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골프공은 아기처럼 다뤄라

“오늘은 꼭 K사장을 꺾을 거야”, “요즘은 컨디션이 좋으니까 친구랑 한 판 붙어 볼까”

골퍼 중에는 유난히 자신이 정한 스코어를 치려고 하거나, 꼭 누군가에게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흔히 ‘승부 근성 또는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프로 골퍼들 사이에는 ‘프로 근성’이 있다고 표현 한다.

모든 스포츠에는 이런 ‘승부 근성’과 ‘승부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골프에 있어서도 승부 근성이 골프 플레이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할까? 아직 통계 수치가 없어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골프는 ‘승부욕’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골프는 권투처럼 어느 누군가를 이를 물고 때려 눕히는 것도 아니고, 축구처럼 여러 선수가 공 하나를 놓고 격렬한 몸싸움을 하지도 않는다. 마라톤처럼 체력적인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할 정도의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단지 지금까지 배운 기술과 체력을 잘 조화 시켜 가만히 있는 공을 요리조리 다스려 홀 컵에 빨리 넣기만 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이처럼 누군가를 꼭 이기고 싶은 승부욕 때문에 골프가 더 안 되는 것 같다. 일단 승부욕이 생기면 우선 라운딩 전날부터 ‘반드시 이겨야지’ 하는 마음에 밤잠을 설친다.

그리고 첫 홀부터 티샷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훅이 나거나 공이 삐뚤게 나간다. 혹 상대방의 티샷 비거리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가면 18홀 내내 지기 싫은 마음에 비거리는 더욱 줄어든다. 욕심 안내고 차분히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샷도 욕심 때문에 순간 바보가 된 것처럼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평소라면 눈감고 해도 되는 50㎝ 쇼트 퍼팅을 놓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꼭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마음 때문에 비롯된 실수다.

이번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리치 빔의 경우는 이런 승부욕의 일면을 보여주는 예다. 미국 PGA에서도 빔은 전혀 주목 받지 못하는 무명 선수다. 빔은 대회 마지막 날 11번홀(파5)에서 3번 우드로 그린을 직접 공략해 이글을 낚아 타이거 우즈에 한 타차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빔은 ‘우즈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영광’이라는 부담 없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빔이 정말 우승에 집착했다면 이 홀에서 안정적으로 3온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빔은 ‘멋진 승부나 하자’는 가벼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평소와 마찬가지로 공격적 플레이를 택했고, 결국 이것이 대스타 우즈를 꺾는 기적을 일궈냈다.

반면 우즈는 이 대회에서 미PGA 사상 첫 ‘아메리칸 슬램’ 달성을 의심했기 때문에 결국 한 타차 패배의 눈물을 흘렸다. 비거리나 샷의 정교도에서 우즈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빔이 우즈의 기록을 저지한 것이다. 골프 경기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골프에 있어서 ‘승부욕’은 다른 운동과 달리 내 자신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진가를 발휘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가끔 아마추어들은 게임이 안 풀리는데도 “이번 더블 판이야, 더블!”을 외치면서 막무가내식으로 내기를 한다. 이런 플레이는 골프에 있어서는 ‘억지’ 와 ‘응석’이다.

골프는 가끔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드라이버 대신 아이언 티샷을 부담 없이 할 줄 알아야 하고, 버디 찬스를 파로 마무리하더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성숙한 골퍼가 될 수가 있다. 무조건 잘하려는 것에만 집착하면 골프는 재미도 멋도 인간미도 없어 보인다. 이런 플레이어는 동반자들도 싫어한다.

꼭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내면 속에 꽁꽁 묶어 두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써먹어야 한다. 참고 기다리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그러면 이길 수 있다. 골퍼들이여, 엄마가 아기를 재우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골프 공은 아기처럼 다뤄야 한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9/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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