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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수로 콘크리트 타설식, 핵사찰 갈등 불구 건설에 탄력

“콘크리트가 뭡니까. 한번 공기에 노출되면 굳어버리지 않습니까. 이번 콘크리트 타설 행사는 말 많던 대북 경수로 사업을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선섭 경수로사업지원 기획단장은 8월 7일 새벽 한국해양대 실습선인 한나라호가 밤을 새워 동해바다를 달려 함경남도 금호항 외곽 해상에 이르자 저만치 경수로 건설 현장을 가리키며 “콘크리트를 붓고 나서 공사가 중단되는 법은 없었다”고 되뇌었다.

콘크리트는 1994년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동결을 조건으로 지어주기로 약속했던 경수로의 원자로 노심이 자리할 곳에 정확하게 쏟아졌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 의장인 장 단장과 잭 프리처드(미국), 스즈키 가쓰나리(일본), 장 피에르 랭(유럽연합) 집행이사 등 이른바 ‘물주’들은 한결같이 한 고비를 넘겼다는 듯 서로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북측 대표인 김희문 경수로 대상사업 국장도 굳이 흐뭇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한국 우즈베키스탄 북한 등 700여명의 근로자들도 박수로 화답했다.

사실 콘크리트는 그 접착성 만큼이나 상징적 의미가 크다. 콘크리트 기반이 다져지면 지하 18m 지상 65m의 돔형 격납구조물이 축조되고 여기에 원자로가 장착되는 등 경수로 건설이 탄력을 받는다는 게 정설이다. KEDO 관계자는 이날 행사를 두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제네바합의에 명시한 대로 2003년 완공은 물 건너 갔지만, 강릉 잠수함 침투(96년)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98년) 등 악재에 핵사찰을 둘러싼 KEDO와 북측의 갈등으로 질척거렸던 대북 경수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선물

사실 북한 입장에서도 100만 ㎾짜리 경수로 2기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선물이다. 경수로가 생산할 200만㎾의 전력은 현재 북한의 전체 전력량과 비슷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게다가 경수로 전력은 들쭉날쭉 불안한 북한의 전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우수하다.

북한은 이 전력만 공급 받으면 현재 20%대인 공장가동률을 90%대로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욱이 KEDO가 개발한 발전소 부지 등 270만평은 북한 역사상 최고의 첨단시설로 채워진다. 경수로는 사업비 46억달러, 연인원 1,000만여명, 100만톤 상당의 장비ㆍ자재가 동원되는 한반도 최대의 협력사업이다.

한 북측 근로자는 “우리 공화국에서 철도는 나라의 동맥이라 하는데 멈춰선 곳이 수태(매우) 많다”면서 “이게 다 전력이 없기 때문이고, 이것만 해결되면 식량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경수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북측은 6ㆍ29 서해교전 직후에도 남측에 교육 파견을 보냈고, 고려항공이 함남 선덕-강원 양양 시험비행을 하는 등 KEDO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수로 현장에 투입된 북측 근로자 96명도 지난달부터 시간외 근무에 응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근무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경수로 현장은 타설식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50여명의 한반도 전문 기자들도 탄복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지어지고 있었다.


美 “당장 핵사찰에 응하라”

그러나 경수로 사업은 “산너머 산”이라는 찰스 카트먼 KEDO 사무총장의 말처럼 전도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북미 간에는 조기 핵사찰과 경수로 건설 지연 보상이라는 좀체 타협하기 어려운 의견 차이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차는 국내외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2003년 위기설’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프리처드 대북교섭담당대사(KEDO 집행이사)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12시간의 항해 동안 입을 굳게 닫고 있던 프리처드는 경수로 현장에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미국은 경수로에 콘크리트 타설을 함으로써 94년 제네바 합의사항 준수를 위한 구체적이고 전진적인 조치를 취했다”면서 “북한은 지금 당장(Right Now)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에 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북한이 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 경수로 공사가 지연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샴페인을 터뜨리기가 무섭게 채찍을 든 것이다.

프리처드의 주장은 지금 사찰을 시작해 2005년께 경수로 핵심 부품을 인도하고 2008년께 완공하겠다는 ‘미국식 스케줄’에 근거한다. 남아공의 전례를 상기하면 핵사찰은 최소한 2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제네바 합의에 의거해 핵심부품 인도 시기 전에 핵사찰을 끝내려면 더 이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가 체결한 제네바 합의 자체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北 “건설지연 보상부터 하라”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사찰 운운하기 전에 먼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경수로는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내년까지 완성되어야 하지만 현재 종합공정이 21.96%에 불과하다.

북측 김희문 대상사업국장은 “타설 행사가 착공된 것은 다행이지만 늦은 감이 있다”면서 전력 손실 보상을 거론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본래 (완공시점)이 2003년까지인데 아주 지연되고 있어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면서 “이는 확고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또 경수로 핵심부품 인도시기에 맞춰 받게 돼 있는 핵 사찰도 2, 3개월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2005년 들어 사찰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미간에 핵사찰 시점을 둘러싸고 평행선이 그어진 셈이다.


북미대화로 풀어나갈 듯

그러나 북미간의 이견도 최근 북한의 대외관계 화해 움직임 등을 고려하면 대화를 통해 가닥을 잡아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같은 낙관적 관측은 내부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이 핵사찰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과도한 갈등을 유발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에 근거한다.

북한은 공사 지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93년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때처럼 핵사찰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찰 시기가 지금은 아니라고 고집할 뿐이다.

미국은 조만간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에 파견할 계획인 만큼 특사 회담에서 핵사찰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프리처드가 행사장에서 “켈리 차관보의 방북 때 나도 간다”고 말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핵 개발에 대해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 입장을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렇다고 체제가 망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을 받아내고 핵사찰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호지구(함경남도)=이동준 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2/08/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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