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살의 도전, 윤석화

뮤지컬 제작작 겸 소극장주로 변신, 자전적 모노드라마 개관 공연

윤석화(47)씨가 대변신을 외치고 나섰다.

윤씨는 뮤지컬 제작자로서의 행보를 디딘 데 이어 자신의 소극장을 완성해 개관 무대를 자전적 모노 드라마로 장식할 계획이다. 이로써 윤씨는 연극배우, 종합예술지 ‘객석’의 편집ㆍ발행인 등 현재의 모습에 뮤지컬 제작자 겸 소극장주 라는 두 가지 이력을 더 추가하게 됐다.

지금 윤씨는 대학로의 ‘객석’ 편집실에서 2003년 2월부터 4개월 간 공연 예정인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제작을 위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국내 초연이 되는 이 무대의 아시아 지역 첫 판권 인수를 위해 전체 80,000달러 중 계약금 30,000달러와 중도금 20,000달러가 세계 3대 뮤지컬 프로덕션인 영국의 프로덕션인 RSO측에 지불됐다. 현재 잔금 30,000달러를 남겨 둔 상태다.

비지스의 음악과 존 트래볼타의 춤으로 1980년대를 디스코의 시대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작품이다.

그는 ‘객석’ 건물 1, 2층을 헐어 내부를 공연장으로 개조한 소극장 ‘정미소(精美所)’의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성스레 아름다움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의 이 소극장은 정규 인원 240석의 극장을 목표로 내부 공사중이다. 가벼운 체육복 차림에 운동화로 현장을 누비는 윤씨는 “상업극은 지양하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연극하는 공간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새 연극공간 '정미소' 개관에 정성 쏟아

10월 10일~11월 22일 개관 작품으로 공연될 예정인‘꽃밭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희곡을 쓰고 연출까지 하는 콘서트 형식의 모노 드라마다.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그가 무대에서 회고하는 형식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을 내가 겪었던 여러 사랑의 경험으로 엮어냈다고 말했다.

“다시는 못 부를 줄 알았고 다시는 부르기도 싫었던 노래를 제 극장을 찾아 온 관객들 앞에서 부르게 됐군요.” 4막 ‘배우라는 이름의 여인’에서는 최근 에이콤의 뮤지컬 ‘명성황후’와 관련해 그가 겪었던 속앓이를 그려 보인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초연 무대를 성황리에 끝내고 뉴욕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 연출가 윤호진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한 소프라노로 타이틀 롤을 바꿔 버린 것이다.

당시 국내 공연가에서 ‘연출가의 배신’이라며 적잖은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이 사건은 윤석화측의 공연금지가처분 신청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의 가창력 부족을 이유로 주역을 교체한 에이콤측의 행태는 그 동안 ‘아가씨와 건달들’ 등 커다란 뮤지컬에서 주연급으로 연기해 온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불을 끈 것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강원룡 목사의 중재였다. 그는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스타 연극 배우라고 선전돼 오다 이름도 들어 보지 못 한 소프라노한테 밀리다니 연극 배우란 게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야속한 심정이 절로 들더군요.” 20년을 연극판에서 동지처럼 지내온 사람이 일언반구의 인간적 양해는 물론 가창력 부족 등 인신모독적 발언까지 서슴지않았다는 사실에는 여지껏 쌓아 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2002년 7월 한국 무용계의 대부로 불리는 최현씨의 빈소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맞부딪쳤다.

“모든 걸 용서하는 마음으로 먼저 손을 흔들어줬어요.” 이번의 자전적 연극에서 그가 관객앞에서 부를 노래인 ‘어리고 순한 나의 백성들’은 꼭 자신의 노래 같다. 임오군란으로 청주에 피난 가 있던 명성황후의 심정을 그린 이 애절한 아리아는 그가 6년째 소주에 취할 때마다 읊조려 온 곡이다. “이번에는 백성이 관객으로 된 셈이라고나 할까요.”


뮤지컬 배우 자존심 건 '황녀'

뮤지컬 배우로서 쌓아 올린 명성도 확인해 볼 계획이다. 유주현 원작의 소설 ‘황녀(皇女)_’를 뮤지컬화한 작품이 그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주역으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소설의 극작가 김광림씨의 도움을 받아 각색 작업까지 도맡았다. 1970년대 전교도소에서 반공법위반 혐의로 생을 마감한 고종의 막내딸 이문용(文庸)의 기구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로써 덕혜옹주를 시작으로 명성황후, 여간첩 김수임 등 역사적 여인들을 대상으로 펼쳐 온 그의 뮤지컬 작업은 네 번째 획을 긋게 됐다.

그는 “이번에는 현대음악, 표현주의 기법, 영상 스크린 등을 적극 구사해 시대극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 한 ‘명성황후’의 한계를 뛰어 넘겠다”며 의욕을 펼쳐 보였다.

이 뮤지컬은 죽음을 앞둔 74살의 황녀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으로 시작한이다. 막을 열면 애닯은 한국적 선율속에서 앞니 두 개가 빠진 노파가 무대 뒤에 가득히 투영된다. 이빨 빠진 노파는 윤석화다. 호호할미의 모습은 물론 분장이지만 이빨은 분장이 아니다.

현재 윗 앞이빨 2개가 없는 그에게는 특별한 분장이 필요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의치다. 2001년 2월 박정자 손숙 등 평소 절친하게 지내 온 선배 여배우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던 극단 산울림의 ‘세 자매’ 공연 때 뜻하지 않게 당한 부상 때문이다. 막간 암전 때 벌어졌던 일이었다.

자신의 출연 신호였던 음악이 예정보다 조금 빨리 흘러 나오는 바람에 그는 딴 생각 할 겨를 없이 무대를 향해 다짜고짜 달렸다. 중간 부분에 조명탑이 서 있다는 사실조차 깜빡 잊을 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

정통으로 입을 부딪쳤고 뭔가 찝찔한 게 느껴졌다. “아픈 것도 몰랐죠.” 연기를 하는 그의 입언저리에 피가 섞인 침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른 것은 막뒤의 동료 배우들이었다. 그는 이튿날 아침 치과로 가서 시멘트 보철 치료를 받고 다시 출연해 예정된 나머지 2주 공연을 마쳤다.

그는 “단돈 백만원이라도 ‘객석’에 투자해야 했을 만큼 잡지의 경영 상태가 절박했다”며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정황을 돌이켰다. 그는 보철 상태로 2001년 7월~2002년 4월까지 극단 대중의 ‘넌센스’ 전국 공연을 강행해 관객 90% 점유 기록을 세웠다.


멋있는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고 싶어

여러 장르를 거쳐 끝없는 변신을 보여 주고 있는 윤씨가 궁극으로 지향하는 곳은 어딜까? 그는 “정말 멋있는 영화 한편의 주연으로 출연하고 싶다” 는 다짐으로 꿈을 대신했다. ‘토요일 밤의 열기’ 이후에는 ‘에비타’와 ‘그리스’ 등 RSO의 히트작들도 국내 무대에 상연할 생각도 있다.

소극장 ‘정미소’는 분장실 방수 공사 등을 끝내고 내부 공사 마무리 중이다. 그의 공연 열흘뒤인 12월~31일까지 양희은의 콘서트가, 다시 열흘 뒤인 2003년 1월 10일부터는 새 콘서트가 시작된다.

이번 공연을 다시 하게 될 지, 김광민 이병우 노영심 등 평소 그와 절친한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질 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뮤지컬 ‘황녀’는 빠르면 2003년 12월에, 늑어도 2004년 9월안에 상연될 예정이다. 그는 “‘황녀’를 마치고 나야 영구치 치료를 받을 짬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장병욱 기자

입력시간 2002/09/03 14:31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