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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風 진실게임… “밀리면 죽는다.”

한나라·김대업 사활 건 공방, 녹음테이프 완전공개 땐 '태풍'

“녹음테이프나 내놓으시지.”

“자신있으면 공개토론합시다.”

8월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기자실에서는 의무부사관 출신의 김대업씨와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는 뜻밖의 장면이 연출됐다.

한나라당 서정우 법무 고문과 법률ㆍ공보특보인 김정훈, 이종구씨가 한창 정연씨 병역면제 과정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도중 마침 검찰에 출두하던 김씨가 들이닥쳤다.

김씨는 “왜 내 전과를 공개하고 뒷조사를 하느냐. 내 인권은 안중에도 없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김씨는 숨돌릴 틈도 없이 “녹음테이프는 때가 되면 다 내놓을 테니 걱정말라. 거대정당이 뭐가 아쉬워 이리떼처럼 달려드느냐”고 주장한 뒤 “공개토론을 제의하겠으니 자신 있으면 맞붙어보자”고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결국 서 고문 등은 “뭐가 무서워서 도망가느냐”는 김씨의 고성을 등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뜻 촌극처럼 보인 이날의 공방은 그러나,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장남 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사건을 둘러싸고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한나라당과 김씨의 장외 대치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좋은 사례다.


한나라당, 민주당 지원설로 반전카드

7월 31일 김씨의 고소 이후 한나라당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비록 하루 뒤인 지난 1일 김씨와 민주당 간부들을 검찰에 맞고소하는 등 강경대응으로 맞섰으나 국면전환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결사 반대하던 서울지검 특수1부에 사건이 배당되면서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상황에 처한 듯 보였다.

그러나, 수세국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첫 반전카드는 민주당의 김씨 지원설 제기였다. 김씨의 고소 당시부터 민주당과의 연계 의혹을 제기했던 한나라당은 이후 민주당 천용택 의원을 김씨 배후세력으로 지목하는 강수를 뒀다.

물론 천 의원과 민주당은 펄쩍 뛰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여론의 반응은 달랐다. “정연씨 병역면제과정도 수상하지만 이쪽(김씨와 민주당)도 뭔가 석연치 않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한나라당은 곧이어 김씨의 부정 수사개입 의혹을 제기해 검찰 수사팀을 흔들기 시작했다.

파문은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씨가 사복을 입고 수사관 행세를 했으며 진술조서까지 직접 작성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확산일로를 걷다가 한나라당이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노명선 전 특수1부 부부장(현 일본대사관 법무협력관)을 공무원자격사칭 교사라는 죄목으로 고발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김씨, 새로운 쟁점 만들며 직격탄

김씨가 곤경에 빠진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김씨가 유력물증으로 내세웠던 녹음테이프를 내놓지 않았던 탓이 컸다.

‘공수표’ 의혹에 이어 “제 2의 설훈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나 김씨는 한나라당의 증거은폐 위험성을 이유로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다. 김씨는 대신 언론, 특히 라디오 방송을 통해 테이프 내용을 하나씩 공개하는 전략을 선택, 재반격에 나섰다.

그는 8월 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지난 97년 정연씨 병적기록부는 김 전 청장의 서랍안에 보관돼 있었다”고 주장, 포문을 열었다.

김씨는 이어 같은 날 SBS라디오 ‘박경재의 시사전망대’에 연이어 출연, “이 후보 부인 한인옥씨 개입사실과 은폐 대책회의 사실을 입증할 녹음테이프 4개가 있다”며 “테이프에는 한씨가 브로커에게 1,000만원 이상을 건넸음을 입증할 관련자 진술도 담겨있다”고 주장, 한나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압권은 정연씨 신검을 담당했던 백일서 전 국군춘천병원 진료부장과의 라디오 설전이다. 김씨는 “정연씨 체중을 직접 측정해 기록했으며 아무런 비리가 없었다”는 백 전 부장의 주장에 대해 “병이나 하사관이 신체검사를 하고 기록까지 하도록 돼있는 국방부령 위반인 동시에 정연씨를 봐줬다는 증거”라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백 전 부장이 “관례에 따랐을 뿐 아무런 부정이 없었다”며 거듭 의혹을 부인하자 갑자기 “1990년 당신이 논산병원에 근무할 때 내가 500만원을 건네며 병역면제 청탁을 했는데 모르겠느냐”고 폭탄선언을 해 백 전 부장이 당황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김씨는 새로운 쟁점을 만들어낸 데 이어 다시금 강한 인상을 심는데 성공, 상당한 소득을 거뒀다는 분석이다.


검찰 물증 확보, 수사 꼬일 가능성도

검찰은 8월 5일 김씨를 전격 소환한데 이어 지난 주말 김 전 청장의 수행비서였던 김모씨를 불렀으며 12일에는 백 전 부장과 당시 춘천병원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등 예상 밖으로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르면 이번 주중 김 전 청장의 소환조사도 가능할 전망이다.

물론 여기에는 김씨의 연이은 정보유출을 막아보자는 고육책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무턱대고 핵심 참고인들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지난주 내내 김씨를 불러 조사한 결과, 이미 녹취록 수준에 버금가는 진술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전 종로구청 직원 박모씨로부터 “병적기록부에 있는 글씨는 내 것이 아니다”라는 중요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여기에 12일을 필두로 김씨의 녹음테이프를 속속 제출받는 등 물증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상태다.

하지만 김씨와 한나라당의 대결장소가 검찰 울타리 내부로 옮겨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도 녹음테이프의 ‘충실도’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이 김씨의 주장처럼 명확하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단순한 전언 수준이라면 수사가 꼬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관련자들을 또 다시 소환해 김씨와 일일이 대질시켜야 하는데 이미 김 전 원사 등은 해외로 출국한 상태다.

장외 공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잦아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끝이 보이지 않을 경우 생존을 위해서라도 서로 밀고 당기는 접전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과연 검찰의 속전속결 수사를 통해 양자간 공방이 조기 마무리될지, 아니면 사건이 지루한 저질 정치공세로 전락해 국민들의 불쾌지수만 높일지 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입력시간 2002/08/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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