를 만나면서도 스트레스를 모르는 건 김 박사가 가진 '생략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그가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는데 자극제가 되었던 한 영국 화가의 책에 그런 내용이 쓰여있었다. '보이는대로 다 그리지 말 것. 자세한 것도 그림에는 간결하고 단순하게 생략해서 그릴 것. 다섯 그루의 나무가 서 있더라도 세 그루로 줄여서 그릴 것.' 그 글을 보면서 김 박사는 그렇게 해석을 했었다. '사람을 만날 때 보이는대로 다 마음에 담지 말 것. 단점은 생략하고 좋은 점을 바라봐 줄 것.'

25년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이 미술책 덕분이었다. 현재도 영국에서 인기있는 미술 강사로 활동중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직장에서 해고된 뒤 50세가 넘은 나이로 그림을 시작해 성공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만난 뒤 그는 용기를 얻어 붓을 잡았다. 누구에게 배우는 것도 없이 혼자 물불을 가리지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댔다. 그림 그릴 시간을 늘리려고 출근시간도 앞당겼고, 골목을 그려보려고 퇴근 때도 일부러 골목길로 돌아다녔다. 요즘도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오늘까지 쌓인 그림이 1천여장, 컴퓨터에 저장해 둔 그의 그림속엔 세상의 사계가 들어있다.

서울대병원 재직 중 직원 식당이 너무 시끄러워 이를 한 컷짜리 만화로 풍자해 병원 사내보에 실었다가 이를 계기로 매달 연재를 맡게 됐다. '함춘만평'이란 제하로 정년 퇴임때까지 20년 연재 기록을 세웠던 그의 만화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주로 의료계 안팎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의료기기에 맹신하는 환자 안타까워

늘 너그러운 그도 아주 가끔은 화가 날 때가 있다. 어떤 설명이나 설득에도 아랑곳 없이 무조건 '왜 다른 의사들처럼 사진(MRI)을 찍어주지 않느냐'며 MRI 촬영에 맹신을 보이는 환자들을 만날 때다.

어쩌면 환자 개인의 편견 탓만도 아닐 것이다. 김 박사는 정형외과의로 지내온 10여년 동안 MRI뿐 아니라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수술이나 약물처방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허리디스크 환자인 자신의 아내가 한때 심각한 통증으로 고생했을 때도 1년 동안 직접 밥이며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무조건 아내를 쉬게 하는 것으로 병을 치료해냈다.

“어깨나 목, 허리 등이 계속 뻐근하고 아파서 MRI 촬영을 받아보면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그냥 돌려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근육에서 생긴 이상은 MRI에 나타나지 않거든요. 이런 것이 바로 '근막통증후군'인데, 병원검사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은 그대로 방치했다가 결국 증세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것은 아주 간단하게 나을 수 있습니다. 아픈 부위의 통증유발점을 찾아내 마사지나 주사 등으로 그곳을 꾸준히 자극해주면 즉각 반응이 오고 나중에는 통증이 다 사라집니다. 제 얘기가 아니라 의학계에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저는 주사자극요법을 쓰는데, 수십년씩 통증에 시달려온 분들도 신기할만큼 효과가 있더라구요. 워낙 잘 나으니까 저도 요즘 의기양양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아무리 설명을 해드려도 '사진'을 찍겠다는 분들은 끝까지 사진 얘기만 합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어 '정 그러시면 저 아래 사진관에서 예쁘게 한 장 찍고 오시라'고 웃으며 말해드립니다. 속으로야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환자에게 화를 낼 수도 없어서요. ”

그의 책상 옆 오른쪽 벽면에 앙증맞은 증명사진 하나가 붙어있다. 약 15년째 김 박사 부부곁을 함께 해 온 푸들 '레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화제가 이 견공에게로 바뀌자 김 박사 목소리에 힘이 좀 빠진다.

" 예전엔 현관문만 열어도 총알같이 달려와 꼬리를 흔들고 난리였는데, 요즘은 귀가 먹어서 제가 현관문, 중간문, 방문을 다 열고 들어가도 모르고 앉아있습니다. 이젠 수명이 다해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어떻게 이별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

문득 그의 손을 봤더니 어느새 종이 위에 그려놓은 강아지 얼굴이 한가득이었다. 털이 다 생략된, 선 하나 점 세 개짜리 얼굴이 웬지 사진과 똑같아 보였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2/08/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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