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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역사는 '용'들만의 것이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역사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가들은 과거의 수많은 사건과 기록들 중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별해서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역사적 사건들을 관통하고 있는 변화의 법칙성(이념)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역사를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은 참으로 경제적이다.

하지만 그 흐름 안에 포괄될 수 없는 사건들은 역사 바깥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단수(單數)화된 역사 내부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배제의 메커니즘인 셈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정치적인 거대 사건들이다. 왕조의 교체, 혁명과 반(反)혁명, 제도의 변화, 조약의 체결, 전쟁 등등. 정치적 거대 사건에 주목하게 되면 그 사회를 이끌어갔던 지배계층의 변동과 지배적인 사상의 교체 등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변화를 역사 서술의 기준으로 승인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ㆍ정치적 승자ㆍ남성 중심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양상이 세계사의 차원으로 적용되면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백인종의 역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뒤집어 보게 되면, 전통적인 역사 서술의 무의식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 패배자들, 여성과 피지배계층, 유색인종과 비(非)서구사회, 문화적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들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대중문화의 영역이 다름 아닌 텔레비전의 사극 드라마이다.

사극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정치적인 승자이다. 정사(正史)에 근거한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등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한 승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여인천하’의 정난정과 문정왕후 역시 정치적으로 승리한 예외적인 여성들이다.

드라마는 시종일관 주인공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끝까지 정당화되지 않는 잘못이 있다면 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권력무상이나 인생무상을 통해서 희석한다. 역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관념은 영웅적인 주인공에 대한 신화화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영웅적인 주인공의 추악한 승리마저도 정당화되고, 의미 있는 패배자들은 망각의 영역으로 떠밀려 난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역사적인 관점에 전환이 찾아온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다. 영웅적인 인물이 시대를 이끌어간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개인들과 보이지 않는 삶의 형식들이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역사는 영웅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해석이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결과, 문화 영역과 일상 생활(생활사)이 역사의 중요한 주제로 부각됐다.

임상 의학의 탄생을 통해서 자본주의사회가 인간의 육체를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보여준 미셸 푸코(M. Foucault), 사회 예절(manners)의 변화를 통해서 문명화 과정에 숨어있는 문화적 전제들을 탐색한 엘리아스(N. Elias), 죽음에 대한 서구인들의 태도가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아리에스 등은 역사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킨 고전적인 대가들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작은 사건을 통해서 역사의 거시구조를 읽어내고자 하는 미시사(微示史) 연구가 시작되었고,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문화적 텍스트들을 통해서 역사적 사건 아래에 놓여진 무의식을 읽어내고자 하는 신(新)문화사가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새로운 역사 서술이 시도되고 있다. 한 가문의 역사를 통해서 18, 19세기의 사회를 조망한 ‘맛질의 농민들’과 일제시대의 지식인 이찬갑의 신문 스크랩을 통해서 시대상과 내면풍경을 재구성해 낸 ‘그 나라의 역사와 말’ 등이 대표적인 업적이다. 더 많은 성과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달라져야 한다. 침묵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와 실패에 내재된 의미를 존중하는 태도가 배양되어야 한다.

또한 더럽게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정치적인 통념들을 분쇄하는 방법 역시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을 회복함으로써 일정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깨끗하게 패배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실패를 보여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더러운 승리가 추악한 과정들을 정당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득세한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우리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2002/09/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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