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행 주인 찾기 표류, 진통 장기화할 듯

‘공적자금 회수보단 관료 보신주의 우선’ 비난 여론 높아

서울은행의 새 주인 찾기가 표류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있는 하이닉스반도체와 대한생명 매각, 서울은행 민영화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기업 처리가 정권말 권력누수에 따른 정부의 정책 추진력 약화와 관료들의 보신주의 등으로 공적자금 회수라는 기본목표를 벗어난 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경제계 전반에 일고있다.

최근 서울은행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인수 후보들 간의 법률위반 여부와 법인세 감면 혜택, 풋백 옵션 부여 등 온갖 설(說)이 난무하는 등 인수자 선정 기준에 대한 투명ㆍ공정성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은행 노조는 우선협상 대상자후보로 유력한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을 합병하는 방식은 공적자금관리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합병반대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은행업계에서는 또 서울이 하나에 합병될 경우 하나은행이 얻게 되는 법인세 감면혜택을 고려, 매각가격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 나오고 있어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대상자 선정길목에서부터 심한 난기류를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누누이 강조했듯 서울은행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금명간 이뤄질 수 있다고 해도 정권 말 관료들의 보신주의 등을 고려할 때 ‘진짜 주인’을 가리는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큰 진통이 예상된다”고 새 주인 찾기의 난맥상을 지적했다.


첫단추 잘못끼운 정부, 5년째 지지부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서울은행 매각 작업에 돌입한지 올 연말로 5년째에 접어든다. 지금까지 서울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만도 5조6,525억원으로 경부고속철도 건설비(12조원)의 절반에 달한다.

또 대학 교육비(5,300억원)를 약 10년간 부담할 수 있는 거금이며 430만 중ㆍ고교생들에게 연간 3조원 씩 들여 2년 정도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액이다. 정부는 1999년 영국계 은행인 HSBC와 양해각서까지 체결하고 장기간에 걸쳐 매각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가격과 매각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됐다.

정부는 올들어 공적자금 회수를 서두른다며 5월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간사로 선정하고,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인수제안서를 발송했다. 이에 국내에서는 하나은행이, 해외에서는 론스타와 JP모건 등 전문펀드기관이 팔을 걷어 붙이고 뛰어들어 7월말 서울은행에 대한 실사를 끝마쳤다.

그러나 금융업계에서는 정부가 애초부터 매각을 위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전윤철 경제부총리나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각종 강연회나 기자간담회가 있을 때마다 서울은행의 매각순위를 매겼다.

1순위 우량은행, 그 다음이 국내기업, 마지막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과의 합병에 러브 콜을 보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정부가 매각초반부터 스스로 서울은행의 매각가치를 떨어뜨리는 세련되지 못한 셀링(selling) 포지션을 취했다”며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인수자들을 입찰에 참가토록 해 경쟁을 붙여야 하는데 정부는 ‘우량은행 우선’이라는 옥쇄를 죄어 입찰자들이 경쟁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동원이나 동부컨소시엄 등 국내기업들도 인수참가를 포기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최근기사에서 “한국 정부의 정치적인 고려가 입찰을 흐리고 있다”면서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혜ㆍ헐값시비에 휘말릴라” 몸 사려

서울은행 매각과 관련한 최근 일련의 사태를 놓고 정권말기만 되면 고개를 드는 관료들의 보신주의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계에서는 국내기업이나 해외투자자 보다는 국내 은행에 서울은행을 매각할 경우 특혜나 헐값매각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정권 말 논리가 관련 공직자들 사이에선 이미 팽배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서울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다음 정권에서 청문회에 설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보다 앞서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은행과 대한생명의 매각절차상 인수자를 최종 선정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산하 매각심사소위원회도 최근 김승진 위원(변호사)이 “업무수행상의 한계를 느낀다”고 사표를 제출한 데 이어 위원 8명중 3명이 사퇴했거나 사의를 이미 표명한 상황이다. 이들 민간위원은 정권말 관료들의 책임회피를 위한 들러리로 동원되지 않겠다는 것이 사퇴의 변(辯)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서울은행 노조는 최근 하나은행이 정부와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서울은행을 합병하는 것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공자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적자금관리법 13ㆍ19조에는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해 최소비용 원칙과 정부 보유 자산을 적정한 가격에 매각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서울은행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하나은행에 합병 시키는 것은 법률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노조측은 “법령의 취지를 감안할 때 서울은행 매각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만 정부가 금융산업 발전을 고려한다면 법률제정 의도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황의채 서울은행 고문변호사는 “론 스타가 현금으로 인수대금을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가 주식교환방식을 제시한 하나은행에 우선권을 줄 경우 정부 보유자산을 적정한 가격에 매각한 것으로 볼 수 없어 공자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갈등 증폭, 연말쯤 가닥 잡힐 듯

공자위 매각소위가 서울은행 우선 협상대상자를 추천할 경우 공자위 본회의에서 최종결론이 나게 된다.

하지만 매각소위는 단 한번으로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금융계의 전망이다. 한국정부가 외국계 자본이 참여한 입찰에서 일방적으로 자국 기업만 편든다는 오해가 제기할 경우 국제여론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론스타측은 그 동안 정부에 대해 “공정하게만 평가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관료들의 인위적인 개입에 따른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해외투자가의 의심을 사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와 서울은행 합병의 시너지 효과도 또 하나의 과제로 남는다. 두 은행은 전국적으로 영업지역이 똑같고, 상품도 거의 유사해 합병 효율성에서 가장 전제되는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인적구성의 격차로 인해 논의의 단계부터 서울은행은 합병시 파업까지 불사한 투쟁을 이미 경고하고 있어 향후 노사간의 갈등이 증폭될 전망이다.

양병민 서울은행 노조위원장은 “제일은행 매각후 정부는 서울은행만큼은 제 값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 도이치은행과의 자문계약을 체결하는 등 선진금융체제로 전환해 올해 수천억대 이익을 내는 우량은행으로의 틀을 다잡았다”며 “그러나 가치극대화 매각이라는 목표와는 달리 우량은행에 합병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 양 주장하는 것은 경제논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되더라도 최종결론 맺기까지는 만만찮은 진통이 예상된다.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다시 실사하고 매각 양해각서(MOU)를 맺은 뒤 인수조건을 협의하고 본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복잡 다다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진통 없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올 연말에 가서야 서울은행 인수를 위한 본 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08/09 17:27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