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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무엇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나

[출판] 무엇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나

김진선 예비역 대장 월남전 참전수기 발간, '전쟁의 원리'에 대한 고백서

정국이 병풍(兵風)시비로 얼룩지고 있는 요즘 세태를 바라보는 베트남 전 참전 4성 장군출신 노병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 당시만 해도 사회지도층이나 유력인사 자재들의 개인 병적기록표에는 항상 ‘특(特)’이라는 표시가 따라다녔죠. ‘특’자가 붙은 이들은 영락없이 전방으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사회 지도층 자제이기 때문에 ‘솔선 수범’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병역의무를 강조했고 사회구조적으로 ‘특혜’를 용납하지 않았던 거죠. 그러나 문민정부 당시 이 같은 관행이 사라지면서 병역비리 문제가 사회전반에 만연해졌습니다. 물론 방식 자체에 장단점은 있겠지만 사회지도층 일수록 자기자식에 대해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겁니다.”


병풍시비로 군인들 사기 저하 우려

최근 베트남어로 ‘전쟁의 기억’이라는 월남전 참전고백수기를 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돌아온 김진선(63)예비역 육군대장은 8월 늦장마 마냥 대선을 앞두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병풍전야에 군인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감을 표명했다.

육사 19기로 1969년 맹호부대 맹호사단 1연대 11중대 야전군 중대장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 인헌ㆍ화랑무공 훈장을 받은 김 장군은 요즘도 선후배 사이에서 ‘진짜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북관계를 고려, 국방백서에서조차 ‘주적’을 ‘주적’이라고 표현도 못하는 요즘 풍토는 군인들에게 한 마디로 ‘적개심을 가지지 말고 싸우라’는 어눌한 어감으로 다가와 군(軍) 불만의 불씨가 되고 있다.

베트남 전 당시 최전방인 북부 빈딩성 푸캇에 주둔하던 김 장군은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부하들에게 ‘산적 두목’으로 불리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색과 매복, 교전에서 항상 앞장섰다.

‘월남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 없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목숨을 건 제로섬 게임. 그 속에서 오로지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그는 “동물사냥보다 더한 쾌감으로 ‘인간사냥’을 벌였고, 별 생각 없이 적군의 시체 위에서 사진을 찍고 시레이션을 까먹는” 광인으로 변해갔다.

그의 광기는 베트콩이 그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 정도였다. 그런 그가 월남전 참전 고백수기 ‘산자의 전쟁, 죽은 자의 전쟁’을 발간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0년 8월. 과연 어떤 동기가 그를 이같이 바꿔놓은 것인가.


베트남 민족주의에 빠진 ‘진짜군인’

“고백록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종전 후 월남 땅을 다시 밟았을 때의 충격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군복을 벗고 예편한 이듬해인 1994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관계’를 토론하는 하노이 학술회의에 참가했다. 당시 그곳 전쟁기념관 등을 둘러보며 미국,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 몽골 등 외세 침략을 막아낸 끈기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는 결국 베트남 민족주의에 푹 빠져들었고 월남과 월맹 어느쪽에 정통성이 있었느냐 하는 ‘원죄’의 뿌리에 까지 접근했다. 그 뒤 참전 당시의 일기와 편지, 베트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한 끝에 고백수기를 완성했다.

“전투는 군인이 하는 것이지만, 전쟁은 지도자가 하는 것이라는 걸 역사의 진리 속에서 통감할 수 있었다”고 집필후기 소감을 밝힌 김 장군은 ‘월남전의 원죄’에 대해 담담하게 토로했다. “우리가 ‘자유 월남’을 위해 싸운다고 했지만 당시 월남 지도자들은 부패했고 독재를 저질렀다.

오히려 월맹이 민중의 입장을 폭 넓게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그의 책엔 ‘죽더라도 동상을 세우지 말고 화장한 뼛가루를 국토에 골고루 뿌려달라’는 호치민의 유언도 곁들여졌다.

‘전쟁의 원죄’에 대한 성찰과 고백은 존재 의미를 부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군인에게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적대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김 장군은 “군인정신은 순수한 정신에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에 영합해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정치군인의 길이라는 것이다.

“월남전이 그다지 정의롭지 못했다는 역사적 평가 때문이겠지만 군인들이야 나라의 부름에 따랐을 뿐입니다. 참전 용사들의 입장역시 진지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장군의 저서 ‘산자ㆍ죽은 자의 전쟁’은 초대 주한 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응웬푸빙 현 외무차관의 번역에 의해 7월말 ‘전쟁의 기억’이란 제목으로 베트남 현지에서 출간됐다.

김 장군은 하노이 우호친선협회 강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베트남 전은 보는 자들의 위치와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한 만큼 이 책이 베트남 인들에게도 전쟁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12ㆍ12사태 진상에 대한 집필

요즘 김 장군은 신군부 세력의 등장으로 격동의 분수령이 됐던 12·12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집필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시가지 전투전문가로 당시 수경사 상황 실장이던 그는 긴박하게 돌아가던 당일 9시간30분 동안의 내막과 일촉즉발의 상황을 여과 없이 객관적으로 세상에 알리겠다는 일념이다.

그는 “군사 수뇌부 양측이 직접 해결할 문제를 군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싸우게 하려했던 정치적 의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한 번의 판단착오로 5공의 등장은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가 뒤 바뀔 수도 있었던 당시 긴박한 상황은 꿈에서 까지도 몸서리쳐지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12ㆍ12 사태이후 계엄령 상황에서 이뤄진 ‘YWCA 위장결혼사건’ 군사재판 당시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재판관을 맡았던 김 장군은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석헌 선생의 형 집행정지를 재판장이던 노태우 수도지구 계엄사령관에게 건의, 이들이 석방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장군은 당시 “윤 전 대통령이나 함 선생님은 ‘박 통’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피해의식과 저항에 대한 확신이 강했다”며 “노 사령관 등 군 수뇌부들 역시 새로운 역사관점으로 이들을 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당시 맺은 친분 때문에 김 장군은 지금까지도 명절이면 연희동 자택을 찾아 인사를 나누는 막역한 사이다.

그러나 군인 출신의 정치인이 쏟아지던 5ㆍ6공 시절 단 한 순간도 군인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그의 철두철미한 군인정신은 그가 선후배간에 ‘진짜 군인’으로 불리는 진정한 이유다. 수방사령관과 육본 참모차장 등을 역임한 그는 1993년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2군사령관으로 승진했지만 70일 만에 대장으로 예편 됐다.

그는 정부가 바뀐 후 98년에는 국가비상기획위원장을 지냈고 2000년에는 민주당 충북 진천ㆍ괴산ㆍ음성 지구당 위원장을 지냈다.

‘진짜 군인’ 김 장군은 마지막으로 연말 대선에서 꼭 한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변화는 남북관계의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 통일ㆍ안보관에 보다 확고한 철학이 있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9/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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