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박삼구號 '야심찬 이륙'

정권 말 전환기에 대비한 변신, 아시아나 경영으로 CEO 능력 검증

"정부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대상 기업 선정기준이 내부 매출액이라면 당연히 내부자금 의존도가 가장 높은 금호그룹이나 포스코가 조사대상에 포함돼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7월30일 국회 정무위에서 정부의 조사대상 기업 선정에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배경이 숨겨져 있다는 의혹의 시선으로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을 향해 대뜸 쏘아붙였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공정거래위원회의 6대 그룹 80개 계열사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 재계는 또 한차례 치열한 신경전에 돌입했다.

야당은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증시에서 '조만간 넘어간다'는 루머가 지난해 말 끊이지 않앗던 금호그룹.

'DJ 정권이 호남 그룹이어서 구해줬다'는 소문들로 가득한 '불명예'가 지난 5년간 떨어지지 않았던 호남의 대표기업 금호그룹이 정권 말 새로운 전환기를 대비하고 있다. 그 전환기는 위기와 기회의 틈새에서 새로운 변신을 꿈꾸는 금호그룹의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준비된 경영인, 충분한 실전 경혐

1984년 고 박인천 창업주가 타계한 뒤 금호그룹은 형제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경영을 맡아왔다. 맏아들 박성용 명예회장에 이어 고 박정구 회장이 그 뒤를 이었고 그이 49제 직후인 9월2일 셋째 박삼구 전 부회장이 금호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 회장은 다섯 형제 중 가장 추진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 받아왔다. 금호 실업 대표이사 사장, (주)금호 대표이사 사장, 아시아나 항공 대표이사 사장 등을 두루 거친 박 회장은 직원들과 비공식석상에서는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활달한 성격에 친화력 높은 '차세대 최고경영자(CEO)로 꼽혀왔다.

차세대라는 점에 어울리게 아시아나 항공 국제 투자설명회에서는 직접 프리젠테이션에 나설 만큼 경영인으로서의 능력과 자질,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통해 CEO로서의 실전경영 검증을 받았다. 사업초기 대한항공에 치어 숨 쉴 공간마저 부족한 아시아나를 세계 중위권 항공사로 키운 건 박회장이었기에 가능했다는데는 재계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하늘의 공포'에서 벗어나 아시아나의 안전과 서비스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처벌 지양 보호제'라는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큰 몫을 했다. 실수를 감출 때 안전 사고가 발생한다고 여긴 박 회장은 실수를 자진 신고하는 직원하게는 벌 대신에 상을 주며 '일하는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또 원가 개념과 수리에 밝은 박회장은 아시아나 경영 당시 회계 과목을 직원 정규 과목으로 선정토록해 전 직원이 경영 지표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아시아나의 한 관계자는 "회장은 사소한 수치 하나까지 다 꿰고 있어 영업 보고서 내용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고 보고하면 영락없이 깨진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수치감각은 돋보인다.

고 박정구 회장이 투병 중이던 지난 지난 18개월간 회장 대행 체제로 금호를 이끌며 이미 충분한 실전경영수업을 쌓아온 박 회장으로선 새삼 '신임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낯설만큼 준비된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성장기반 마련에 주목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새벽부터 내린 8월30일 서울 도봉동 광륜사. 고 박정구 회장의 49제를 맞는 박삼구 회장의 얼굴엔 이미 가을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진 듯 차잡한 표정이 역력했다. 고인은 떠났지만, 바 회장은 회사를 이끌어 갈 무거움 마음의 짐이 순간 순간 떠오르기 때문인듯 했다.

1946년 금호의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이 광주택시를 설립한 이래 올해 현재 자산 규모는 10조2,000억원. 총 매출액 6조원에 이르는 재계 순위 9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내실보다는 성장에 주력하면서 외환위기를 겪자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고, 지난해 말 숨이 넘어갈 듯했던 금호그룹은 올들어 유동성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서울 양재동 공장부지를 비롯 불필요한 부동산과 인천공항외항사 터미널을 팔았고, 지난해 말 아시아나 항공이 미래에 발행할 채권을 담보로 담보부 채권(ABS) 을 발행해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로 다가왔다. 대부분 계열사가 적자를 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1·4분기에는 모든 계열사가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만성 적자로 금호그룹 위기를 부른 애물단지 아시아나항공이 월드컵 특수와 환차 손 덕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금호가 이 같은 흑자행진으로 유동성위기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금융권의 반응이다.

한 증시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 연결재무제표만 놓고 봐도 금호그룹은 부채가 10조4,000억원으로 부채 비율이 90%를 넘는 등 유동성에 문제가 컸다"며 "매출 6조5,700억원에 적자 규모만도 11억원 대인 지난해 그룹 성적표를 고려하면 과연 무너진 신뢰를 올해 중 회복할 수 있을 지가 문제다"고 지적했다.

위기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올 1·4분기 현재 부채규모는 여전히 8조원 대로 지난해보다 부채 비율을 많이 줄였다고 해도 1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355%대에 달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외환외기 이후 DJ정권을 기회로 줄곧 구조 조정에 매달려왔다. 그룹 자금줄인 금호타이어 지분과 아시아나 항공 자회사들을 해외에 매각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최근 칼라일 컨소시엄과 양해각서(MOU)를 맺은 금호타이어 매각은 현재 실사를 마친 상태로 올해 계약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금호 측의 관심대사다.

금호의 한 관계자는 "매각 대금은 12억~13억 달러(최소 1조4,400억~1조5,600억원) 정도로 양측의 의견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 작업만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있다면 금호그룹으로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확실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시아나공항 서비스도 이미 외자유치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이다.

금호그룹은 박삼구 회장 등 4형제가 주식 15%를 가진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금호산업에 출자하고,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고과 금호생명 등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항공·화학산업이 주력 업종이지만 모두 성장 산업이 아닌데다 경쟁력 역시 그다지 뛰어난 입장은 아니다. 박삼구 호의 출범은 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올해 중 금호의 대한 시장의 불신을 추스리고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느냐는 박 회장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과연 구조 조정을 얼마나 추진력 있게 이끌고 새로운 겨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지에 재계와 금융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입력시간 2002/09/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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