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 물봉선

아파트 화단에 봉선화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많이 피어야 딸아이 손톱을 물들이려고 꽃잎 몇 장을 뜯어도 다른 사람들이 꽃구경을 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꽃들이 많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가 내게 해주셨듯이 조그마한 아이의 손톱에 꽃잎을 찧어 올려 놓은 뒤 이를 겹겹이 동여 매고 나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름 밤을 보낼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봉선화가 피고 있는 것을 보니 물봉선도 깊은 산골짝의 외진 물가에 자리잡고서 피기 시작했을 터이다.

사실 알고 보면 ‘울 밑에선 봉선화야’라며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주던 유명한 노래에도 나오는 봉선화는 인도를 고향으로 하는 들어 온 꽃이며, 독특한 자태로 피어나는 물봉선이 진짜 우리 꽃인데도 그런 꽃이 있나 무심한 사람이 많으니 물봉선으로서는 몹시 섭섭할 것이다.

물봉선은 봉선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이다. 다 자라면 무릎보다 좀더 키가 커지는 물봉선은 줄기에는 불록한 마디가 있고 잎은 끝이 뽀족하고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나 있다. 물봉선의 꽃은 앞쪽은 벌어진 여인의 잎 술처럼 나뉘어 지고 그 사이로 흰색과 노란빛이 어우러진 꽃잎의 속살을 드러낸다.

점점히 박힌 자주색 점이 아름답다. 벌어진 반대쪽 꽃잎은 깔대기의 끝처럼 한데로 모아져서는 카이젤 수염처럼 동그랗게 말리는데 그 모습이 아주 귀엽다.

열매는 가을에 익는데 봉선화 종류인 만큼 작은 꼬투리처럼 생긴 열매는 익으면 작은 자극에도 금새 터지면서 그 속에 있는 서너 개의 씨앗이 튀어 나간다.

진분홍 빛 꽃을 가진 물봉선과 비교해서 노란빛 꽃잎을 가지고 있으며 잎도 끝이 뾰족하지 않고 둥근 것은 노랑 물봉선이고, 하얀 꽃잎에 자주빛 점이 박힌 꽃을 가진 것은 흰 물봉선인데 주로 강원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가야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이름 붙여진 가야 물봉선은 꽃이 자주빛이 도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물봉선은 사람에 따라서는 야봉선이나 물봉숭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물봉선을 비롯하여 흰 물봉선, 노랑 물봉선 모두 한 집안 식구다. 속명은 임페티언스(Impatiens)인데 ‘참지못하다’의 뜻이다. 바로 톡 터져 버리는 열매의 특징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봉선화는 물들이는데 쓰인다. 물봉선은 어떨까? 유사한 식물들은 서로 성분이 비슷하므로 물론 가능하다. 식물체 전체를 염료로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봉선화처럼 손톱에 물이 들 만큼 강력한 염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방에서는 줄기가 해독과 소종작용이 있다 하여 종기 치료와 뱀에 물렸을 때 사용한다. 뿌리는 강장효과가 있고 멍든 피를 풀어 주는데도 활용된다.

봄에 어린 순을 나물로 무쳐먹기도 하지만 유독성분이 있으므로 충분히 우려낸 다음 먹어야 하는 조심스러운 풀이다. 그 맛도 위험을 감수하며 먹을 만큼 특별하지도 않다.

한여름 개울가에 핀 물봉선. 그 꽃 속을 들여다보며 발견하는 작은 세계의 아름다움도 분명 큰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8/09 13:5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