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우리를 슬프게 하는 정치

도대체 정치란 무엇일까. 우리 국민들은, 그리고 우리 나라 정치인들은 정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를 무엇인가 사악한 것으로 보려는 성향이 강하다. 정치를 권모술수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권력을 장악한 개인이나 집단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마키아벨리(Machiavelli)이다. 그는 정치는 도덕의 세계와 다르므로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도덕법칙을 마구 짓밟아도 괜찮다고 주장했다.

“무릇 군주는 유덕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늑대와 여우의 성질을 갖는 것이 좋으며” 단지 중요한 건 “유덕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권모술수를 중시하는 태도를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거나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을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정치현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마키아벨리가 추구했던 올바른 정치는 윤리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정치야말로 기본적으로 윤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Nehru)는 정치를 “국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 아닐까?

우리 정치는 어떨까? 국민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의 뺨을 때려 울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정치였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문제를 만들어내고 국민을 절망에 빠뜨려왔던 것이다. 최근의 우리 정치를 보면 정말 안타깝고 또 속상하다. 아니 어떨 때는 정치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사상 최대의 피해를 안겨준 태풍 피해로 온 나라가 고통을 겪고 있다. 정치인들은 수해현장을 방문하는 수해정치에 바쁘다.

물론 수해현장을 방문해서 수재민의 고통을 직접 느껴보고 또 수해복구에 함께 땀을 흘린다면 수재민들에게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수재민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가 또는 어떻게 하면 수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수해현장에 가서 사진 찍고 유권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다시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정상적인 정치활동은 상실되고,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각 정파의 정국주도권 다툼에 휘말려 국정운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당과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을 내세운 정책대결은 상실되고 이른바 '병풍'을 둘러싼 싸움만 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김현철 씨가 구속될 당시의 신한국당도,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이 구속될 때 민주당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 정연씨(이 표현도 한나라당의 시비 거리가 될지 모르겠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이 온갖 무리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검찰청에 몰려가서 사건배당을 강요하는가 하면 수사기록 제출을 강요했다.

물론 이것은 월권이다.

김대업 씨의 폭로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의 활약은 눈부시다. 정작 당사자인 정연씨와 이회창 후보 부부는 가만히 있는데 한나라당은 김대업 씨가 사기꾼이라며 폭로내용을 부인했다. 물론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오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나 이 후보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인들을 고소했는가 하면 방송국에는 공문을 보내 정연 씨의 사진을 쓰지 말고,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강요했다.

한심한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만들어진 지 2년밖에 안된 신당인 민주당은 또다시 신당을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를 희망했던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후보를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또 아무나 마구 끌어들여 감자부대정당(potato-sack party)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간판만 바꿔 단다고 신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눈이 팔려 있으며, 국민의 눈길과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 같은 정치는 우리 국민을 너무나 슬프게 한다.

손혁재 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2/09/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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