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이 한의학 산책] 추석과 과식

입추가 지난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 가을이 오려면 먼 듯이 느껴진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추석이 지나면 쌀쌀해질 것이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는 등 여러 가지 별명이 많지만 뭐니뭐니 해도 수확의 계절이고 추석이 들어있는 계절이므로 더욱 풍성하고 여유롭게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추석만 지나면 여기저기 아픈 우리 어머니, 아내, 딸들이 병원을 찾아서 몰려들겠는가? 이렇게 힘든 추석이지만, 역시 가족간의 만남과 의미 있는 차례가 있기에 없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나 보다.

원래 제사는 원시시대부터 천재지변, 질병, 맹수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근세에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변하였다. 우리 나라의 제사문화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 시기에는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의 제사의식을 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야 자신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의례로 발전하기 시작됐는데, 이는 왕가에서 먼저 행해졌다.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 피웠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고려말에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가에서 활발해지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가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다.

차례는 간소한 약식제사이다.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 날에 지내며 보통 아침이나 낮에 지낸다. 차례는 기제를 지내는 조상에게 지낸다. 고조부모까지 4대를 봉사하는 가정에서는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 등 여덟 분의 조상이 대상이 된다. 4대를 모시는 것은 이유가 있다.

4대에 자기 자신까지 합치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로 오행이 딱 갖춰지게 된다. 만일 3대만 모시게 되면 차례로 생(生)하는 흐름이 깨지게 된다. 차례는 명절날 아침에 각 가정에서 조상의 신주나 지방 또는 사진을 모시고 지낸다.

차례도 물론 기제를 지내는 장손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방이나 가문의 전통에 따라 한식이나 추석에는 산소에서 지내기도 한다.

제사하면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어렸을 때 전을 부치던 어머니 옆에서 야단을 맞으면서 살짝살짝 집어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수를 조리할 때에는 몸을 청결히 하고 기구를 정결한 것으로 쓰며 침이 튀거나 머리카락 등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

꽁치, 갈치, 삼치 등 치자가 끝에 들어가는 생선과 복숭아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잘게 칼질하거나 각을 뜨지 않고 가급적 통째로 조리한다. 메, 갱, 탕, 전, 적, 면, 편과 같이 뜨겁게 먹어야 할 음식은 식지 않도록 한다.

원칙상 제사상에 올릴 제수는 자손이 먼저 먹어서는 안 된다. 이래서 아마도 제사 음식을 미리 먹는 것이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단, 제사상에 올릴 만큼 따로 담아놓고 남는 것을 먹는 것은 괜찮다. 밤은 껍질을 벗기고, 기타의 과일은 담기 편하게 아래와 위를 도려낸다. 배, 사과와 같은 과일은 꼭지부위가 위로가게 담는다.

제사에 오른 음식 중 현대인의 건강에 좋은 음식이 많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평소에도 먹을 게 많아서 뭐 추석이라고 더 먹으랴 싶지만, 이번 추석에도 과식으로 탈나서 오는 환자들이 많을 것이다. 과식으로 탈이 나거나 급체를 하면 하루 정도 굶고 위를 쉬게 한다.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면서 배는 따뜻하게 찜질을 하고 손발을 뜨거운 물에 담근다.

또 배꼽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자주 문질러 준다. 손바닥으로 지긋이 힘을 주어 복부 깊숙이 눌러 주면서 마찰을 한다. 우선 매실, 귤껍질 말린 진피, 생강이나 말린 생강, 용안육 등을 차로 달여 마시거나 무즙, 율무죽이나 스프, 감자즙 등으로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나 배에 가스가 팽팽하게 차는 증상을 해소시켜 본다.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장

입력시간 2002/09/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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