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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프로게이머의 세계

게임전문채널 겜비씨를 통해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제 1세대인 신주영, 이기석, 국기봉의 복귀전을 보았다. 전설적인 고수들이기는 하지만 공백기를 가졌기 때문에 현역 프로게이머들에게 필적할 만한 경기를 선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들어낸 초창기 멤버들이 다시 경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만들어낸 문화적 향수(鄕愁)를 겨냥한 이벤트였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수많은 게임이 존재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미국 블리저드(Blizzard)사 제품으로 1997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했다.

1999년에 100만장, 2000년에 200만장, 현재까지 250만장 이상이 국내에서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 CD 장을 팔면 대박으로 취급되던 국내 게임시장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경이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미국회사가 만든 게임이기 때문에 막대한 외화유출을 염려할 수도 있겠지만, 스타크래프트가 가져온 경제적 효과는 결코 만만치 않다. 200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스타크래프트가 컴퓨터 및 PC방 관련산업에 미친 경제적 효과는 무려 4조 원에 달한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은 쓸모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30대 이상의 직장 남성과 게임에 대해 냉담했던 여성들까지도 게임인구로 끌어들였다. 그 많던 당구장을 PC방이 대체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게임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출시된 지 5년이 지난 구닥다리 게임이 여전히 국민게임일 수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저변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게임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얼마나 익숙해지는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인터넷에 게임공간(배틀넷)을 창출함으로써 게이머들간의 소통을 극대화시켰고,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서 게임을 '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눈으로 보는 게임 문화의 중심에는 프로게이머들이 있다. 한국에 프로 게임머가 등장한 것은 1998년의 일이다. 최초의 프로게이머는 신주영. 당시 각종 국내외 대회를 석권하면서 세계 배틀넷 챔피언에 올랐던 전설적인 고수이지만, 불행하게도 프로리그가 활성화되기 직전에 입대하게 된다.

프로게이머를 대중화시킨 장본인은 CF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쌈장' 이기석이었다. 쌈장은 쌈밥을 먹을 때 제공되는 장(醬)의 이름이고 이기석의 무던한 성격에서 연유한 아이디였는데, 싸움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도 있는 절묘한 이름이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들의 황금기는 2000년이었다. '공적자금'의 지원을 받은 IT 관련업체와 벤처기업들이 홍보전략의 일환으로 게임 구단을 운영했다. 프로게임리그 전문업체들이 생겨났고, 코리아인터넷프로게임리그(KIGL) 등과 같은 대규모 프로게임리그가 잇따라 선보였다.

게임방송이 인터넷·케이블·공중파를 가리지 않고 제공되었고, 미모와 실력을 갖춘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게이머들의 눈을 두 배로 즐겁게 했으며, 캐나다 출신의 천재적인 게이머 기욤 패트리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강도경·김동수·김정민·최인규·홍진호 등으로 대변되는 제 2세대 게이머들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쳐서 임요환이 ‘황제’로 등극하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이기도 했다.

특히 인천방송에서 게임방송을 했던 정일훈 씨는 게임전문 캐스터로서 명성을 날렸다. 게임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와 논리 정연한 게임방송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2001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되기 시작했다. 리그 수도 줄고 구단도 해체되고 상금 총액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벤처기업의 신화에 거품이 빠지면서 이들 역시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서 방송이나 기사를 통해서 프로게이머들의 어려운 실정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잘 하지는 못해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바둑처럼 하나의 기예(技藝)로서 사회적인 승인을 안정적으로 얻게될지,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숨막히게 열심히 했던 젊음으로만 기억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스타크래프트는 고향과도 같은 게임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2002/09/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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