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동양적 상상력의 진수를 만끽

■요재지이
(포송령 지음/ 김혜경 옮김/ 민음사 펴냄)

그리스로마신화에 이어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까지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고 은근히 샘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 우리에게는 저런 상상력이 없냐는 아쉬움 때문이다. 상상력이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이끌 창조의 핵심역량으로 급부상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과 다르다. 전통시대에는 상상력의 보고인 내세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을 중시하던 유교가, 근ㆍ현대에는 계몽주의와 사실주의가 핍박을 가하는 바람에 상상력이 제대로 날개를 펴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삼국유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상력의 깊이와 폭이 서양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

요즘 한창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일본의 경이적인 만화의 세계도 동양적 상상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중국적 상상력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청나라 초기의 문인인 포송령(蒲松齡)이 20대부터 70대까지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민간설화 497편을 담은 이 책은 중국 8대(奇書)에 속한다.

8대 기서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등 명 나라 때 완성된 4대 기서에 ‘홍루몽(紅樓夢)' ‘유림외사(儒林外史)’ ‘ 금고기관(今古奇觀)’ 그리고 이 요재지이를 더한 것이다.

중국 괴이문학과 지괴(志怪)소설의 간판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많은 언어로 번역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중국의 마오쩌둥과 독일의 헤르만 헤세도 탐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요재지이는 요재(저자인 포송령의 서재 이름)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란 뜻이다. 이야기의 소재는 당대의 사회상 및 가정생활, 남녀간의 애정, 천상의 세계, 자연의 신기한 변화, 자연재해 등 다양하며 귀신 신선 여우 도깨비 정령 등은 거의 빠짐 없이 이야기마다 ‘출연’한다.

8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며 미국 귀신영화 ‘사랑과 영혼’에 영향을 준 ‘천녀유혼(원작 제목은 여자 주인공 이름인 ‘섭소천’으로 1권에 수록되어 있음)‘이나 홍콩영화 마니아들이 70년대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는 ‘협녀(1권에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음)’도 바로 요재지이에서 소재를 가져 온 영화들이다.

완역본은 60년대이후 약40년만에 처음이다. 한밭대 김혜경 교수가 약 10년에 걸쳐 번역했는데 모두 6권으로 출간됐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08/23 11:3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