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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이정선(下)

기타 하나로 그리는 여백의 美

1973년 2학기에 복학을 한 이정선은 평론가 최경식, 김진성 PD가 주관한 포크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보수를 받지 않고 거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학비를 벌어야 하는 이정선을 위해 음반발표를 주선했다.

한강 얼음 위에서 재킷 사진을 찍고 음악선배 오세은 등의 도움을 받아 첫 독집음반 ‘이정선-이리저리,서라벌SRB791,1974년’ 녹음작업을 마쳤다.

이 음반은 화려한 화성의 포크 록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휴학시절에 작곡한 11곡의 수록곡들은 ‘내용이 삐딱하고 냉소적‘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와 ‘모두다 함께’를 제외한 9곡이 심의불가통고를 받았다. 다급해진 서라벌레코드는 심의위원들을 설득해 어렵게 음반을 발매, 5,000장 정도 팔려나갔다.

몇 개월 후 2면 첫 수록곡 ‘거리’의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 거리를 덮었네“라는 가사내용이 문제가 되어 음반의 판매와 방송이 금지됐다. 생매장이나 다름 없었다.

이정선의 ‘마이너스집’으로 불리는 이 음반은 가요 마니아들이 탐내는 희귀 음반이다.

그는 지구레코드와 거금 60만원의 전속계약을 맺을 만큼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계약금으로 학비를 내고 미국에서 클래식음악을 하는 김의철의 형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부탁했다. 하지만 클래식기타 를 받게 되면서 클래식한 분위기로 음악이 변화했다.

‘섬소년’을 타이틀곡으로 발표한 두 번째 음반(0집으로 불린다) ‘이정선-지구, JLS120988, 1974년’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모습을 소년과 인어의 이야기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금지의 멍에가 지워지자 비판적 정서를 담은 투쟁적인 음악활동을 펼치기보다 자연과 동심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완성도 높은 음악적 양식에 더욱 몰두했다. 이정선은 “미술을 한 덕에 표현하고 싶은 꿈과 사회의 괴리 등을 짧고 간단한 가사로 함축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쓸쓸한 바닷가의 모습을 시각적인 효과음과 감각적인 기타연주로 형상화한 음악적 표현은 신선했다. 그러나 공륜은 판매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았지만 수록곡 ‘거리’를 또다시 금지시키고 미대 후배 손기영이 디자인한 재킷의 장발사진을 문제 삼았다. 결국 머리를 짧게 자른 재킷 사진으로 교체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75년 공식 1집을 다시 발표했다.

데뷔음반을 3번씩이나 발표하는 곤혹을 치른 이정선은 좌절보다는 오히려 “인생 경험에 도움이 되었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1975년 이정선은 김의철의 뒤를 이어 명동의 카톨릭 여학생회관에서 ‘해바라기’ 노래공연을 이끌면서 솔로활동과 병행해 한영애, 이광조, 김영미, 이주호 등과 남녀 포크그룹 해바라기 활동을 하고 1979년엔 이광조, 엄인호와 함께 트리오 ‘풍선’을 결성하면서 3집(77년)부터는 블루스적인 음악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3년부터는 한영애, 이광조, 엄인호, 김현식등과 함께 ‘신촌 블루스’라는 정기적인 연주모임을 시작하고 1985년 7집 ‘30대’를 기점으로 완전히 블루스를 중심에 둔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했다.

노래의 소재도 자연에서 사랑의 기쁨과 삶의 고통으로 전환했다. 이정선은 “체질적으로 정리가 된 음악은 싫다. 5집에 처음으로 전기기타가 나오는데 6집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기기타로 음악이 바뀌었다. 나는 악기에 따라 음악이 바뀌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1984년부터 세광 출판사에서 기타교본을 출판하면서 1990년에는 출판사를 설립해 연주악보를 50여권 출판하며 대중음악 발전에 일조했다.

이정선은 “작년부터 내 음악을 정리를 해보니 꽤 오래 했는데 똑같은 것 같다. 아직도 음악이 복잡하다. 더 쉬워야 한다. 블루스는 여백이다.

요즘 젊은 층의 음악은 너무 채워서 여백이 없다. 하지만 심각했던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음악을 즐긴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라는 루이 암스트롱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은 학생들의 새로운 감각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정선의 차별성은 회화적 감각이 탁월했던 노래들과 가수의 사진을 크게 싣는 획일적 음반들과는 달리 하나의 미술 작품 같은 앨범재킷에 있다.

그는 자기 음반의 음악적 내용과 지향을 음반 재킷을 통해 표현하는 음악의 미술화라는 또 다른 지평을 일궈냈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요즘은 동서양 음악의 교차점이라 생각하는 네팔음악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내 진짜 음악 숙제는 우리 국악”이라며 “기타 하나로 표현한 가장 쉽고 단순한 소리가 자신이 꿈꾸는 음악”이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소리여행의 종착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쉽고 단순한 가락의 순백색의 빛깔이 아닐까!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2/09/0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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