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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1년]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와 힘의 균형

국제문제 전문가 마이클 허쉬, '포린 어페어스'기고 <부시와 세계>

9·11 테러 1주년을 맞았다.

미국 역사를 새로 쓸 대 사건으로 평가받는 9·11 이후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는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그 가운데 특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의 외교 정책이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출범 이후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외교 노선으로 눈총을 받은 미국은 9·11 이후 대 테러전을 명분으로 이 같이 독단적인 외교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국제담당 편집장을 지낸 국제문제 전문가 마이클 허쉬가 격월간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최신 호에 기고한 글 ‘부시와 세계’(Bush and the World)는 지난 1년 동안 펼쳐진 미국의 외교 정책을 종합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허쉬의 글을 요약해 싣는다.

2001년 9월 11일의 충격은 미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 진주만 공습을 비견할 수 있겠지만 어떤 미국인도 그 사건을 실시간에 현장 그대로 보지는 못했다. 부시 역시 다른 미국인들처럼 이런 끔찍한 사실을 직접적이고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부시는 이 사건에 대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9·11 이후 부시가 세계에 전한 첫 메시지는 “당신은 우리 편이든가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이다”는 것이었다. 문명과 선의 편에 서겠는가, 야만과 악의 무리에 들겠는가, 선택하라, 그리고 잘못 선택한 나라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런 ‘부시 독트린’은 그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이분법적 논리의 외교정책

세계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거명하면서 곁들여 부시는 “나의 업무는 뉘앙스를 주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방주의를 설명하면서 그는 “나의 일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고 나는 도덕적으로 분명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의 외교 정책과 대 테러전의 방향에서 분명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우선 해나가야 할 전쟁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3월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지막으로 주요 전투가 벌어진 후 미군의 전쟁은 테러 혐의자 체포와 구금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고작이다.

더 중요한 것은 독트린의 개념이 1년 전의 빈약한 형태에서 발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부시는 여전히 자신의 독트린을 새로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이른바 ‘문명 국가들의 강력한 연합’에 속하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연대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결과로 판단컨대 부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유엔도, 여러 국제조약도 넘어서는 일종의 일방적인 문명을 상정하는 듯하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건 철강과 농업 분야의 자국 산업 보호, 국제형사재판소의 미국인 면책권 요구, 교토의정서 비준 거부 등이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외교 행위에는 정책이 부재하고 이념이 실종됐다. 중동 문제와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도 미국의 전략은 오히려 미국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안기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적대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이득을 주고 있다.

전체로 볼 때 부시 정부 내의 정책 싸움에서 번번이 강경파들이 이기고 있다. 외교 관계를 무시하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딕 체니 부통령의 현실주의(realism) 전략이 표를 얻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중도주의나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주축인 신보수주의 정책은 밀려나고 있다.

부시 정부 내 보수주의자들은 지금 ‘신제국주의’나 ‘패권주의’의 깃발 아래 집합한 형국이다. 지금 미국이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의 골간은 미국이 하는 이야기를 그냥 받아 적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은 전쟁 동안에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패권주의자들의 생각은 한 가지 점에서는 옳다. 급진 이슬람 조직들을 분쇄하고 이슬람 세계를 근본부터 바꾸기 위해서는 강한 권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갈수록 거세지는 반미의 바람을 단지 적의 존재를 말살하는 것으로만 잠재울 수는 없다. 미국은 이념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가 아랍 세계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과 아시아 선진국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라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에 대한 선제 공격이 정당할 수도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적 신화만들기의 실패

9·11 테러 직후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세계 최강의 군대가 왜 문구용 칼로 무장한 사람들이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하는 것을 막지 못했느냐고 질문 받았을 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했다.

“외부에서 오는 위협을 막는 데는 능숙하지만 적이 내부에 있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1년이 지났지만 미국인들은 그런 위협들이 외부에서 왔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여전히 놀라고 있다.

국경 문제에 관해서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신화는 이른바 ‘예외주의’이다. 조지 워싱턴도 토머스 제퍼슨도 한결 같이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대양의 보호를 받으며 자체의 독립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19세기 말에 미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되면서 예외주의, 고립주의, 일방주의의 이념은 더 널리 유포됐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미국은 세계 대전에 휘말렸고 전후 냉전 기간에도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 소련의 핵무기 위협 때문에 지형 덕에 외침에서 벗어난다는 개념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미국인들은 그런 위협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일견 모순으로 들릴 듯하지만 더 큰 시각의 예외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미국이 나머지 세계와 단절하는 것보다 연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기회와 위협이 동시에 세계화한 오늘날에는 자유의 수호란 바로 국제 체제의 수호에 다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인 자유를 지키기 이해 미국은 대대로 내려온 신화 만들기를 포기해야 한다.


국제공동체에 대한 설득과 수용

부시 정권에게 대 테러전에서 미국의 주요 우방인 국제 공동체가 지금 부시 독트린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대단히 얄궂은 일이다. 부시가 취임하면서 미국의 국제 체제에 대한 의존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섰다. 일방주의의 근간이 되는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하는데는 다양한 첨단 군사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술이 냉전 시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미국 내의 군산 복합체에서만 생산되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 그리고 이런 첨단 기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서 필연으로 세계 시장에 의존해야만 한다.

21세기 전쟁을 위해 필수인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회사들은 수익의 절반을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달리 말해 미국의 국방력은 국제 경제의 안정과 개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국제 공동체란 다른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제 경제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과 정부와 공통의 이익과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끊임없이 연결돼 국제 경제를 형성하고 그것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예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런 역할을 했고 지금은 또 세계무역기구가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은 대 테러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제 공동체라는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설사 미국이 국제 공동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사마 빈 라덴은 ‘십자군과 유대인’ ‘부정한 유엔’ 등의 표현을 써가며 미국 뿐 아니라 다른 국가나 국가 집단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고 있다.

이슬람을 쫓아내기 전에 테러로 수많은 서구인들이 죽을 수 있다. 이 전쟁을 이념에 대항해 미국이 성공적으로 끝낸 다른 전쟁들처럼 종결해야 한다. 좋은 의미의 윌슨주의자가 되기 위해 미국인들은 2차 대전 후 독일과 일본 점령 동안 했던 것처럼 국제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만족해야 한다.


우방 끌어안기와 일방주의

어떤 유럽인들은 ‘고약한 텍사스 사람’ 부시는 포기했고 클린턴 같은 정부가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일방주의는 부시의 카우보이 기질이나 선민 의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미국은 능력이 될 때 일방적으로 행동한다. 특히 국가가 위기 상황일 때 그런 충동이 강해진다.

냉전이 끝난 뒤에서 클린턴과 부시는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척 했지만 사실 모든 것이 변했다. 전략적인 의미에서 ‘오케스트라’는 이제 없다. 솔로 가수 혼자일 뿐이다.

나토가 여전히 의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전략적인 관심 밖이다. 미국에 닥친 문제는 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아직도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사실상 그를 뒷받칠 힘은 없다.

그래서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미국의 우방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불가피하고 심지어 바람직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더 크다. 권력이 큰 만큼 미국은 불화를 야기하기보다는 조화를 위해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유럽이 미국의 군사 작전에 참견할 위치는 아닐지 몰라도 러시아와 중국을 국제 체제의 일원으로 끌어내는 제도적인 포위 전략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우방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억지로 세계를 새로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세계 체제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은 단지 그것을 지지하면 된다.

정리=김범수 기자 bskim@hk.co.kr

입력시간 2002/09/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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