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역사] 충청북도 보은(報恩)

‘보은’이라는 땅 이름에는 세조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세조가 어느 날 낮잠을 즐기는 데 꿈속에서 조카인 단종의 어머니이자 형수인 현덕(顯德)왕후가 나타나 자신을 노려 보며 “네가 내 아들을 죽이고도 마땅히 살아 갈 수 있단 말이냐. 나도 네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조의 맏아들 도원대군이 죽었다는 전갈이 왔다. 세조는 맏아들의 죽음이 형수인 현덕왕후의 소행이라 여겨 현덕왕후의 농을 파헤쳐 능(陵)이 아닌 평민의 무덤(墓)으로 만들었다.

그 날밤 꿈에 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를 노려보다가 얼굴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이 날부터 침 자국이 곪기 시작하여 온몸으로 번졌고 어떤 의원들도 이 병을 고치지 못했다.

세조는 불력(佛力:부처의 힘)으로 치유코자 전국 명산대찰을 유람하다 속리산 법주사에 이르게 된다. 세조는 스스로 역마살이 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신병요양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산수를 나들이 한 임금으로 기록되고 있다.

세조 10년 2월 온양행궁(溫陽行宮)에서 요양중일 때 속리산 법주사(法主寺)와 복천암(福泉庵)까지 행차한다. 청주를 거쳐서 보은현 동평역에 이르자 법주사 신미(信眉)스님이 떡 150시루를 쪄 들고 나와 마중을 한다.

복천암에서 사흘간 머물면서 바위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석간약수를 마시고 돌아 왔다. 세조가 법주사 경내의 맑은 개울에 목욕을 하는데, 보살의 화신인 미소년이 나타나 “곧 병이 완치될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나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으므로 속리산에 와서 피부병을 고친 “은혜를 갚는다(報恩)는 뜻으로 보은(報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세조가 목욕하던 곳을 목욕소(沐浴沼)라 부르게 되었다.

세조가 품작을 내렸다는 법주사 어귀의 정이품송에 대한 정사의 기록은 없다. 알려진 것처럼 세조의 어련(御輦)이 이 노송 밑을 지나는데 연 꼭대기가 닿을 만큼 아래로 처져 있던 밑가지가 저절로 위로 솟아 충심을 발휘했다 하여 품작을 내렸다는 설이 있다. 또 세조가 속리산에서 이 노송의 송진을 먹고 효험을 봤다는 설도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길이 없다.

보은은 원래 신라의 삼년산군(三年山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아예 삼년(三年)으로 고쳤다. 고려 초 보령(保齡)이라 하였으나 나중에 변하여 보령(保令)이 되었다. 조선조에 이르러 충청도의 보령(保寧)과 음이 같아 혼란이 있다 하여 태종(太宗) 6년(1406)에 보은(報恩)으로 한 것이 오늘의 땅이름으로 되어 있다.

어찌 됐든 인간과 만물은 땅의 가치를 알아야 하는데 인간들의 욕심으로 땅은 오염돼 정 2품송이 죽어가고 있으니 이러고도 어떤 보은(報恩)을 바랄 것인가. 인간들이여!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2/08/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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