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문화비평] 노인을 보는 사회의 눈과 척도

영화 ‘죽어도 좋아(too young to die)’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를 개봉하게 되면 해당 극장은 다른 일반 영화를 함께 상영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극장 개봉이 불가능하게 된다.

연출자인 박진표 감독은 수정하지 않은 작품으로 재심을 청구해 놓은 상태이다.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영화 등급심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자 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등급심의로 논란을 일으키고 국외에서는 영화제를 통해서 작품의 지명도를 얻어 가는 전형적인 과정을, ‘죽어도 좋아’가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처럼 한국영화가 내놓은 문제작을 ‘스캔들’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로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죽어도 좋아는 70대 노부부의 삶과 성(性)을 현미경적인 시선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사회의 주변부에 놓여져 있는 노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다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인의 성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등급을 심의하는 쪽에서는 성기노출과 구강성교의 장면이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지만, 사실 노출과 체위가 음란물과 비(非)음란물을 가리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노인들의 정사 장면이 놓여져 있는 미학적인 맥락을 검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칭 ‘까발림의 미학’이 갖는 의미와 한계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 우연히 찾아든 사랑이 가져온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섹스였다면,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 섹스였다면, 충분히 인정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사회의 통념 속에서 노인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사회적 효용가치가 바닥난 존재이며 성적 지표가 지워진 탈성화(脫性化)된 존재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으며, 한 사람의 남자이자 여자이고 더 나아가서는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이라면 충분히 우리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정공법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만화에서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윤태호의 ‘로망스’도 주목의 대상이다.

해설을 쓴 만화비평가 이명석의 지적처럼, 만화 로망스는 숱한 풍파를 거쳐온 백전노장들의 무용담(romance)이자, 영원히 식지 않는 정열의 연애담이면서, 노망(老妄)기가 들락말락 하는 노인들의 작은 비망록이다.

정년 퇴임 후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김이용 노인, 월남전에서 날고 기었다는 지루한 ‘구라(이야기)’로 저승사자도 잠재워버리는 노인, 우유병을 뺏아 먹는 바람에 어린 손자를 고뇌에 빠뜨리는 반치매 노인, 조직에서 은퇴해서 ‘나와바리(구역)’ 관리에 들어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전직 조폭 할아버지 등이 등장한다.

시트콤(상황에 따라 웃음을 연출하는 코미디)적인 설정에 엽기적이고 코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노인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참으로 따뜻하다.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약장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에서 잡상인으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는, 노인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인 기능을 읽어내는 대목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노인이 겨울에 외출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의 위치가 적힌 지하철 노선표, 든든한 기저귀와 하부 개방형 내복, 여분의 기저귀와 물티슈와 긴급번호가 입력된 핸드폰 등을 소지하거나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만화를 보면서 처음 알았다.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이 7%에 도달하는 경우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라 부르며, 14%를 초과할 경우에는 ‘고령 사회(Aged Society)’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현재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7.9%인 377만 명으로 고령화가 진행중이며, 2019년에는 노인인구비율이 14.4%에 달해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빈곤·질병·고독·역할상실 등으로 대변되는 노인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사회문제이다.

노인은 단지 죽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서 숨쉬는 '인간'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새롭게 배운다.

강병준 전자신문 정보가전부 기자

입력시간 2002/08/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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