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꿈★에는 지름길이 없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눈물을 흘렸다. 노 후보는 8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재경선이든 신당에서의 후보 선출이든 반드시 국민경선으로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노 후보가 이날 눈물을 흘린 것은 민주당이 6ㆍ13 지방선거에 이어 8ㆍ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 후보는 그 동안 국민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는 정통성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신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하면서 국민 경선을 통한 후보 선출까지 아예 ‘백지화’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자존심이 강한 노 후보가 울분을 참지 못한 것이다. 노 후보의 이 같은 심정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노 후보는 국민경선과정과 지방선거 직후 재신임과 재경선을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자신의 발언에 발목이 잡힌 노 후보가 신당을 전면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로 꼭 신당문제가 불거진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 후보가 여론의 지지를 계속 받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이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데 이르기까지 노 후보는 결정적 실책을 저질렀다. 국민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욕구를 너무나 잘 알았고 이 때문에 후보로 선출됐는데도 불구, 노 후보는 과감하게 ‘탈(脫) DJ’ 선언을 하지 못했다.

노풍(盧風)이 한창 거셀 때 노 후보가 부정부패 척결과 DJ 아들들의 구속 등을 주장했더라면 노 후보의 입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개혁과 변화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면서 구 정치인들처럼 행동한 노 후보에 여론은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여론은 지금 또 다른 후보를 시험하고 있다. 그 후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오르게 한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이다. 정 의원이 8월 11일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낙동강 인근 경남 합천군 청덕면 가덕리를 방문, 이재민을 위로했다.

정 의원은 이 같은 행보는 지역구 의원이 아닌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후보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신당의 영입 1순위인 정 의원은 “국민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고 있으며, 대통령은 초당적 입장에서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면서 국민과의 ‘스킨십’ 강화를 통해 ‘초당적 후보’의 이미지를 설정해 나가고 있다. 부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스스로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패배했을 때와 비교하면 정 의원은 현재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올라가 있는 셈이 이다.

국민들에게 인기도 ‘짱’이고 신당에서도 “빨리 들어와 달라”며 애걸복걸 하고 있으니 정 의원으로서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정 의원은 어떤 결심을 할 것인가. 정 의원은 8월 8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후보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신당에 참여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독자적으로 결심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후보 경선의 방식과 시기 문제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참여할 수도, 독자노선을 갈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정 의원은 신당에 참여해 후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해야 이길 수 있을까, 독자 출마해서 3자 구도로 가면 승산이 있을까 등등을 놓고 이해득실을 따질 것이다. 정 의원이 어떤 결심을 할 지 알 수 없으나 결심하기 전에 분명히 명심해야 할 점들이 있다. 먼저 정 의원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떤 당에 들어가도 괜찮은지 알고 싶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신념, 정책 등과는 어울리지 않는 당이라도 대통령만 되면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일단 입당하면 그 당을 개혁하고 새롭게 만들 의지와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또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의 기본은 경선을 통한 선출이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울산 지역의 유권자들이 뽑은 선량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 의원이 신당에서 대의원들의 추대를 받아 대선후보가 된다면 역시 본선 승리는 어려울 것이다. 신당에서 정정당당하게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가 된다면 결코 대선에서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

오랜 의정 생활 에서 무소속으로 지내온 정 의원이 당의 힘을 빌리지않고 독자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당이 없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라는 복잡한 조직을 어떻게 경영할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야 할것이다. 정 의원에게 최선의 방책은 없을 것이다. 굳이 조언을 하자면 패배를 감수하고 국민경선을 통해 자신을 시험하라는 것이다.

또 패배하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신당을 환골탈퇴하는 등 개혁과 변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틀린 판단보다 더 나쁜 것은 너무 빨리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는 정 의원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올바른 결정을 용감하게 내리는 것이다.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구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은 식상해 있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8/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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