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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訪러, 鐵의 실크로드 침목깔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訪러, 鐵의 실크로드 침목깔기

시베리아 철도사업 논의

8월 23일 오후 8시30분(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군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9번 가에 위치한 연해주정부 영빈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뒷짐을 진 채 스치듯 지나갔다. 잠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유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제3차 북ㆍ러 정상회담 결과를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를 적극 거중 조정할 의향이 있고, 북한의 동지(타바리쉬)도 우리의 노력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했습니다.”

다소 의외였다. 당초 예정 보다 2배나 긴 3시간30분 동안 만난 결과 치고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회담 전 푸틴 대통령이 “TSR-TKR 연결 사업에 당장 나서지 않으면 존경하는 이웃나라 중국에 빼앗길 지 모른다.

내가 김 위원장을 만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강조했던 철도문제 조차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때문에 회담장 주위에선 북ㆍ러 정상이 발표할 수준의 합의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나왔다.


북ㆍ러 신뢰관계 과시한 정상회담

그러나 김 위원장의 극동지역 방문이 ‘비공식’이었고 회담의 성격이 실무회담(working meeting)이었던 점, 푸틴 대통령이 아파트 폭발사고 등 국내현안과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10시간을 날아온 점 등을 상기하면, 이번 회담은 결코 간단치 않은 함의를 갖고 있다.

정치ㆍ외교적으로 볼 때 2000년 평양과 지난해 모스크바 정상회담이 구 소련 붕괴 후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신뢰 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성격이 강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마치 구 소련 시절 사회주의 형제국 정상들의 회동을 상기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김 위원장도 러시아어로 “즈드라스트부이체(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푸틴 대통령을 끌어안고 뺨을 부볐다.

푸틴 대통령이 여행소감을 묻자 김 위원장은 걸걸한 목소리로 “1,000% 만족한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크렘린이 밝혔듯이 한반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고, 그 핵심이랄 수 있는 핵ㆍ미사일ㆍ재래식 무기 등 북미대화의 의제들에 대해서도 터놓고 의견을 나눴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처럼 미사일 실험 유예기간 연장 등 구체적인 북미대화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점쳤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 경제의 최대 취약점인 전력 지원을 약속, 미국의 대북 핵사찰 및 북한의 경수로 건설 지연보상 요구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흔들 소재를 제공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북한은 이미 두만강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워 연해주 및 북한 지역에 전력을 공급해 줄 것으로 제안했고, 러시아측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문제는 북한의 대러 채무 55억 달러, 다른 경제협력 사안과 맞물린 재원 확보 문제가 걸려있다.


미국 의식한 러시아의 북한 끌어안기

두 정상의 회동은 대외관계 개선을 추진 중인 북한과 최근 미국의 대 테러 전쟁에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다음달부터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고자 했고, 러시아는 북한을 지렛대로 대 한반도 영향력 복원을 꾀했다. 북한은 지금껏 북미대화 등 국가적 사활이 걸린 결정적 국면에서 먼저 북쪽(러시아ㆍ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지렛대로 남쪽(한미일)과 협상에 나서는 경향을 보여왔다.

두 정상은 또 국내에서도 관심이 많은 TSR-TKR 연결사업의 추진 방안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북 전력지원 의사를 보이면서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했고, 김 위원장도 7차 남북 장관급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경의선ㆍ동해선 연결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8월 27일 서울서 개막한 남북 경협추진위 2차회의의 경의선ㆍ동해선 연결 논의도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됐고, 북한내 철도현대화를 위한 재원 확보 문제가 동북아의 화두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측이 지난해 평강_원산_나진_두만강 등 동쪽 간선 781㎞를 정밀 실사한 결과, 북한 철도는 사실상 전면 재건을 해야 할 만큼 열악했다. 전체 평균 운행속도가 시속 30㎞에 불과했고, 일부 구간은 통나무가 침목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타르 타스 통신은 “최소한 3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일부에서는 남한의 대러 채권 19억 5,000만 달러를 러시아의 대북 채권 55억 달러로 상쇄하면서 북한 철도사업에 투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철도 이외의 경협사안엔 실리적 접근

두 정상은 그러나 다른 경협 사안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실리적 차원의 접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극동지역 벌목량 및 곡물재배, 어업협력 확대 문제 등은 양국 모두에게 실익이 되는 것들이다.

김 위원장은 연해주 지역과의 교역확대를 통해 지난달부터 단행한 경제개혁 조치에 탄력을 주고자 했다. 지난해 북ㆍ러간 교역액 1억 달러 가운데 70% 가량이 극동에서 이뤄지는 등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이동준 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2/08/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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