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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조선왕조 500년 누가 일으키고 누가 말아먹었나

신봉승著 '성공한 왕, 실패한 왕', 경영마인드로 본 조선시대 국왕들

주식회사 조선왕조의 베스트 CEO(최고경영자)는 누구일까?

인기 사극 작가인 신봉승씨가 ‘성공한 왕, 실패한 왕’(동방미디어 펴냄)이란 신간에서 조선시대 국왕들에게 경영 마인드란 다소 엉뚱한 잣대를 들이댔다.

신씨는 “조선이 500여년이나 영속했던 거대 기업으로 보면 조선시대 국왕들은 국가라는 거대 조직을 경영했던 CEO들이었다”며 “창업(태조)에서 수성(태종)-창조(세종)-정착(성종)-위기(선조)-제2 창업(정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업의 탄생과 발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제왕과 CEO는 태생적으로 전혀 달라 비교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새 천년에 들어선 요즘도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총재의 폐단이 불거져 나올 정도로 제왕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진짜 제왕에게 CEO 마인드란 현대적 평가수단을 적용한 신씨의 시도는 참신한 면이 있다.

막연한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제왕과 CEO는 전성기가 봉건시대와 자본주의시대로 다를 뿐 동전의 앞뒤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지도 모른다. ‘CEO마인드’란 책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제프리 E 카튼은 CEO들이 제시한 경영마인드의 이론적인 근거를 살핀 결과 놀랍게도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밝혔다.

신씨는 “남을 지도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전문지식,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한 비전제시능력, 창조적 지도력, 개혁과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수평적 의사결정 마인드, 결단력, 신뢰감, 포용력 등 현대 경영학이 요구하는 CEO마인드는 조선왕조의 국가경영에 적용되었던 제왕학과 비교해볼 때 한치의 오차도 찾을 수 없다”며 “다만 용어가 기업용어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27명의 조선왕 중 태종 세종 성종 선조 정조 등 5명이 조선왕조라는 거대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성공한 왕이란 영예를 차지했고, 세조 중종 광해군 인조 고종 등 5명이 조선왕조를 위기로 몰아넣은 실패한 왕으로 몰렸다.


  • 성공한 왕

  • 태종-국가경영술의 달인

    아버지(태조)를 거역하고 두 번이나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살육하고 정권을 잡은 태종은 정통성과 도덕성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권력 탈취 과정에서 보여준 강력한 카리스마와 앞을 내다보는 비전, 무서운 추진력을 집권 후에는 발빠르게 문민독재로 전환, 조선왕조가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등 뛰어난 국가경영술을 발휘했다.

    또한 예지력을 발휘, 장남과 차남인 양녕대군과 효녕대군을 제치고 총애하던 삼남 충녕대군(후일 세종대왕)을 파격적으로 발탁해 세종시대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또 외척과 공신이 ‘경영대권’을 위협할 것을 우려, 네 처남과 ‘혁명동지’들을 제거했다. 52세에 골육상잔으로 얻는 권좌를 넘기고 2선으로 불러서는 원숙함도 보였다.


    세종-수평적 경영 마인드의 개가

    세종은 부친과 모친, 큰 아들, 아내의 죽음으로 재위기간 3분의 1을 상주로 보내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신하들과 토론하는 경연에 불참하지 않는 등 성실했다.

    김종서에게 육진(六鎭) 설치를,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에게 훈민정음 창제를, 장영실 등에게 천문학 기기 축조를 맡기는 등 신뢰할 수 있는 스태프를 정하면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세금을 책정하기 위해 암행어사를 파견해 세제방법을 물었고 찬성보다 반대가 많자 책정을 연기하고 자신의 할아버지(태조)를 반대하다가 아버지(태종)에게 죽임을 당한 정몽주와 길재 등 고려 충신들을 국민들의 귀감으로 부상시키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성종-견제와 균형의 지배원리를 실행한 지략가

    조선왕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기반과 체제를 완성시켰으며 세종시대에 버금가는 태평성대를 이루어냈다.

    경사(經史)에 밝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학자들과 자주 토론을 하며 학문과 교육을 장려해 ‘경국대전’‘동국여지승람’ ‘삼국사절요’ ‘동문선’등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문헌들이 이 시대에 쏟아져 나왔다.

    문치주의를 표방한 그는 세조 때 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그는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공명정대하고 도덕적인 용기를 가진 신진 사림세력을 대거 등용했다.


    선조-이상국가 실현을 꾀한 인재의 발탁

    한심한 왕이라는 통설과 달리 저자는 선조를 성공한 왕으로 분류했다.

    기백과 도량이 영특한 인재였던 그는 극심한 정쟁과 7년간 계속되는 전란(임진왜란)에 시달렸지만 이순신 등의 분전과 의병봉기에 힘입어 왜란을 극복하여 나라의 안위를 지켰고 성종 이후 싹트기 시작한 사림정치를 정착시켜 문치시대의 터전을 다졌다.

    그는 왕위에 오른 초반에 외척들의 전횡으로 일어났던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의 상흔을 씻어내고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황과 이이 등을 극진하게 예우해 침체된 정국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정조-지혜로운 왕 밑에는 유능한 참모가 있다

    노론 소론, 벽파와 시파 등 붕당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공명정대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조선왕조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선왕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해 벽파로부터 배척당했던 사람들을 발탁해 유능한 참모진을 구축했고 개국 이래 지켜온 금기를 깨고 서얼을 등용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그는 또 외조부 처단이라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처단을 택하는 단호함을 보였고 외척과 환관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당면 문제를 학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아 규장각을 설치했다.


  • 실패한 왕

  • 세조-뒤틀린 야망, 탐욕으로 얼룩진 국정의 난맥

    저자는 ‘세조실록’이 세조의 악정과 폐해를 선정으로 둔갑ㆍ왜곡한 승자의 기록이라며 유능한 경세자로 곧잘 꼽히는 세조를 실패한 왕으로 평가절하했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자신에게 불손한 신하는 가차없이 처단하고 순종하는 신하에게는 너그러웠다.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을 정지시키는 폭거를 단행했고 정치는 상명하달식으로 이뤄져 정국의 경색을 초래했다. 왕권강화에는 성공했지만 특권층의 비리가 난무하는 국정의 난맥상이 노출됐다.


    중종-실패한 개혁의지

    연산군을 몰아낸 쿠데타의 주체들이 옹립한 왕이라는 한계를 넘어 이상정치를 구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도학정치를 주장하며 이상국가 건설을 설파한 조광조에 끌려 과거제도를 개혁하는 등 정치개혁을 단행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다 정보와 지도력 부재까지 겹치면서 자신을 그토록 따르던 조광조를 제거한다.

    이후 정국은 훈구와 사림의 갈등으로 야기되는 사화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등 실패의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광해군-패덕의 이름을 남긴 연약한 군왕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 연산군과 함께 쿠데타 세력들에게 밀려나는 오명을 남긴 그는 총명함을 타고났지만 온갖 콤플렉스의 벽을 뛰어 넘지 못해 모후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부왕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죽였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실리외교로 충돌을 피했고 성실하고 과단성 있게 정사를 처리했지만 인재 기용에는 파당성이 강했고 인조반정으로 축출된 뒤에는 혼군(昏君)으로 규정됐다.


    인조-적장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린 왕

    쿠데타를 통해 왕에 옹립된 그는 명과 청의 교체기임에도 불구, 구태의연한 숭명(崇明)사상에 매달리다가 조선왕조 역사상 최대 비극인 병자호란을 겪는다.

    지도력이 취약해 신료들이 척화와 화친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데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머뭇거리다가 남한산성으로 밀려들어간다. 편협하고 의심까지 많아 개명군주의 가능성을 보였던 아들 소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고종-망국의 한을 짊어진 불행한 황제

    대원군의 독단과 전횡, 장기집권에 대한 집념은 조선을 파탄으로, 고종을 비운의 제왕으로 몰아가는 씨앗이 된다.

    그의 퇴진이후 고종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무력하고 우유부단했던 고종은 외세의 각축을 이겨 낼 스태프도 없었으며 결국 일본국의 폭력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며 급기야 아들과 함께 망국의 한을 짊어지게 된다.

    김경철 차장 kckim@hk.co.kr

    입력시간 2002/08/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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