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마늘의 매운 맛을 알아야 한다

요즘 정가에는 민주당 해체와 이에 따른 신당 창당설이 난무하고 있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 비리 의혹 문제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여야를 포함해 정치권은 오로지 올 연말 실시된 대선에만 관심이 있을 뿐 민생문제는 도외시하고 있는 듯하다.

레임덕에 빠져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정권 막바지에 김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업적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를 임명하려다 좌절된 것을 보면 김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짐작이 간다.

‘여성’과 ‘역사상 최초’라는 것에 집착해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에 대한 지명에 앞서 철저한 검증을 하지 않은 듯하다. 서해 교전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남북관계도 김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때문인지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

만약 장관급 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맺어진다면 김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은 또 다시 빛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남북관계도 중요한 일이지만 김 대통령이 임기 말에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점은 민생 문제일 것이다.

최근 민생 문제들 중 농민을 가장 화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중국과의 마늘 협상이다. 중국과 세이프가드(김급 수입제한 조치)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통상교섭 본부장이었던 청와대 경제수석이 물러나기도 했으나 정작 농민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앉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경북 의성은 ‘육쪽 마늘’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에서 8월 2일 마늘을 경작하는 농민 1만여 명이 집회를 갖고 김대중 정부를 성토했다.

의성군 농민회와 의성군 농업경영인회 등 의성지역 15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의성 마늘 대책협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한ㆍ중 마늘 협상 이면합의 백지화 △마늘농가 피해 전액 보상 및 생산비 이상으로 전량 수매를 요구했다.

김선환(의성군 농민회장) 마늘대책위 공동의장은 “마늘문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정부와 국회는 성의있는 답변과 태도가 전혀 없어 50만 마늘농가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고 규탄했다. 박홍수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장도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집회 도중 한나라당 경북도지부장인 정창화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정 의원은 현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마늘협상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책을 설명했다. 이때 농민들 중 일부가 “농사 다 망했는데 무슨 대책이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정 의원은 이들이 던진 물건에 왼쪽 이마를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농민들은 이후에도 외교통상부 장관과 농림부 전ㆍ현직 장관 등의 이름이 적힌 허수아비들을 불태웠다. 의성을 비롯한 경북지역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한나라당은 그 동안 마늘 문제를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실정’이라고 간주해왔다. 실제로 이번 마늘 협상은 한나라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 의원도 이번 기회에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고 텃밭인 경북 지역에서 자신과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고양시킬 목적으로 농민집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농민들은 정 의원에게 ‘분노의 돌’을 던졌을까.

물론 이번 사건은 우발적이기는 하지만 여야 정치인들 모두가 그만큼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김대중 정부도 못 믿겠지만, 한나라당도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민심의 반영이다.

대권 욕심에만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불신감을 볼 때 이번 사건은 현재 정치권과 국민들간의 괴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분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이 말로만 국민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민심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8ㆍ8 재보선 이후 정국은 본격적인 대선체제로 바뀔 것이다.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집권하기 위해 상대당 후보들의 약점을 들춰내는 등 철저한 네가티브 전략을 펼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후보들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흠이 있으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후보들의 잘못된 점만을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이 후보들에게서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냐는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이장훈 주간한국 부장

입력시간 2002/08/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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