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곡성 태안사

오솔길 지나 산사의 향 그득한 그 곳

전라남도 구례와 곡성의 경계가 되는 압록은 섬진강이 비로소 강다운 자태를 갖추는 곳이다. 임실과 남원의 물을 보탠 섬진강 본류와 보성에서 출발한 보성강의 두 물이 만나는 곳으로 황포돛을 단 배를 띄워도 될 만큼 물줄기가 당당하다.

태안사는 압록에서 석곡으로 가는 길의 비밀스러보고 아늑한 곳에서 자리잡은 절이다. 보성강의 순한 물줄기가 스치는 동리산의 아늑한 분지에 자리했다. 태안사는 절도 절이려니와 입구에서 태안사에 이르는 2km의 오솔길이 빼어나다. 볼거리가 무진장해서가 아니라, 햇살 한줌 스며들지 못하게 촘촘하게 나무가 자란 오솔길이 정겹다.

그 오솔길을 짚어들면 신라 말기 선종을 드높인,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동리산파를 연 태안사가 고즈넉하게 자리한다.

태안사 경내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걸어가기를 권하고 싶다. 그것도 맑은 공기와 숲이 뿜어대는 신선한 향기에 취해 느긋한 걸음으로 걷는 것이 좋다. 청도 운문사로 들어가는 길의 금강 소나무 숲길이나 부안 내소사로 가는 길의 전나무 숲길처럼 훤칠하고 우람한 나무들이 만든 오솔길은 아니다.

이 땅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활엽수들이 제각각의 크기로 무리를 이룬 숲이다. 이 오솔길은 혼자 걷기 시작했다면 절에서 돌아 나올때도 혼자인 경우가 태반이다.


능파각 건너 돌이낀 낀 계단이 압권

큰길에서 태안사까지는 20분쯤 걸어야 하는데, 그 마침표를 능파각이 찍느다. 정자이자 다리인 능파각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계곡의 양측에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커다란 통나무를 얹혀 놓았다. 그 통나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으로 영조 13년(1737년)에 지어져 그 후 수차례 중수됐다. 정면1칸에 측면 3카느올 지어진 능파각 밑으로 수량이 많을 때는 급한 물살이 흐르는 폭포가 있어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난다.

능파각을 건너면 초록 이끼가 깔린 돌계단이 시작된다. 태안사가 간직한 가장 큰 아름다움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계단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오래 묵은 돌계단과 이끼, 그 계단 좌우로는 심지어 굳은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며 도열해 있다. 단언하건데 이런 돌계단 길은 태안사가 아니고서는 만날 수 없다.

태안사로 드는 오솔길과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능파각은 그저 이 심연한 돌계단 길을 부연 설명해 주기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그 길 중간에 화려하게 치장한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 뒤로 태안사의 시대를 연 산증인 광자대사를 기리는 탑과 비가 있다. 둘 다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광자대사는 혜철의 제장인 윤다를 칭한다.

윤다는 혜철의 제자로 고려 태조때 132칸의 당우를 지어 이 절을 대찰로 거듭나게 한 스님이다.


절을 품은 포근한 산자락

부도비까지 보고 나면 태안사의 풍경이 싱거워진다. 당우들이라고 해야 한국전쟁 후에 다시 세운 것들이라 특별할 것이 없고, 가운데 섬을 만들어 탑을 세운 연못도 잘 만든 정원 정도로 밖에 느껴지질 않는다.

인사치례로 절간을 한바퀴 돌아볼 때도 눈길이 자꾸 돌계단 길에 머문다.

그러나 여기서 발길을 돌리면 태안사가 간직한 참다운 풍경 하나를 놓치게 된다. 화려하게 치장한 대웅보전의 오른편으로 허름한 돌담이 연이은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스님들의 처소를 지난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문 하나를 지나면 다시 계단 위에 몰락한 양반집 대문처럼 담장도 없이 외로이 서 있는 문이 보인다. 그 문을 향해 걸어 올라가면 너른 터에 적인조사조륜청정탑이 한가로이 볕을 쬐고 있다.

부도 구석구석 푸른 이끼가 자라고, 더러는 게딱지처럼 말아 비틀어져 있어 탑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적인조사조륜청정탑은 태안사의 개산조인 혜철의 사리를 모신 부도다.

부도비를 등지고, 걸어 들어온 길에 눈길을 주면 절을 품어 안은 산자락은 외투처럼 포근하다. 그 아래 지붕을 인채 힘겨워 하는 문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부도비를 보며, 또 저 허물어져 가는 문을 바라보며 1,300여년전 동리산 자락에 동리산파를 처음 연 혜철의 깊은 마음을 떠올려본다.

▶ 길라잡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에서 순처능로 가다 석곡IC로 나온다. 석곡 면소재지를 거쳐 18번 국도를 따라 압록 방면으로 가다 죽곡에서 순천으로 가는 840번지 지방도를 따른다. 태안교를 건너 67km 가면 태안사 입구다

▶ 먹을거리: 태안사에서 10km 떨어진 압록은 삼진강의 두 물이 만나는 곳으로 은어회와 참게탕을 잘하는 집이 많다. 섬진강 맑은 물의 상징인 은어는 수박 향이 나는 고기로 회로 먹거나 구워 먹는다. 참게탕은 섬진강에서 잡은 민물 게를 얼큰하면서 진득하게 끓여 낸다. 은어회는 2만원. 참게탕은 3, 4만원 한다. 새수궁장(061-363-4633).


입력시간 2002/08/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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