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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멀티테라피 전문가, 장성철

[인간탐구] 멀티테라피 전문가, 장성철


"그림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불행은 어디서 오는걸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혹시 그라면 알고 있을까?

“가장 쉬운 건, 생각을 멈추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정신을 차리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의 본질이 뭔지 깨닫게 됩니다. 어떤 마음의 고통이든, 문제를 만든 것도 자신이고, 그 답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요.”

왜 생각이 해롭다는 것일까?

“만났던 환자들 중에 우울증이 심한 한 주부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족들과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살면서 우울증이 생긴 분인데, 남편도 자식도 다들 자기를 무시한다는 소외감에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거지요. 처음에는 전혀 말이 없던 분이 조금 친해지고 나자 말씀이 아주 많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이미 물어본 말을 자꾸만 또 묻고, 묻고, 사사건건 의심도 많은데다 아닌 것도 맞다고 우기거나 시비를 거는 등 대화하기가 참 피곤한 분이었어요. 듣는 사람이 좀 짜증이 날 정도로요. 가족들과의 대화가 어떻게 해서 끊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자기 모습은 놓친 채 이 분은 무조건 남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한 채 혼자서 계속 그 생각으로 분노와 원망을 키우게 된 거예요. 감정이 끼어 들게 되면 그 어떤 일이든 실체보다 훨씬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돼 있지요. 당장의 증세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기 자신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인생을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이 일의 진짜 목적입니다.”


그림으로 마음의 병을 고친다

장성철(42ㆍ 건국대 디자인대학원 멀티테라피학과) 교수는 정신과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의사만큼이나 마음이 병든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치유해주었다. 그의 도구는 그림이다.

미술과 음악, 운동 등을 통해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는 멀티테라피를 개발, 그중에서도 동양학적 원리를 결합해 만든 독특한 그림치료법으로 자폐증과 우울증, 직장인과 수험생의 스트레스 등을 성공적으로 개선시켰다.

그의 그림치료는 기존의 서양식 그림치료와는 달리 동양의 음양오행사상, 한의학, 명상 등이 접목돼 있다. 서양식 그림치료에서는 통계학적 분석원리에 따라 동일한 항목에 대해 동일한 분석을 내놓지만, 이 치료법에서는 그림의 같은 색상, 같은 구도라도 상담자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담자의 그림에서 검은 색이 많이 쓰인 경우 서양식 분석으로는 어느 개인을 막론하고 ‘우울, 침체’의 상태로 일률 판독되지만, 이 치료법에서는 상담자의 전체적인 그림 상태에 따라 ‘단지 검은 색을 좋아하는 취향’정도로 판독될 수도 있다. 같은 증상이라도 개인의 체질에 따라 처방이 다양하게 대응되는 한의학과 비슷한 성격이다.

인간이 가진 환경과 성격의 다양성을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다. 현재 멀티테라피는 중앙대와 건국대 대학원에서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그림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장 교수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말은 사람을 포장할 수 있어도, 무의식이 반영되는 그림은 붓을 쥔 사람의 마음 그대로를 가식없이 옮겨놓는다. 그림은 마음의 거울이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을 통해 치료자는 상담자의 마음을 읽고 아픈 곳을 찾아내 마음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음을 읽는 방법은 드로잉이나 색채, 구도에 대한 판독 등 한 장의 그림 안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판독결과에 따라 상담자에게 부족한 기운을 그림의 모양이나 색상의 고유 성질을 활용한 방법으로 자연스레 유도하면 신체의 기혈 순환은 물론, 마음의 순환이 고루 좋아진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므로, 진단이든 치료든 분리될 수 없다.


자신과의 대면 이끌어 내는 그림치료

가장 간단한 예 몇 가지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선(線) 치료법의 경우, 편안한 무의식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상상하며 머리로부터 신체 각 부분을 하나씩 상상하며 연필로 원을 그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원이 뭉쳐지거나 찌그러진 그림이 되고, 어떤 부분은 원만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원이 뭉쳐지거나 찌그러져 그려진 곳은 실제로 신체적 이상이 있는 곳들이다. 반복적인 가로선 긋기는 마음의 안정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신체적으로는 위장기능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세로선 긋기는 신장과 방광기능을 높이고, 호흡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선긋기는 심장의 화기를 내려주며 마음을 안정시킨다. 물결무늬의 연속곡선 긋기는 신장기능을 강화시키는 한편 가슴과 호흡을 시원하게 틔어주면서 기분도 좋게 한다. 누운 지그재그 모양의 선 그리기는 짜증 난 마음을 누그러지게 해주며, 대장기능도 원활하게 한다. 짜증이 날 때는 요철모양 그리기가 도움이 된다. 신장기능 강화에도 좋다.

간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크기와 형태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속해 원을 그리는 방법이 좋다. 색채와 구도 쪽으로 들어가면 원리설명이 좀 더 복잡해진다. 이때부터는 전문가의 판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림치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 중 열에 서너명은 울음을 터뜨리기 예사.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이들의 변화다.

장교수는 기독교도이면서 명상가에 더 가까운, 다소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명상을 시작했다. ‘기도를 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때문이었다.

대신, 친구가 권한 명상과 불교, 선(禪) 관련 서적 등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후 사서삼경 등 한학서나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과 공부도 스스로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벽에 점 하나 찍어놓고 응시하는 ‘일점응시법’으로부터 시작해, 몇십년째 명상수련은 그의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해병대 복무중 어느날 진기한 체험을 했다. 학창시절부터 교회에서 음악활동을 했던 그는 장래에 연주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군대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어느 순간, 갑자기 두 귀가 뚫리는 것 같았다. 정적 속에서 느닷없이 어떤 감각이 한 귀에서 다른 한 귀로 관통하면서 절대음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마도 명상이 준 결과인 듯 했다. 그후 작곡을 하게 되었다.

그림치료보다 먼저 생각했던 것이 음악치료였다. 10년전쯤 구체적인 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한 농장에 머물면서 주로 식물을 표본 대상으로 정해, 같은 재배조건에서 음악을 들려주며 키우는 쪽과 음악 없이 키우는 쪽 집단을 관찰비교하는 것이었다. 실험은 몇 달간에 걸쳐, 꾸준하고도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결과는 놀라왔다.

“확실히 달랐어요. 예를 들어, 오이를 기를 때 처음 씨앗을 심을 때부터 열매가 열릴 때까지 계속 관찰했는데 음악을 들려준 쪽 오이는 맛도 훨씬 좋았고, 오이가 열리는 개수도 훨씬 많았습니다. 그 결과를 보자 믿음이 더 확고해졌어요.

그후 음악치료법을 해야겠다고 준비하던 중에 김도향씨가 명상음악 치료법을 내놓으시는 걸 보고 속으로 참 낙담했었어요. 물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음악치료법과는 성격이 좀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선수를 빼앗겼다 싶어서요.”


상담자와의 쌍방향 소통

그림치료에 눈을 돌린 것은 상담자와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특징 때문이었다. 음악은 치료자에게서 상담자에게 건너가는 것이지만, 그림은 상담자에게서 치료자로 건너오는 것이므로 문제에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1996년부터 아트마인드라는 연구소를 만들어 그림치료를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동양적 그림치료법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2000년부터다.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양방의 의사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환영했다.

연세대 가정의학과 윤방부 교수는 자료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 시간을 맞기까지 그 역시 기나긴 스트레스의 강을 건넜다.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기전까지 설움도 참 많이 겪었습니다. 바깥은 물론이고 당장 저희 집에서조차 '이상한 놈'으로 찍혀서 이해를 받지 못했거든요. 명상이란 것도 지금이야 일반화돼 있고 이에 대한 인식도 높지만, 옛날에는 불편한 시선을 많이 받았어요.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고, 서러웠던 일을 다 얘기 못하죠.”

지금까지 약 3,000명의 환자를 만났고, 대학 등을 통해 멀티테라피 전문가도 200명 넘게 양성했다. 마음을 다루는 일이라 멀티테라피 전문가를 교육하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환자의 고통을 돌보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할 것이 그림치료를 맡은 이의 마음상태다. 스스로 건강하지 않으면, 이런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역전이'라는게 있어요. 이건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이야기되는 문제인데, 잘못하면 치료자가 환자를 고쳐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환자의 정신 질환이 의사나 치료자에게 옮겨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늘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경우 무방비로 무너지는거지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부터 맑고 건강하게 지키며 중심을 잡은 뒤 환자를 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원과 건국대 디자인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관련 분야 전문인들로 구성된 멀티테라피 학회도 3년째 이끌고 있다. 그의 멀티테라피가 세상의 환영을 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굴레없는 삶 사는 자유인

그는 일상 속에서도 가능한 한 굴레없이 살아가려고 애쓴다. 수업 때에도 학생들이 정 산만하다 싶은 날은 ‘기본필수’ 5분 정도만 집중 열강한 뒤, 차라리 학생들을 놀게 해준다. 이미 마음이 달아난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봐야 피차 결실없는 소모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열어둔 조그만 명상센터 역시 주인도 없고, 간판도 없다. 원하는 누구든 오고 싶을 때 왔다가 가고 싶을 때 가면 그만이다. 틀이 견고하다고 인생이 견고하랴. 각박한 세상살이에 날개를 다친 이들은 물론 자신 앞의 생에 대해서도 담담한 시선을 갖고 있다.

“남들 같은 인생의 계획이란 것도 없습니다. 이 그림치료에 대해서도 장래에 이것을 어떤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식의 계획 한번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 제 앞에 놓인 길을 자연스레 따라갈 뿐입니다.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순간을 그 자체로 즐길 줄 알면 누구든 병이 없을 겁니다. 기쁨도 슬픔도 그 순간을 즐기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에서 흘려보낼 줄만 알면은요. 싸움과 고통이라는 것도 우리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한 부분입니다.”

입력시간 2002/09/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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