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청문회가 남긴 것] 바로 선 입법부의 견제 기능

공직자 도덕·윤리기준보다 엄격히 적용돼야

헌정 사상 처음 실시된 이번 장상 총리서리 인사청문회는 그간 행정부에 밀려 있던 국회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발동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헌법은 3권 분립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대통령 1인에 행정부와 사법부 등의 국가 권력이 집중되는 기형적 형태를 띄고 있었다. 소위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입법부의 견제 권한까지 잠식, 사실상 대통령에 의한 1인 통치가 이뤄져 왔다.

때문에 그동안 입법부는 행정부의 ‘시녀’라든가 ‘통법부’라는 혹평까지 듣기도 했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일침

국회의 이번 장상 총리서리 인사청문회 및 인준 절차는 이런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입법 기관의 견제 기능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특히 이번 총리 인준 과정에서 의회가 자유 투표제를 실시했다는 점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간 국회 의원 개개인은 헌법 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소속 당의 당규나 노선에 따라 일괄 투표를 해왔다. 따라서 지난 하반기 국회 원 구성에 이어 이번 총리 인준 투표에서 형식적이나마 의원 개개인의 자유 투표가 실시됐다는 점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장상 총리서리 인준이 부결된 이후 정치권이 보여준 태도는 다분히 실망스럽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총리지명자의 국회 인준 부결이 '‘서로 상대 당 탓’이라며 귀책 사유를 놓고 공방전을 펼쳤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부결 방침을 세워 놓고도 마치 자유투표를 한 것처럼 국민 사기극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장상 총리서리 인준안 부결은 원내 1당인 한나라당 때문이고 이는 정부의 발목을 잡아 국정공백 등 혼란을 야기하겠다는 의도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낙연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민주당도 반란 표가 많았다’며 덮어 씌우기와 억지 주장을 하는데 자체 조사 결과 이탈 표는 8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음모론’으로 맞섰다. DJ의 직계의원이 대통령 아들 비리 의혹을 비켜가고 한나라당 이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총리 인준 안을 일부러 부결시켰다는 것이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민주당이 표결을 앞두고 표 단속을 하지 않았다”며 음모론을 공식 제기했다.

정치권이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의한 자유 투표제를 스스로 부정하며 의회의 견제 기능을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에 장상 학습 효과

이번 장상 총리서리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고위 공직자의 도덕ㆍ윤리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이번 인사청문회는 진행 과정에서 다소의 문제점이 노출 됐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공직자들 사이에 이른바 ‘장상 학습 효과’를 일으켜 전 공직자들의 윤리 자정 기능을 발동시키는 순기능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고위 공직자 비리는 한국 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로, ‘한국병’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가 인준 부결로 인해 총리 공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이참에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제도를 착근 시켜 공직자 부패ㆍ비리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고려대 하태훈(법학) 교수는 “촉박한 시일로 인해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번 청문회가 고위 공직자들에게 도덕성, 윤리성, 정직성을 고취시키는 충분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며 “앞으로 고위 공직에 지명됐다고 하더라도 자기 관리에 흠집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고사하게 되는 선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부처의 한 공직자도 “예전과 달리 평소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일은 아예 만들지 말자는 공직자들이 주변에서 부쩍 늘고 있다”며 최근 공직 사회의 변화 분위기를 소개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증기준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인사 청문회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증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문회가 해당 공직을 수행할 자질과 능력, 그리고 그에 걸 맞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갖추고 있느냐를 신중히 검증하는 여과 기능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이번 장상 총리서리 청문회가 개인 비리 폭로에 이은 여론 몰이식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일면서 나오고 있다. 여야가 8ㆍ8재보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총리 자격 검증 보다는 당리 당략 차원으로 이용한 측면이 다분 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으로 밀리고, 사생활 폭로 위주로 청문회가 진행된 측면이 많다. 일부에서는 청문회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쟁의 장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완충 장치로 특위 위원에 학계나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도덕성은 고위 공직자 자격 기준의 출발점이자 마침표”라며 “이번 청문회가 국정수행 능력보다는 도덕성 검증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도덕성을 상실한 공직자의 정책을 국민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므로 도덕성은 국정 수행 능력과도 매우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사 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청문회가 고위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현행 청문회 위원들 외에 금융, 부동산, 세무, 법률, 회계, 병무행정 등에 대한 외부 전문가를 참여 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번 장상 서리 청문회 과정에서도 청문회 위원들은 이런 전문적인 지식 부족으로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했다.


청문회기간 탄력 조정으로 ‘부실’ 막아야

청문회 기간도 짧아 ‘부실 검증’ 또는 ‘검증 오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번 청문회에서는 진행 중에 나온 지명자나 참고인 답변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또 일부 관계가 없는 참고인이 출석 했는데도 시간 관계상 교체를 할 수 없는 난맥상도 드러냈다. 따라서 청문회 기간의 탄력적인 조정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의 근본적인 목적인 도덕성을 갖춘 능력 있는 국가의 공복(公僕)을 뽑는 것이다. 이 제도가 단지 고위 공직자를 가려내는 여과 장치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모든 공직자들의 윤리ㆍ도덕성을 재고 시키는 획기적 전기가 되길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8/09 16:49


송영웅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