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출생지 찾아가는 김 위원장의 속셈은?

김정일닷컴(kimjong-il.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공동만남구역’(Joint Meeting Area) 이라는 동영상이 있다.

JMA에서 북쪽의 경비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명이고, 남쪽의 경비병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다. 영화 ‘JSA’를 패러디한 이 사이트를 보며 남북이 과연 분단이라는 현실을 언제 극복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본다.

김 국방위원장이 1년 만에 다시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은 북한이 최근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과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재개하려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그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7, 8월에 걸친 러시아 방문 때 특별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으나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모리예(연해주)는 김 위원장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구 소련의 비밀 문서들을 연구해온 러시아 학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16일 러시아 연해주의 하바로프스크에서 60㎞ 떨어진 제 88 여단 본부가 있었던 브야츠크(북야영)에서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그 동안 김 위원장이 백두산 밀영지의 귀틀집(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고 밝혀오고 있으나 별로 신빙성은 없는 듯하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자신의 출생지를 직접 방문하는 셈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기 위해 이 지역을 찾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방의 창’이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토크와 극동 지역의 최대 도시인 하바로프스크는 러시아의 요충지들이다.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을 달린다. 말 그대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고리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에서 이 지역의 산업시설 등을 시찰했으며 알려졌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면 김 위원장이 러시아 연해주를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측통들은 무엇보다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결사업,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북한의 산업시설 현대화와 노동인력의 러시아 수출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바로프스크에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유일한 정유소와 제련소가 있어 이를 통해 북한이 필요한 석유와 철강제품 등을 들여올 수 있다.

또 시베리아 타이가 지역에서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원시림을 벌목하기 위해 러시아는 북한의 값싼 노동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는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도시인 선봉과 하산을 연결하면 서로 통행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항상 한국과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앞서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부터 공고히 해왔다. 특히 이번 러시아 방문은 최근 미국의 압박을 모면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전략일 수도 있다. 미국은 이라크 이란 등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사찰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 대량살상무기의 수출과 개발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지난해 푸틴 대통령과 합의한 북-러 공동선언을 차제에 재확인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듯하다. 당시 공동선언 제 6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기의 미싸일 강령이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순수 평화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이 공동선언에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러시아는 이런 북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내용도 있다. 북한은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에서 미사일 개발과 수출 중단을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것이 분명한다.

북한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러시아를 카드로 사용하려는 속셈이다. 러시아도 한반도에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북한측의 입장을 지지할 것으로 보여 북한에게는 유리한 협상 전략이 될 것이다.

항일 운동을 했던 김일성 주석은 1942년 8월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하바로프스크의 소련군 제 88여단에 몸을 의탁했다. 이후 김 주석은 소련을 등에 업고 북한 정권을 차지하게 된다. ‘유훈 정치’에 충실한 김 위원장도 아버지의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일까. JMA의 북측 경비병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충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8/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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