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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소설가 '이외수'

"내 방은 소우주, 세상은 감옥"

“30년 백수인데 오늘이 몇 일인지 굳이 알 필요가 없어요.”

소설가 이외수(57)가 하루 24시간을 운용하는 방식은 과연 독특하다. 오후 2~3시에 일어나 밤 9~11시에 눈을 붙인 뒤 새벽 6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작업한다. 머리채는 허리까지 내려와 있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완전히 가셔 있다. 유달리 까만 눈동자에서는 엷은 미소와 평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최소한의 육질만 남겨진 것 같은 그의 육체를 지탱하는 것은 도사 같은 풍모이다.

부인 전영자(51)는 10인분 정도의 상을 차리는 일에는 이력이 나 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남편을 둔 덕이다.

강원도 산채가 풍성히 차려져 있는 상은 먼 길에서 찾아 와 모여드는 전국 각처의 ‘이외수 마니아’들에 대한 예의다. 신작 ‘괴물’을 완성한 요즘은 하루에 족히 80여명의 독자들이 모여 들고 있다.


자연인들로 늘 북적대는 집

중앙과 지역 언론사 취재팀이 수시로 드나들고 그의 세계에 매료된 주부 독자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찾아 오기도 한다. 최소리, ‘황신혜 밴드’, ‘철가방 프로젝트’, ‘소리여행’ 등 기존의 음악 장르로는 포착되지 않는 독특한 음악인의 즉흥 연주도 한 달에 두 번씩 즐길 수 있는 덕이기도 하다.

공기 맑은 춘천시 외곽 교동에 자리한 이외수의 집은 학생, 스님, 약초 캐는 사람, 환경운동가 등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2001년 6월 이후로는 손님 접대가 수월해졌다. 집 바로 옆에 격외선당(格外禪堂)이란 별채를 지어 둔 덕택이다. 새우잠 자는 일도, 새벽녘에 사우나 가서 잠을 청하는 일도 그들은 기꺼이 감수한다. 응접실은 물론 안방까지도 이 집 부부는 객을 위해 선뜻 제공한다.

일체의 격식을 벗어 던지고 신선처럼 놀아 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우아한 향기가 가득한 25평짜리 정갈한 방이다. 진보적 음악 애호가들에게 이 이름은 낯설지 않다. 헤비 메탈에서 출발해 국악적 경지를 넘보는 최소리가 8월 발표한 신보의 제목으로 쓴 덕택이다.

이외수가 지금껏 발표한 책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 1층은 찻집이다. 녹차 유자차 무화과차 청패차 커피 등의 마실거리가 가득하다. 벽에는 ‘찻값은 자유롭게’라는 지극히 반자본주의적 팻말이 붙어져 있다.

집은 그 집 주인의 인간됨을 설명한다. 학자의 집에는 학자다움의 풍경이, 졸부의 집에는 부화한 풍경들이 있다.

벽에 걸린 그림들에서 배어 나오는 묵향이 은은하다. 날개를 펼치고 나는 독수리 그림, 노승의 그림 등 이외수가 그린 동자승이나 잉어 그림 등의 독특한 갈필에서는 문인화의 수묵성과 현대 디자인의 절제미가 합쳐진 듯한 특유의 절제미가 풍겨 나와 시선을 잡아 끈다. 정통의 틀을 벗어 나 도달한 선(禪)적인 경지에서는 고졸미가 풍긴다.

춘천의 화가 박경식이 닥털을 묶어 만든 붓으로 그려 호평을 받은 선화(仙畵)를 계승 발전시킨 그림이다. 매끄럽지 못 한 닭털붓은 그리는 이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삐쭉삐쭉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듯 의도하지 못 한 선들까지 하나의 전체 속으로 융화돼 이뤄낸 형상은 보는 이에게 그지 없는 편안함을 준다. 이외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던 그는 전통적 서양화 화구들과는 완전 결별했다. 닭털붓 아니면 그림 그리기 소프트웨어인 ‘페인터’가 그의 이젤이고 붓이다.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고급 장난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홈 페이지에는 그가 그린 컴퓨터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또 황신혜 밴드한테 컴퓨터 작곡도 배워 컴퓨터 프로그램 ‘니즌’으로 작곡도 한다. 그는 “룸 쌀롱 버전”이라고 애써 폄하했다. 요즘은 하루 100여통에 달하는 독자들의 e메일이 이 고급 장난감에 몰려 와 답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즘도 죽기를 각오하고 마신다

그에게는 두 소중한 마음의 친구가 있다. 시인 천상병과 걸레 스님 중광이 이외수를 만나면 아무 말도 않고 웃기만 했다.

“세살인 천선생, 다섯살인 중광 스님, 세속의 때가 조금은 묻은 나는 만나자 마자 단번에 서로를 읽어 낸 거죠.” 두 사람이 차례차례 이승을 뜬 후, 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2, 3일을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는 요즘도 술을 입에 대면 잠도 안 자고 사흘 연속 마신다. “몸이 약한 내가 아직 버티는 걸 보면 골골 80년 팔자인가봐요.”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혼”이라고 방점을 찍듯 말했다.

두 도사의 자리를 메꾼 친구들이 습작 시대부터 알아 온 소설가 박범신과 김성동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마신다”고 호언해 놓고 마셨다 하면 소주 40~50병을 마셔 댄 이들은 빈 술병에 싸 놓은 자신들의 오줌을 술로 착각해 입속에 털어 넣던 사람들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김성동이 위 속의 것들을 모두 게워 내다 십이지장충까지 토해 놓고는 그 벌레를 다시 소주에 넣어 마신 사건도 이외수에게는 범사였다.

요즘이라고 달라 진 건 없다. 2001년 ‘티벳 문하 전시회’에서 만난 세 사람은 또 두주불사로 마시다 술집의 다른 취객들과 말다툼이 나 그 나이에 일전을 불사하기도 했다. 요즘도 세 사람이 만나면 이외수가 그림을 그리고, 박범신은 선시를 짓고, 김성동은 법문을 읊는다.

그런 자신들을 이외수는 어떻게 보나? 그는 “물질 과잉의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산다”며 “그러나 나를 비롯한 70년대 작가들은 궁핍의 시대를 거치면서 강한 정신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외수의 작품들에는 그래서 게으르게 만든 태작이 없다. 그의 문장들에서는 치밀한 리포트처럼 단단한 육질이 씹히면서 풍성한 즙을 내 놓는다. 스스로 대표작이라고 꼽는 ‘벽오금학도(碧梧金鶴圖)’와 신작 ‘괴물’이 그렇다.

‘청학집(靑鶴集)’을 근거로 우리 고유의 도를 찾아 간 소설 ‘벽오금학도’는 신비적이고 난해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현존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의 심오하고 난해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그 소설 쓰기의 전제였다”며 “그를 위해 9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고 돌이켰다. ‘칼’을 쓰고 난 뒤 착수한 작업이었다.

그 엄청난 공부를 위해서 그는 고행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교도소 철문 제작자를 수소문 해 방문을 새로 달았다. 안에서는 열 수 없고 밖에서만 열리는 문이었다. 감옥 같은 방에서 지옥 생활을 했지만 그의 정신은 현실과 선계(仙界)를 마음대로 오갔다. 독자들은 알아 보았다. 지금까지 70만부가 팔린 그 책은 여전히 독후감이 그의 사이트에 올라 오고 있다.


소설은 의식의 확장, 비현실의 체험

생과 사의 세계를 누비는 그의 소설이 흔히 맞닥뜨리는 비판은 ‘리얼리티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반론은 확고하다. 그는 “소설은 의식의 확장”이라며 “현실속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소설로 표현하는 것 역시 소설의 임무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러나 데뷔하고도 3년 동안이나 원고 청탁이 없었던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문학계에 발 디디면서부터 문단 구조의 폐해를 한몸에 받았다. 문단에 만연한 학연과 지연 이라는 끄나풀에 완전히 소외돼 있던 그는 여전히 자신을 ‘독립군’이라 한다. 그는 “나는 춘천에서만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써 왔다”며 “투철한 작가 정신과 예술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에는 순수 문학의 사망설까지 나돌고 있다”며 “지금은 갖가지 매체가 다음 세대의 혼을 뺏고 있는 시대”라며 학연과 지연이라는 구태의연한 싸움을 재연하고 있는 문단을 겨냥했다. 그는 “나는 독자로부터 주목 받고 사랑 받는 새로운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지 꾸준히 실험해 오고 있다”며 “작가는 투철한 작가 정신과 예술정신으로 살아 남아야 함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 한 구석에 있는 그의 작은 집필실은 그러므로 거대한 실험실이다. 언제나 몸을 뉘일 수 있는 이부자리에 앉은뱅이 책상을 펴 컴퓨터를 얹어 놓은 그의 방은 작은 소우주다. 사람들 사이에는 그가 이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공중부상의 비법을 닦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괴물’이라는 큰 짐을 벗은 그는 요즘 여기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거나 하루 100여통 몰려드는 독자 e메일에 답장을 한다.

현재 114만여통을 헤아리는 e메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실연이나 장래 문제 등 신상에 관한 토론이거나 직접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다. 직접 대면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내가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조정한다.

훌륭한 동반자이자 비서이기도 한 부인은 미스 강원 출신이다. 육군을 제대한 이외수가 강원일보 삽화 기자 겸 다방 DJ로 있을 때 알게 된 부인이 먼저 접근했다.

그는 “영화 구경 시켜 달라, 밥 사달라며 내 최대의 약점인 가난을 슬슬 건드리더라”며 “결국 가락국수 100원짜리를 시켜 주는 내 솔직한 모습에 반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청년의 미인 공략법이었다. 결혼하고 한동안은 엄동에도 연탄 두 장 이상은 땔 수 없었던 처지에 부인은 처가에 가서 쌀을 꿔 와야 했다. 고생 탓에 원래의 미모는 눅어졌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선한 아내의 자태가 뚜렷하다.

그는 춘천 교대에 유학한 1965년부터 살고 있는 깨끗한 도시 춘천과 순박한 춘천 시민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는 “춘천서는 3년 동안 목욕 하지 않아도 살지만 서울은 사흘만 안 해도 못 산다”며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원래 약한 체질인 데다 결핵을 오락가락 네 번 앓다 보니 춘천이 음으로 양으로 제공하는 청정 환경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한 세상 떠 돌았지요.” 8월 29일 춘천 강변에서 펼쳐진 ‘춘천 막국수 축제’에서 이외수는 무대에 나가 걸쭉한 노래 실력까지 선보였다.

그가 가사를 쓰고 지역 밴드 ‘철가방 프로젝트’가 곡을 붙여 2001년 11월 발표해 춘천 시민의 애창곡이 된 ‘나이만 먹었습니다’의 한 구절이다. 가요계에서 모습을 감춘 이남이가 쓰고 부른 ‘인생’ 등 서울서는 듣기 힘든 뉴 에이지 포크 노래들이 그득하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9/0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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