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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창경궁

창경궁(昌慶宮)을 창경원(昌慶苑)이란 이름의 유원지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창경궁은 조선왕조의 5대 궁 가운데 하나다.

창덕궁 동쪽에 자리한 이 궁원은 조선조 세종 원년(1419) 11월에 상왕인 태종을 위하여 지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성종 14년(1483)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憙王后) 윤씨(尹氏), 덕종의 비 소혜왕후(昭惠王后:인수대비) 한씨(韓氏), 예종(睿宗)의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韓氏)를 위하여 수강궁 자리에 창경궁을 지었다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를 광해군 8년(1616)에 중건해 명정전(明政殿), 문정전(文政殿), 환경전(歡慶殿), 인양전(仁陽殿)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 때 난민에 의해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환경전 등이 또 불타버렸다. 인조 11년(1633)에 복구하고 효종 7년(1656)에 요화당(瑤華堂), 난향각(蘭香閣), 취요헌(翠曜軒), 계월각(桂月閣)을 세우고, 현종 11년(1670)에 건극당(健極堂)을, 숙종 때(1686) 취운정(翠雲亭) 등을 꾸준히 세웠으나 영조 32년(1756)에 저승전(儲承殿)이 또 불에 탔다.

정조 때 자경전(慈慶殿)과 월근문(月勤門)을 세우고, 순조 30년(1830) 8월에 또 큰 불이 나서 경춘전(慶春殿), 함인정(函仁亭), 공묵각(恭默閣) 숭문당(崇文堂), 영춘헌(迎春軒), 양화당, 오행각(五行閣)이 모두 타버리자 34년에 다시 중건했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자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일념으로 고종은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국제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밀사 세 사람을 보냈으나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헤에그 밀사사건이 빌미가 되어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그 후임에 순종을 앉힌다. 순종이 등극하면서 거처를 덕수궁에서 창덕궁(昌德宮)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제는 이때 순종황제의 집무처인 창덕궁 옆의 창경궁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핑계로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꾼다. 또 이 곳에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을 꾸미고, 우리의 궁 건물과 궁중목인 회화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을 모조리 헐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의 국화인 사꾸라(벚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융희 4년(1910)에는 창경원을 아예 오락장소로 만들어 버렸다.

창경궁의 ‘궁(宮)’이 어느날 갑자기 ‘원(苑)’으로 창씨개명된 것이다. ‘원’이 무슨 뜻일까? 원(苑)자를 파자(破字)하면, ‘풀’밑에 ‘죽음’이다.

그러니까 ‘풀+ 죽음=무덤’인 꼴이다. 여기엔 일제의 사악한 풍수 침략의 저의가 숨어 있다.

뿐만 아니다. 당시 이곳의 땅이름은 정선방(貞善坊)이었다. 이 정선방을 1914년 행정구역개편(부제실시)을 하면서 엉뚱한 와룡동(臥龍洞)으로 창지(創地)개명까지 했다. ‘와룡(臥龍)’이 무슨 뜻일까?

조선 왕의 상징이 곧 용(龍)인만큼 용은 승천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와룡은 ‘용을 눕힌다’는 뜻이다. 땅이름 하나에도 일제의 간계한 흉계가 숨어있는 것이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고 보니, 동네 이름도 덩달아 원서동(苑西洞)이 됐다.

광복 반세기가 휠씬 지났다. 하지만 일제 찌꺼기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이홍환 현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2/08/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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