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개팔자가 상팔자"

애견들의 초호화판 여름 즐기기 백태

“개팔자가 상팔자다.” 요즘처럼 이 말이 들어맞는 딱 경우도 없을 듯 하다. 경제가 다시 어려워 지면서 노숙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일부 상류층의 애완견들은 ‘초호화판’ 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애완견 전문 미용실이나 카페, 장례식장, 정자은행 등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하루 숙박비가 10만원에 달하는 애견 호텔도 더 이상 놀랄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애견 전용 유치원이나 택시까지 선보이고 있어 “심한 게 아니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주인은 휴가지로 개는 호텔로

서울 강남 역삼동 역삼 사거리 인근에 국내 최초로 개 유치원이 선을 보였다. 7월 오픈한 이곳에는 현재 4마리의 애견이 맡겨져 있다. 매일 아침 전용 버스를 통해 통학을 한다.

최근에는 탤런트 류시원과 열애중인 혼성 4인조 그룹 ‘샵’의 멤버 서지영도 이곳에 애견을 맡겼다. 애견들은 이곳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다. 교육과정은 ‘탁아반’(프티반)과 ‘훈련반’(페티반)으로 나눠 진행된다.

처음 2개월은 전속된 개 20여 마리와 어울려 노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원을 거닐기도 하고 옆에 딸려있는 애견카페 손님들에게 재롱을 떨기도 한다. 한달 비용은 25만원. 훈련반으로 들어가게 되면 10만원이 더 부과된다. ‘앉아’ ‘일어서’ 등 복종 훈련에서부터 장애물 넘기 등 체력 훈련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점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애견 유치원과 보신탕집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신탕집 주인 김모(61)씨는 “손님들이 ‘옆집에서 개를 잡아 담장 너머로 던지는 것 아니냐’며 농담을 한다”며 내심 껄끄러움을 내비쳤다.

얼마 전에는 보신탕집을 지키는 순돌이(백구)와 타미(알래스카 말라뮤트)가 한바탕 붙어 두 집 사이에 ‘냉기’가 돌기도 했다. 보신탕집에서 쥐를 잡기 위해 순돌이를 풀어놓은 게 화근이었다. 순돌이가 프티페티로 찾아와 타미의 코를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타미는 몇 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유치원측은 ‘개 유치원’이 애견들에게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 설파한다. 프티페티의 전홍조(30) 대표는 “사람의 경우 형제 없이 키우게 되면 외로움을 타듯이 개도 마찬가지”라며 “이곳에서는 여러 마리 개들이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설명했다.

주인이 휴가간 틈을 타 호텔서 ‘호화판’ 생활을 즐기는 개들도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애견종합병원 ‘닥터팻’의 손님들이 그 주인공. 이곳에는 현재 30여 마리 견공들이 방을 차지하고 있다.

병원측에 따르면 7월초부터 30개의 객실이 만원이라는 것이다. 하루 숙박료는 3만원.

물론 일반실의 얘기다. VIP실은 하루 7∼10원을 호가한다. 5평 정도의 공간에는 위성 안테나를 비롯해, TV, 에어컨, 공기정화기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최근에는 각 방마다 CCTV를 설치, 실시간으로 개들의 모습을 중계하고 있다. 때문에 인터넷만 가능하면 언제든 애견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자 멀리 떨어져있는 주인들로부터 주문이 쇄도한다. 닥터팻의 권경희(35) 실장은 “인터넷을 통해 개를 살피다가 이상이 있는 것 같으면 전화한다”며 “보통 ‘TV를 틀어달라’거나 ‘운동을 좀 시켜달라’는 등의 요청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취재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자칫하면 ‘귀하신 몸’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병원측의 주장이다.


침대에 인큐베이터까지 갖춘 개 택시

4월부터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영업을 개시한 애견 전용 택시도 인기다. 이른바 ‘도그택시’로 불리는 이 차는 애견만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차 내부를 보면 각종 편의시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개 전용 침대를 비롯해 안전벨트, 냉난방 장비 등이 갖춰져 있다. 유사시에 대비해 산소 인큐베이터나 인큐베이터도 구비돼 있다.

‘클래식 마니아’인 견공을 위해 베토벤이나 바그너 등의 클래식 음반도 갖추고 있다. 적용되는 요금은 5km 거리를 기준으로 편도 2∼3만원. 밤 8시 이후로는 할증 요금이 적용된다. 이 경우 보통 1∼2만원 정도가 추가로 부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객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잇다.

도그택시의 전욱(45) 대표는 “낯선 용어지만 외국의 경우 이미 펫택시(애견용 택시)가 일상화 돼있다”며 “아직은 하루 3∼4건 정도가 고작이지만 단골손님이 생기는 등 이용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애견가들은 개들이 죽었을 경우에도 전용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이곳에 위탁하면 비문 제작에서부터 화장 때까지 모든 과정을 대행해주기 때문이다.

한번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보통 20∼70만원 선. 사람과 똑같이 수의를 입혀 오동나무관에 안치한 뒤 화장시킨다. 비용을 더 지불하게 되면 화장 후 납골당이나 강아지 전용 묘지에 안치하게 된다. 특수 제작한 비문도 세워준다.

이밖에도 애견 전용 정자은행, 미용실, 애견 카페, 의상실 등 기상천외한 아이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시장규모 확대, 년 1조 5,000억원 추정

한국애견협회는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애견 관련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시장 규모가 7,000억원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성장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수직상승 이면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한 몫 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한국애견협회의 최지용(40) 이사는 “우리나라 애견수는 얼마전도 그렇고 지금도 300만 마리 정도에 머물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 이 같은 붐이 형성되는 것은 미디어의 선정적이고 경쟁적 보도가 한 몫 한다”고 지적했다.


탤런트 류시원 때문에 '팽'당한 애견 '우디'

탤런트 류시원과 그룹 ‘샵’의 멤버 서지영간의 열애 사실이 팬들의 눈길을 붙들고 있다. 이들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틈나는 대로 만나며 주위 사람들에게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뜨거운 사랑 때문에 뒷전으로 물러난 피해자가 있다.

서씨의 애견 ‘우디’가 그 주인공. 1년차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 종인 우디는 얼마 전 역삼동에 위치한 애견 유치원 ‘프티페티’로 옮겨졌다. 물론 서지영씨가 한눈만 팔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게 유치원측의 설명이다. 새벽마다 짖어대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산 것도 한 이유다.

전홍조 프티페티 대표에 따르면 천성이 장난꾸러기인 우디는 여기 와서도 동료들과 잘 어울린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탓인지 사람도 잘 따른다.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마다 애교를 부려 귀여움을 독차지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서씨가 들르는 날은 울음바다로 변한다. 헤어지기 싫은 탓인지 서씨가 돌아가고 나면 꼭 앓아 눕는다. 전 대표는 “엄마가 돌아가고 나면 꼭 설사를 한다”며 “건강이 많이 나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서씨도 마찬가지다. 우디와 헤어질 때만 되면 통곡을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서지영씨는 당분간 유치원에 출입할 수 없게 됐다. 우디와 서씨의 건강을 생각한 유치원측의 배려인 셈이다.

이석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08/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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