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고군산열도 선유도

빼어난 산수, 황홀한 낙조…보물같은 서해의 섬

역사를 앞서 살다간 이들 가운데 고운 최치원만큼 수많은 족적을 남긴 이도 드물다. 격문 한 장으로 황소의 난을 토벌해 당나라에 이름을 드날렸고 귀국해서는 이름난 산천을 유람하며 신선처럼 노닐다가 종국에는 합천 가야산 홍류동계곡에서 갓과 짚신 한 켤레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머물던 곳은 빼어난 산수를 간직한 곳으로, 지금도 그에 관한 무수한 전설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다.

망망한 서해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고군산 열도의 중심에 자리한 선유도 또한 고운의 체취가 어린 섬이다. 당나라에서 뱃길로 신라로 돌아오던 고운은 이 섬에 들른다. 그는 섬의 그림 같은 경치에 반해 ‘가히 신선이 머무를 수 있는 곳’ 이라 하여 선유도(仙遊島)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쯤 가면 선유도 망주봉이 마중을 나온다. 신선이 머무는 섬이란 이름을 안겨준 주인공이 망주봉이란 사실을 선유도가 처음인 외지인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생김새가 유별나다.

망주봉은 황소의 뿔처럼 매끈하게 생겼다. 햇살이 밑둥치부터 꼭지까지 퉁겨 나가는 야무진 바위다. 신선이 머물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산수는 갖추어야 한다고 한판 시위를 벌이는 듯하다.

선유도는 고군산 열도의 중심을 이루는 섬이다. 고려시대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최무선이 해군기지로 사용했고, 임진왜란 때는 함선의 정박기지 구실을 했다. 본래 세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던 것이 모래가 밀려와 쌓이면서 해안사구를 만들어 섬과 섬이 연결되어 지금처럼 하나가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피서철이면 인파가 들끓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다.

선유도에서 우선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거닐어 보는 것은 당연하다. 선유도가 간직한 비경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망주봉과 어울린 해변의 경치가 뛰어나다. 왼쪽으로는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가 있다.

오른편으론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군산을 떠날 때부터 내내 찜찜하게 따라붙던 탁한 물과 분명한 구분을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짓는다. 간지럼을 태우듯 잘게 부서지며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근 채 거니는 맛은 달콤하기만 하다. 둘이어도 좋고, 설령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해변의 정취에 반해 온종일 사람들의 그림자가 깨알같이 멀어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선유도는 무녀도와 장자도 등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무녀도와 장자도는 선유도와 현수교로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도 찾아볼 수 있다.

선유도에서 넉넉한 걸음으로 40분쯤 걸리는 무녀도는 질박한 포구 풍경을 즐길 수 있고, 장자도는 깊은 바다와 갯바위 풍경이 아름답다. 두 곳 모두 걸어서 다녀도 충분하지만 조금 편리하게 다니려면 민박집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면 된다.

선유도가 간직한 모든 아름다움은 일몰로 집약된다. 그 아름다운 해변에서 저무는 해를 보내면 그 동안 눈요기 실컷 하며 감탄해 마지않던 선유도의 아름다움이 덧없음을 알게 된다. 딱히 어디가 포인트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해변 아무 곳에서나 발길을 멈추면 된다. 그 때가 썰물 때면 바다는 멀찍이 달아나 한참을 바다를, 해를 향해 걸어도 좋을 일이다. 밀물 때면 발 밑에서 출렁이는 파도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해를 바라보면 된다.

해는 점점 붉어 홍염에 불타고, 하늘도 바다도 그 빛에 젖어 농익는다.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했던 배들은 서둘러 포구를 찾아들고, 배 지나간 바다 위로 갈매기 떼 무리 지어 난다. 해변을 내달리는 아이들이 순간 우뚝 멈춰 서고, 연인의 어깨를 감싼 채 밀어를 주고받던 이들도 발길을 멈추면 불덩이로 타오르던 해는 서해 바다로 침몰한다.


* 길라잡이

선유도로 가려면 군산을 들머리로 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 익산IC로 나와 720번 지방도로와 27번 국도를 따라가면 군산항에 닿는다. 군산여객터미널에는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군산에서 선유도로 가는 배편은 휴가철에는 3, 4회 운행된다. 출발시각은 조수의 차에 따라 매달 바뀐다. 군산여객선터미널(063-442-0116).


* 숙박 및 먹을거리

민박집은 선유도 진말마을과 장자도 두 군데에 밀집되어 있으며 여름철에는 다른 마을에서도 민박을 받는다. 선유도민박(063-465-9317), 해수욕장에 있는 선유도 공무원휴양소(063-450-6451)는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선유도에는 식당과 상점이 몇 곳 있지만 여름철엔 값도 비싸고 없는 것도 많다. 가능하면 먹는 것부터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가져가는 것이 좋다.

입력시간 2002/08/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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