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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10년] 대만독립카드는 고도의 정치게임

대만은 과연 중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할 것인가.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1999년 첫 발을 뗀 대만 독립 움직임이 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독립 국민 투표 실시’ 가능성 발언으로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미국 등 이해 관계국들까지 독립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대만 국민들 사이의 독립 열기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게 사실이다. 결국 멀지 않은 장래에 ‘찬반 투표’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ㆍ대만 갈등의 뇌관

최근 사태의 발단은 8월 3일의 천 총통 발언에서 비롯했다. 재일 대만 단체인 세계대만동향회연합의 29차 연차 총회 개막식에서 화상으로 축사를 한 천 총통은 “대만의 미래와 운명은 2,300만 대만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해 투표 실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발언은 재임 기간 중 독립 선언 및 중국과의 통일 여부를 묻는 투표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 개정이 절박하다고 말하고 “대만은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이며 해협 양안은 모두 1개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이후 기존의 무력 통일 노선을 수정해 ‘평화통일’과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대만 독립 움직임을 호락호락 보아 넘긴 적이 없는 중국은 ‘전쟁 불사’로 응답했다.

인민 해방군은 천 총통 등 대만 지도부를 응징하기 위해 전쟁과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했으며 연례 훈련의 하나로 이 달 중순부터 대만 해협 인근에서 시작한 군사 훈련의 전략 목표를 “대만 탈취”라고 밝히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 언론들의 반응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군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대만의 독립 선택은 전쟁을 택하는 것과 같다”고 경고하고 “중국이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군사 준비를 계속 해갈 필요성을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인민일보는 또 1면 사설에서 “천수이볜은 대만 인민들을 독립이라는 화약통에 묶어놓았다”고 비난하고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켜 정세를 바꾸려는 시도는 헛된 노력으로 끝날 것이며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 역시 잇따라 ‘경고장’을 냈다. 당 중앙 대만공작판공실 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리 웨이이 대변인은 “천의 발언들은 그가 완고하게 견지해온 대만 독립의 진면목을 충분히 드러냈으며 대만 동포들을 포함한 전체 중국 인민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자 국제 사회가 공인한 1개 중국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국내 악영향 불구 만만찮은 정치적 실리

대만 토박이인 천 총통의 독립 움직임은 일찌감치 예견됐던 것이다. 지난 해 12월 1일 치러진 대만 총선에서 대만 독립을 당 강령으로 삼는 천 총통의 민진당은 기존 의석에 17석을 보태며 총 87석(전체 의석 225석)으로 제1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줄곧 대만 독립을 강조하며 중국-대만 관계를 경색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리 전 총통이 이끄는 신생 정당 대만단결연맹도 1석 뿐이던 의석을 무려 13석으로 늘렸다. 20년만에 닥친 최악의 불경기라는 결정적인 선거 악재에도 불구하고 민진당과 대만단결연맹이 거둔 성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반해 형식으로라도 중국과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국민당은 무려 55석을 잃으며 대만 정부 수립 후 50여 년 간 한 번도 내주지 않았던 원내 제1당 자리를 뺏겼다.

특히 화해 조짐인 중국-대만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줄 뻔히 알면서 천 총통이 이 시기에 독립 투표 추진을 시사한 것은 권력 교체기의 중국에게서 좀더 많은 정치적인 실리를 얻어내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중국의 대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군사력도 향후 10년 안에 대만을 압도할 것으로 보이는 등 대만의 위상이 자꾸 추락할 전망이어서 미국 공화당 정권을 등에 업고 이 시기에 되도록 강공책을 구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천 총통의 발언은 외교에는 물론 국내 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쳐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다. 독립 발언이 나오고 5일 처음 개장한 대만 증시는 대폭락했다. 중국이 1999년처럼 “대화 중단”을 선언할 경우 대만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물론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들의 손해도 막심할 게 뻔하다.

대만 재계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에 울분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했다.

기업인들은 중국과의 항공 및 교역, 우편 등 3통(三通) 협상이 무산될 경우 천 총통에 대한 재계의 지지도가 급격히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대만이 동남아 화물기지와 기타 서비스 산업 중심지로 발돋움하려면 양안 직접 교역인 통상이 중요하며 세계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과 대만간의 3통 협상이 성사되지 않으면 대만을 떠나 다른 곳으로 본거지를 무더기로 옮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정부 고위 당국자들도 총통의 발언 수위를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썼다. 차이잉원(蔡英文)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은 5일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대만의 대중국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며 천 총통은 단지 중국의 일부가 아닌, 자치적ㆍ민주적 대만의 실상을 강조하려 했을 뿐이어서 이를 과대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

천 총통의 이번 재임 기간은 아닐 수 있지만 결국 대만이 독립을 위한 투표를 성사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지금으로서는 우세하다.

민진당이 천 총통의 발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놓고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64.8%가 지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응답자의 89%는 대만과 중국이 계속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와 경제 협력을 모색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여론조사는 천 총통의 발언 직후 대만의 케이블 TV인 TVBS가 20세 이상 성인 8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가 대만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에 찬성했다.

게다가 중국의 외교 전문가들까지도 대만이 2007년께에 독립을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최근 얀쉐통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의 말을 인용해 천 총통은 중국이 너무 강력해지기 이전이면서 민진당이 집권당일 때 국민 투표를 실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얀 소장은 “대만의 친 독립 정당들은 12월 총선에서 전체로 45%의 지지 밖에 확보하지 못해 국민투표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며 “천 총통의 발언은 집권 2기 국민 투표 실시를 위한 선거 운동의 개막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민진당은 9월 중순 시작하는 입법원 회기에서 일단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법 개정을 법안으로 상정할 의사를 표시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입력시간 2002/08/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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